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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집에 들어와 아이들 방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둘째 아들이 안경을 쓴 채로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낀채로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우리집 둘째 아들입니다.
 안경을 낀채로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우리집 둘째 아들입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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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리 둘째가 언제 그렇게 눈이 나빴냐?"
"ㅎㅎ."

깜짝 놀라 물어보는 내 질문에 뒤에 서있는 아내가 뜻모를 미소만 짓습니다.

"안경쓰고 싶다고 해서 하나 줬어!"
"아니 둘째 시력이 어떻게 나왔길래 안경을 안사준 거냐?"

초등학교 4학년짜리 둘째 아들이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어느새 한 옥타브가 올라간 나의 걱정어린 질문에도 아내의 대답은 한 없이 천연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형 따라 안경집에 가서 자기도 안경쓰고 싶다고 해서 지 형이 쓰던 안경테만 준 거야!"
"......"

그렇습니다. 둘째 아이는 형이 늘상 끼고 다니는 안경이 제딴에는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형이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관계로 안경을 새로 바꾸게 되었답니다. 첫째 정민이가 그동안 2년 남짓 끼고 있던 안경을 새로 바꾼다고 안경가게에 아내와 함께 갔는데 그 자리에서 둘째도 엉뚱한 욕심을 냈던 것입니다.

자기도 형처럼 안경을 사달라는 요구였답니다. 물론 눈이 나쁘지 않는데 안경을 사줄 리는 만무하고 형이 새로 안경테와 안경알을 장만하는 관계로 버려지게 될 운명에 처한 안경테만 둘째에게 물려준 것이었답니다.

둘째 아들은 그렇게 물려받은 안경을 끼고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고 말입니다.

 아들이 끼고 있던 안경은 안경알이 없는 '무늬만 안경'이었답니다.
 아들이 끼고 있던 안경은 안경알이 없는 '무늬만 안경'이었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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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나쁜 아내를 닮은 첫째와 아빠 시력을 닮은 둘째

아내의 시력은 나쁜 편입니다. 제법 두툼한 돗수의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비교해 저의 시력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 아직은 안경을 끼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시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첫째의 시력은 아내를 닮았는지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안경알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와 비교해 둘째는 초등 4학년이지만 아빠 시력을 닳았는지 안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엄마와 형은 안경을 끼고 다니고 자기는 안 끼고 다니다 보니 안경을 끼고 다니는 것이 꽤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지만 아직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고 그와 비교해 시력이 좋은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르는 나이인 듯합니다. 제 추억이 떠올라 안경알이 없는 안경테만을 쓴 채 컴퓨터 게임에 몰입해 있는 둘째 아들이 귀엽기 그지 없습니다. 볼에 뽀뽀를 해주고 아이들 방을 나왔답니다.

방을 나서는 제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도 둘째 아들과 같은 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멋드러지게(?) 안경을 쓰고 있는 게 너무도 부러워 안경을 쓰고 싶은 욕심에 눈을 열심히 혹사시킨 적이 있었답니다.

바로 책을 눈 가까이에 대고 읽으면서 눈이 나빠지기만을 원하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쨓든 그런 노력(?)의 결과였는지 한 쪽 시력은 1.0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 쪽 눈은 0.5 정도가 되는 관계로 저도 안경을 한때 착용한 적이 있었답니다.

한때라고 표현하는 것은 안경을 쓰는 것이 너무도 불편해 며칠 끼고는 안경착용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상생황에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니 그동안 안경 쓸 마음이 도통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아들아 이 철딱서니 없는 아들아!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안경을 착용해야만 했던 첫째 정민입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 했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안경을 착용해야만 했던 첫째 정민입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 했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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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테만 낀 채로 한참을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던 둘째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이거 불편한데!"
"어디가?"

"응... 코 위에 이게 불편해 이거 좀 떼어 내버리면 안될까?"

그렇습니다. 안경테를 지지하는 뿔테 부분이 없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입니다. 아들의 불만표현에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야! 이제 안경테도 그만 쓰고 컴퓨터도 그만하고 공부나 해!"

집에 돌아와 수 시간 동안을 줄곧 착용하고 있던 둘째 아들이 안경의 불편함 때문인지 안경을 벗고 있습니다.

안경테를 지지하고 있는 코 윗부분에 닿고 있는 플라스틱 지지대가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수시간 남짓의 안경착용 체험을 마치고 안경테를 벗어 던진 아들에게 제가 한마디 건넸습니다.

"아들아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야. 눈이 좋은 걸 감사해야지"
"구백냥은 또 뭐야?"

아들이 생소한 비유에 눈만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속담의 뜻풀이를 한바탕 해줄 수밖에요.

"아들아. 몸이 만원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눈은 구천원의 가치가 있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그렇게 눈이 중요한가?"

"그래 이 철딱서니 없는 아들아....."
"........"

안경을 다시 벗은 둘째 아들이 한없이 귀엽기만 합니다. 다시 한번 볼에 뽀뽀를 해주고 돌아서는 저는 속으로만 둘째 아들을 다시 한번 꾸짓습니다.

'이 철딱서니 없는 아들아 안경을 쓰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이라는 걸 안다면 앞으로는 눈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단다.'

수십년 전 저는 지금의 아들보다 더 철이 없었던 듯합니다. 둘째 아들은 이제 고작 초등학교 4학년 나이에 안경을 쓰고 싶은 욕심을 낸다지만, 제가 안경에 눈독을 들였던 것은 그 보다 훨씬 나이가 먹었을 때였습니다.

일부러 어두운 조명불빛 아래에서 눈 가까이에 책을 바짝 들이대고 읽을 때 나이는 중학생 무렵이었으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안경#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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