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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도시락 쌌어? / 싸고 있어.

도시락 반찬 뭐야? / 기냥 싸주는 대로 드시죠.

 

아침마다 저는 도시락 반찬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합니다. 초등학생이 무슨 도시락이냐구요? 제 딸 학교는 급식을 안 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갑니다. 이렇게 도시락을 싼 지 올해로 8년쨉니다. 매일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은 뭘 쌀까 고민합니다. 오늘은 김치부침개를 했습니다. 아침부터 부침개를 하는 게 안 어울린다 생각하면서도 쉰 김치를 보니 학교 샘들 간식을 싸주고 싶어졌습니다.  

 

 부침개 뇌물을 드시는 무지개샘들
부침개 뇌물을 드시는 무지개샘들 ⓒ 권영숙

엄마, 도시락 반찬 부침개야? / 아니, 선생님들 간식이야.   

 

왜 샘들한테 이런 걸 줘? / 왜 주긴, 우리 귀한 딸 잘 봐달라고 주지.

 

그거 뇌물이잖아. 나쁜 거 아냐? / 우리 딸 잘 봐달라고 주는 게 나쁜 건가?

 

나쁘지. 왜냐면 우리 자식만 이뻐 해달라는 거잖아. / 그럼 샘들 주지 말까?   

 

아니 줘. 왜냐면 샘들이 준다고 더 이뻐 하지도 않아. 까마귀(샘별명)가 그런다고 행여 잘해주겠어? / 뭐야! 그러는 게 어딨어? 내가 우리 귀한 딸한테 잘해주지 않을 거면 줄 필요가 없지.

 

순진한 해주가, 제가 샘들에게 뇌물로 부침개를 갖다 준다니 점잖게 충고를 합니다. 뇌물을 줘도 차별을 안 한다고... 재밌습니다.

 

"샘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6학년 된 오 해주 엄마, 권 영숙입니다. 우리 귀한 딸 잘 부탁드립니다."

 

갓 들어온 샘 두 명은 그렇게 인사하며 부침개를 내놓는 절 보고 약간 당황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숙달된 까마귀 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갖고 와서 잘 봐달라 카는 깁니꺼? 너무 약하네."

"네, 조만간 다른 것도 준비하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오 해주 엄마, 권 영숙입니다."

교사실 탁자에 놓인 김치부침개는 순식간에 바닥을 보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샘들은 거의 아침을 거르고 오십니다. 일반학교 선생님들도 잡무가 많다 들었지만 대안학교 선생님들도 업무가 많습니다. 회의도 많고, 프로젝트 수업연구도 해야 하고, 까칠한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샘들끼리 모여 고민도 합니다.

 

작년 해주가 아이들과 한참 예민했을 때 까마귀(당시 해주 담임)가 집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찾아왔었습니다. 아이 문제를 가지고 부모를 학교로 오라고 안하고, 샘이 직접 바쁜 학부모를 가정방문합니다. 그러고 보면 감동이 거창한 데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네 이번에 누가 담임 됐어? 담임 어떤 것 같아? 애랑 안 맞으면 전학가야지. 인사드리러 가는데 뭐 사다드리지?

동네 엄마들은 새학기만 되면 아이들 담임샘이 누가 되는지, 뭐 사들고 찾아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제 어릴적 기억에 치맛바람 일으키는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어른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차별이 정말 눈에 띄었거든요.

 

 약 발라주는 까마귀샘
약 발라주는 까마귀샘 ⓒ 권영숙

까마귀, 나 다쳤어. / 뭐하다 다쳤네?  

 

몰라, 피나. / 함 보자. 개안타. 약 발라줄게.

 

진달래 있잖아? 도로시 이건 어떻게 해야 돼? 은빛여우 누구랑 누가 싸워.

 

아이들은 수시로 교사실 문턱이 닳도록 쫓아옵니다.

 

 

 

"저 오 해주 엄마, 분명히 샘들께 뇌물 드렸습니다. 저희 귀한 딸 잘 봐 주세요~ " 

 

잘봐달라, 뇌물주고 돌아서는 제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뇌물을 이렇게 당당하게, 싼 값으로 치를 수 있다는 거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행복한 건 이 뇌물이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뇌물#무지개학교#행복#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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