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반짝 꽃샘추위가 예고된 가운데 전형적인 봄 날씨를 보이던 지난 주말 오랜만에 젓갈의 고장 강경을 찾았다.
항상 강경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강경 입구에만 들어서면 왠지 젓갈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선입견이라고나 할까? 옷에 짠 젓갈냄새가 베는 것 같기도 하고, 이곳에 오면 젓갈 한통이라도 사가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처럼 각종 젓갈로 유명한 젓갈의 고장 강경에는 젓갈 말고도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바로 일제시대의 건물들이 그 모습을 간직한 채 그대로 있어 마치 장군의 아들 세트장을 보는 것 같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바로 옛 '조흥은행 강경지점' 건물이다. 빨간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누가 보아도 일제시대 건축물임을 금방 알아차릴 만큼 일제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건물 정문 출입구 위에는 누군가가 지운 흔적이 있지만 '주식회사 조흥은행 강경지점'이라는 표지석이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있다.
문이 없는 출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과 함께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건물이 오래된 탓도 있겠지만 은행이었던 탓에 돈 냄새(?)가 조금은 섞여 있지 않을까?
은행 내부의 모습은 밖에서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내부천정이 매우 높았으며, 은행창구가 있었을 넓은 공간 이외에도 지점장실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은 사무실과 은행금고로 보이는 창고,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물건을 보관했던 것처럼 보이는 작은 소금고 하나가 보였다.
이 중에서 은행금고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 또 하나의 작은 금고 하나가 보였다. 금고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설픈, 찌그러지고 허물이 다 벗겨진 검은색 금고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해 주고 있었다.
굳게 닫혀져 있어 열어 보고 싶은 호기심도 들었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냥 금고만 보고 시선을 돌렸다.
금고 옆쪽에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있는데 아무래도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문서라든가 아니면 고액권을 보관해 두는 금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계단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 밟아 봐도 삐그덕 소리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금고 안을 둘러본 뒤 다시 밖으로 나오려는데 안쪽에서 본 금고의 출입문은 단순히 두툼한 철문이 아닌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긴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은행을 습격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 견고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금고에서 나와서 다시 내부를 살펴보니 금고 위에 또하나의 작은 금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금고 앞에 지지대가 남아있는 걸 보니 어떤 액자나 부착물을 걸어놓고 그 뒤에 금고가 있다는 것을 비밀스럽게 감춘 것으로 보인다.
금고의 모양만 보아도 무엇인가 중요한 물건이나 문서를 보관했을 법해 보였다. 그리고 이 금고를 열어볼 수 있는 사람도 제한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은행 내부를 둘러본 뒤 출입문 앞에 서서 다시 내부 전경을 바라보았다. 비록 일제시대의 잔재로 남아있는 은행 건물이긴 하지만 이곳에도 우리 조상들의 체취가 남아있을 거라 생각을 하니 이 또한 문화유산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