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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일(1월 8일)

히말라야 발자국
DOLE  Hymalaya lodge  08 : 00
(포르체로 출발하기에 앞서)

고도를 많이 낮춘 영향인지(5,360m에서 4,110m) 고소증세가 없는 편안한 밤을 보냈다. 고쿄에서 고소 증세로 매우 힘들어하던 독일인 커플도 저녁 6시쯤 손전등을 들고 우리가 묶고 있는 도레이 롯지에 도착하였다. 독일인 여자는 나에게 무슨 말을 묻고자 계속 시선을 던지건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에게는 그 시선이 두렵기만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눈으로 대화를 시도해본다. '심심하면 조용히 대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떨까요?' 눈과 마음의 대화를 거부한 그녀를 피해 수첩속으로 숨어든다.

나란과 하는 이야기를 엿들어 보니, 두 어 달 코스로 네팔과 인도를 밀월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꿀 같이 달콤한 달, 밀월(honeymoon)이다.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 거리는 매혹적인 말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해 보이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모든 면으로 약해보였다. 여자는 연신 남자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주고, 귓속말로 포근한 사랑의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나와 그녀의 만남을 단절시킨 언어의 벽 언어의 대화를 거부한 채, 눈과 마음으로 대화를 건넨다.
나와 그녀의 만남을 단절시킨 언어의 벽언어의 대화를 거부한 채, 눈과 마음으로 대화를 건넨다. ⓒ 윤인철

서양인들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사랑 표현에 매우 적극적이다. 우리와 참 다르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처럼, 서로 표현하지 않아도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 왔다. 구태여 교감하고 있는 느낌을 언어로 표현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이제는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나를 표현해야 하고, 나를 아름답게 디자인해서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저마다의 눈과 시선으로 '평가'한다. 자기표현도 능력이 되는 시대다. 예로부터 우리는 상위에 남은 고기 한 점을 남겨두고 숟가락을 놓는 풍습이 있었다. 마지막 하나까지 먹고 싶을지라도, 우린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했다. 양보와 배려가 아름다운 미덕이었다.

하지만 이젠 말한다. '제가 먹을게요.', '아, 배고파!' 욕구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말없는 기다림과 배려가 답답할 뿐이다. 욕구하는 그대여, 표현하라! 이젠 누구도 함께 먹던 마지막 삼겹살 하나를 두고 젓가락을 내려 놓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두 갈래 다른 생각을 한다. 하나는 불평부당하고 옳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에는 주장하고, 표현하고, 반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의에 대한 침묵은 미덕이 아니라 비겁함이요, 회피이다. 도덕 수업 시간, 아이들이 모둠별로 수행평가를 한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담긴 멋진 작품을 학급의 다른 아이들 앞에서 발표한다. 나의 기대를 훌쩍 넘어 버리는 최고의 작품들을 공개한다. 바로 협력의 힘이다. 흐뭇함과 함께 물어본다.

'모둠장, 이 작품을 만들며 불성실하거나 참여하지 않은 학생은 없었니? 만약, 그런 학생이 있다면 선생님에게 꼭 말을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전해지고 정의로워질 수 있다. 땀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최소한 합의할 수 있는 사회의 원칙이기 때문이야.

또한 불성실한 그들을 위해서도 이름을 말해야 한다. 그들에게 정의로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지. 결국 그들에게 불성실함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주는 것이 건전한 세상과 학생의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도 마땅한 일이다.'

'선생님, 그건, 고자질이잖아요!'

'아니, 우린 그것을 고발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들에 대한 무관심이다. 나아가 건전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지.'

또 하나는 표현되지 않는 침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궁극의 표현 도구라는 것이다. 텍스트를 읽지 말고, 콘텍스트를 읽어라. 문자만을 읽지 말고, 행간, 줄간, 문자 사이에 숨어 있는 빈 공간을 읽어라. 문자는 그의 것이지만 그 행간은 나의 것이며 나의 언어이자, 나의 의미다. 삶 또한 이런 여백들이 날 살찌우게 한다. 구태여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고, 코로 맡고, 입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우린 느낄 수 있다. 가슴이 있기 때문이다. 간혹 가슴도 없이 껍데기만 화려한 사람들을 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노자의 <도덕경>이라는 책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도를 도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해석상의 다양한 논란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다만, 내가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속에 진리를 향한 인간의 겸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수업 중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사랑을 표현해 볼까?' 그럼 아이들은 말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대지에 쏟아지는 빗방울만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소중한 것' 등 온갖 비유를 들어 사랑을 표현한다.

'얘들아, 노자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노자는 말한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마음을 언어라는 작은 그릇에 담을 수가 있을까? 인간의 언어로 그 무량무한(無量無限)의 넓고 깊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언어는 의사소통의 약속일 뿐이다. 억지로 세상에 드러내려고, 꾸미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진리를, 사랑을 느끼고 음미하라. 진리 앞에 고개 숙인 인간을 본다. 언어와 위선 속에 갇힌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한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과 그림 등의 예술을 통해 눈물 젖어 터질듯한 가슴을 조금이마나 담아내려 한다. 이럴 때면 나도 예술가가 되고 싶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저 자연의 신비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은 욕구!

노자는 자연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어떤 다툼도 없이 조화롭게 운영되는 자연의 질서를 좋아한다. 그리고 인간도 그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라고 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억지로 하려하지 말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의 흐름과 질서를 역행하고 거스르지 마라.

인간이 주인 된 개발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 노자는 돌팔매를 던진다. 보이지 않는다? 보이게 하라. 살지 않는다? 살게 하라. 파괴하라. 개발하라.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 자연은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일지언정, 자연의 순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위에서 아래로 다투지 않고 겸손하게 흐르는 물처럼,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처럼, 맑고 순수한 물과 같이 살자. 자연의 질서는 곧 인간의 질서이다. 다툼이 없는 조화이다. 그는 나에게 '돈이 되느냐! 성장율이 얼마냐!'가 아니라 '당신 행복합니까! 평온합니까!'라고 말한다.

이렇듯 표현과 침묵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어떤 것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은 우리는 상황에 맞는 시중지도의 지혜로 표현과 침묵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표현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야 할 것이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해야 한다. 역시 인간은 난해한 존재며,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과 관련된 동서양 사상가의 사상을 빌려와 철학적 채색을 하였습니다.(공자에서 샤르트르까지)



#네팔#히말라야#쿰부#에베레스트#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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