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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개불알풀 마치 밤하늘에서 빛나던 별들이 쏟아져내린듯 하다. 봄까치, 땅비단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지금 영어심화연수를 받고 있는 담양 전남교육연수원에서 점심 시간 산책하다가 만났다.
봄의 전령사, 개불알풀마치 밤하늘에서 빛나던 별들이 쏟아져내린듯 하다. 봄까치, 땅비단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지금 영어심화연수를 받고 있는 담양 전남교육연수원에서 점심 시간 산책하다가 만났다. ⓒ 안준철

 

봄입니다. 봄은 권태를 모르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봄에 진저리처지도록 꽃을 피우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꽃을 피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긍정의 상상력이라고 할까요? 새로 난 꽃잎에 떨어지는 햇살도 아주 오래 전 맨 처음 지구에 내린 햇살처럼 해맑기만 합니다.

 

꽃이 피고 해가 뜨는 것은 자연의 일상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일상이듯이 말이지요. 제가 꿈꾸는 학교는 행복한 학교입니다. 학교가 행복하려면 배우고 가르치는 일상이 행복해야합니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일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긍정의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올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아이들과 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당에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것이 곧 긍정의 상상력입니다. 바로 이런 식이지요.

-○가 없는 사람은 하루 종일 피시방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나는 늘 술만 마시는 아버지가 싫다. 그래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내 ○이다.
-나에겐 ○가 있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그 동그라미 속에 들어갈 단어가 곧 '꿈'이라는 것쯤은 아이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노린 것은 아이들이 제 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었지요. 제 주머니에는 학교에서 강사료 대신 전해준 상품권 10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그것을 탐하여 앞으로 뛰어 나왔다가 혼쭐이 났습니다.

 

"방학 동안 뭐하고 보냈어?"
"예?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무것도 않다니? 방학이 50일도 넘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도 불안하지 않았어?"
"예? 안 불안했는데요."
"네 꿈이 뭐야?"
"예, 없는데요."
"꿈이 없으니까 방학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도 불안하지 않은 거지."
"…?!"

 

아직 꿈은 없었지만 제 조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준 아이에게 저는 문화상품권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날 마지막 문화상품권의 주인공이 된 아이도 상을 받으러 나왔다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가 아름다운 이유를 다섯 가지만 말해봐."

아이는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아이를 자리에 돌려보낸 뒤 전체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문화상품권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던 몇몇 아이들조차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아이들은 혹시 자기 자신이 아름답기에는 너무 초라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자 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나는 부족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것은 하나의 예시인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족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니요? 저는 아이들에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긍정의 상상력을 사용했지요.
 
"여러분, 진수성찬을 앞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미 배가 불러 있는 사람입니다. 진수성찬 앞에서는 배가 고픈 사람이 행복합니다. 저는 내일 영어연수를 받기 위해 학교를 잠시 떠납니다. 6개월 연수에는 한 달 간의 해외 연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완벽하다면 굳이 연수를 받으러 해외까지 갈 필요가 없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가슴이 설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보다도 더 부족합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JLP영어심화연수 수업장면  제1기 연수생 32명이 각각 8명씩 4개반으로 나뉘어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받고 있다. 몸은 피곤해도 배우는 즐거움에 마음은 마냥 가볍다.
JLP영어심화연수 수업장면 제1기 연수생 32명이 각각 8명씩 4개반으로 나뉘어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받고 있다. 몸은 피곤해도 배우는 즐거움에 마음은 마냥 가볍다. ⓒ 안준철

 

저는 지금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 와 있습니다. 지난 3월 4일부터 8월 21일까지 약 6개월간 실시되는 JLP(전남외국어교육프로그램)영어심화연수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5개월 국내연수(2개월 합숙연수 포함)와 1개월 해외연수로 구성된 이번 연수의 일차 목적은 학교현장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Teaching English in English)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연수효과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영어습득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JLP영어심화연수 1개월 코스를 수료한 전남지역 영어교사들은 무려 1200명에 달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6개월 심화연수는 32명의 전남지역 영어교사들이 제 1기생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8명의 전임원어민들과의 합숙활동을 통해 24시간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꿈을 꾸는 아름다운 도전을 막 시작한 상태입니다. 

 

첫날 개강식과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원어민들이 마련한 환영식(Welcoming Party) 등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몸은 피곤한데도 통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배고픔 때문이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라고 멋지게 표현해도 좋겠지만, 그때 제가 느낀 배고픔은 그보다는 훨씬 더 생리적이었습니다. 정말 영어가 고팠습니다.  

 

저는 다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영어로 적어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영어일기를 쓴 것이지요. 평소에도 몇 번 도전했다가 그만 둔 경험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밤 두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전남교육연수원 식당에서  연수생들은 식당에서도 영어를 사용해야한다. 잠시 깜빡해서 우리말이 튀어나오면 옆에서 누군가 눈치를 주기도 한다.
전남교육연수원 식당에서 연수생들은 식당에서도 영어를 사용해야한다. 잠시 깜빡해서 우리말이 튀어나오면 옆에서 누군가 눈치를 주기도 한다. ⓒ 안준철

 

다음날 아침, 연수 담당자이신 고미영 교육연구사님을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먼저 영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녀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잠을 잘 잤느냐고 물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잠을 잘 자지 못했노라고 솔직하게 말한 뒤에, 뭔가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을 덧붙였습니다. 

 

"I have butterflies in my heart."(마음이 설레어서요.)

 

'(걱정근심)에 마음이 두근거린다.'는 뜻을 가진 "I have butterflies in my stomach"라는 영어 표현을 슬쩍 윤색하여 그렇게 말을 건넨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의 환한 미소 띤 얼굴이 더욱 환해졌습니다. 

 

'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want'는 '부족하다'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하기에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도 마음이 설렙니다. 지루함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말이지요.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부족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입학식날 신입생들 앞에서 고백한 것처럼 저는 영어교사로서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배가 많이 고픕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마음 가난할수록 긍정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영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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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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