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르르릉, 콜렉트 콜입니다. 상대방을 확인하세요."

 

이그, 상대방 확인을 안해도 누군지 안다. 이 왠수, 왜 비싼 콜렉트 콜이야. 전화카드는 어다 두고? 싶습니다. 그래도 전화 해준 딸에게 티는 낼 수 없어.

 

"어, 딸 잘 지내?"

"잘지내. 엄마?"

 

"살살 말씀하세요. 소리 안질러도 다 들려요."

"응, 그래. 엄마 나 3월달 용돈 이만 오천원에서 만원은 해주 줘. 꾼거 갚는거야. 나머지 만오천원만 보내."

 

"결국 용돈 때문에 2주만에 전화했니? 그것도 비싼 콜렉트 콜로?"

"아니. 또 있어. 나 일본어 공부 좀 하게 문제집 사서 보내줘. 그리고 영어공부를 회화위주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문언니한테 물어봐죠." 

 

"왜 갑자기 일본어에 영어까지?"

"일본어는 너무 공부하고 싶고, 영어는 필요하니까. 꼭 보내. 또 안보내지 말고!" 

 

"따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으시네요. 따님께서 공부를 다하신다니..."

"그러게. 별 일이 다 있네. 그러니까 꼭 보내. 까먹지 말고, 그것도 빨리!"  

 

딸은 저를 잘 압니다. 공부한다고 해도 잘 챙겨주지 않는 엄마를 못 믿어워서 자꾸 까먹지 말란 말을 여러번 한 후에 전화를 끊습니다. 딸 전화를 받으면서 '아니 겨울 방학 3달 동안 그렇게 필요하다 싶었으면 그때 공부할 것이지, 학교 가니까 저러냐?' 싶습니다. 방학 동안 큰 딸을 바라보는 제가 참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친정 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방학 때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답답해서 저를 들볶습니다.

 

"니 우짤라고 아를 저리 키우노? 공부를 와 다잡아 안시키노? 대학 안보낼기가? 지금 초등학생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데 니 아들은 와 학원도 안보내고 저리 키우노? 니 나중에 을매나 후회할라카노?"

 

친정 엄마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것부터 학원 안보내는 것부터 돈을 악착같이 벌지 않고 자꾸 딴 데 한눈 파는 것부터 다 불만입니다.

 

 딸이 마음공부 수업에서 쓴 자신의 비전1호
딸이 마음공부 수업에서 쓴 자신의 비전1호 ⓒ 권영숙

 

"엄마.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애들이 엄마 친손주보다 더 잘될거라고 생각해. 다시 말하면 그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지 몰라도 행복지수는 우리 애들보다 낮을지도 몰라. 왜냐면 우리 아이들은 행복을 돈에서, 높은 지위에서 찾지 않을거거든. 작은 것에서 행복찾는 연습을 하니까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거야. 그게 중요한거 아니야? 돈 많다고 행복한가? 돈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다 행복한가? 엄마, 만족을 모르고 자라니까 행복하지 않은거야. 늘 부족하다고,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 않은거라구. 가난하게 자라도 가난을 문제 삼지 않으면 당당해질 수 있는거고, 부자로 살아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더 가지지 못해 불행한거야."

 

제 말을 들은 친정엄마는 말은 내 말이 맞지만 현실에서의 내 말은 틀리다고 합니다. 틀릴 수도 있겠지요. 맞고 틀리고는 다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가난을 혹독하게 경험한 엄마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결혼 초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밑마음과 불안이 늘 존재합니다. 다만 그 속에 제가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돈버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돈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자꾸 마음을 다잡는 것이지요. 

 

"문제집 꼭 사서 보내야 돼?"

"왜? 또 안보내려구? 나 일본어 공부하고 싶어."

 

"그럼 니 용돈에서 사."

"엄마. 나 돈 없어. 용돈 3만원에서 2,500원은 북한동포 돕고, 1,000원은 나다 후원하고, 26,500원 남는데 너무한다. 엄마가 이 돈으로 살아봐. 얼마나 빠뜻한지 알아?"

 

"야! 기숙사에 있는 애가 돈이 왜 필요해?"

"엄마. 나 옷사는 것도 내 돈으로 사잖아. 엄마가 안사주잖아."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제가 겨울 잠바 정도는 사주지만 티나 바지, 가방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안사줍니다. 딸이 자기 물건은 자기 용돈 모아서 사야하니 엄마한테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받아 내려 하지요.

 

에너지 넘치는 딸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저도 기운이 납니다. 매년 학기 초, 딸은 무엇을 배울까, 고민하면서 수강신청을 합니다. 가끔 제게 "엄마, 이번 학기는 뭐 듣는게 좋을까?" 라고 자문을 구하지만 "너 배우고 싶은거"라고만 하는 엄마에게 이젠 더이상 기대하지 않습니다. 딸은 '물은 내가 잘못이지' 라는 표정을 제게 귀엽게 날립니다. 


#대안학교#기숙사#일본어#영어#마음공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