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궐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디어 선거전이 뜨겁다. 선거체제를 본격 가동하고 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여·야 정치권 못지않게 언론의 선거보도 경쟁은 가히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최대 쟁점법안인 언론 관련법의 6월 임시국회 처리 향방을 결정할 변수가 될 전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선거다. 여느 재선거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4·29 재보선 선거구는 국회의원 4곳, 광역의원 3곳, 기초단체장 1곳, 기초의원 4곳 등 총 12곳.
그러나 언론의 재보선 선거보도는 선거보도의 본령인 사실성에 입각한 객관보도와 균형성에 입각한 공정보도를 찾기 힘들다. 언론에 부각되고 있는 재보선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특정 지역 두 곳, 즉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전주 덕진'과 '부평을' 선거구에 온갖 쏠려 있다.
언론이 주목하는 인물 2명뿐, 60여 명 후보자들 '어쩌나'
그뿐만 아니라 한 선구에서 10명이 넘는 후보들이 출마 선언을 했음에도 그들은 제쳐놓고 출마가 불투명한 특정인물을 좇는데 온갖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론은 두 지역의 많은 출마 후보군들보다는 출마여부가 안갯속인 특정인물에만 경쟁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가하고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이번 재·보궐 선거뉴스의 지면과 영상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두 인물을 놓고 경주하듯 보도하는 언론의 선거보도를 접한 지역 유권자들은 대안적 선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띄우는 이들의 출마가 오리무중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편파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측근들이나 출입기자들의 '해석저널리즘'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 재보선 선거보도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무시된 전형으로 기록될만하다.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등록한 출마후보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선관위에 등록한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예비후보는 부평을에 19명, 전주 완산갑에 12명, 전주 덕진에 6명, 경북 경주에 16명 등 한 지역에 10명이 넘는 후보들이 있다. 그런데 언론은 좀처럼 그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특히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둔 전주는 민주당내 계파 경쟁의 '전장(戰場)'이 될 전망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해당지역 언론들은 끊임없이 정동영 전 장관의 행보에 초점을 두고 선거지형도를 그리느라 분주하다. 전북지역 신문과 방송들은 정 전 장관의 출마여부를 중요한 기사로 연일 내보내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 지역 출마해야", "수도권서 싸워라" 두 프레임
선거기사의 쟁점은 크게 두 기류다. 정 전 장관의 출마냐 불출마냐를 전제한 다양한 해석들이다. '출마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를 둔 기사와 칼럼이 눈에 띄는가 하면 '수도권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상반된 기사와 출마를 전제한 여론조사도 눈에 띈다.
'정동영 전주덕진 출마 찬반론 속내는'
'정동영 "중간지점에서 고심중"'
'정동영, 덕진 출마 결심 굳힌듯'
'사회단체 대표, 정동영 정계복귀 촉구'
'정동영 빠르면 내달초 귀국'
정 전 장관의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둔 기사의 제목들이다. 그런가 하면 반대 논리를 펼치는 기사의 제목들도 간혹 보인다. 유권자들이 헷갈릴 만하다.
'전북시민단체 "정동영, 수도권서 싸워라"'
'정동영 전 장관 "출마 비판 여론 잘 모른다"'
'정동영-한광옥 뇌관 언제 터지나'
'정동영 출마에 도내 의원들 부정적'
'정동영, 실패한 골목대장으로 남을 것인가'
이처럼 지역 언론들은 정 전 장관을 재선보도 프레임에 올려놓고 극렬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오죽했으면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전북민언련)이 지역신문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공개한 '2월 종합모니터' 결과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재선거를 앞두고 대부분 지역신문들이 정 전 장관의 출마여부를 중요한 기사로 내보냈다. 지난해 연말부터 지역신문들은 정 전 장관의 행보에 재선거 포인트를 모아왔다.
이 가운데 <전북도민일보>는 가장 우호적 태도에서 기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북민언련은 "<전북도민일보>는 지난해 12월부터 정동영 전 장관 출마설을 비중 있게 전달했다"며 "3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정 전 장관이 출마를 할 것 같다'는 측근의 목소리를 1면에 싣는 등 비중 있게 다루며 여론몰이를 하는 듯 보인다"고 평가했다.
특히 "칼럼을 통해 '정 전 장관이 정치계에 복귀하라'는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냈다"는 따가운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신문의 2월 한 달 동안 내보낸 관련기사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2월 5일 <재선거 민주 최대관심 중진행보 - 정동영․장영달․한광옥․정균환 등 초반 판세주도>(3면 4단기사)
▲ 2월 6일 <도내 민주당 9일 재선거 논란 기로- 의원 회동 DY 출마여부 '가닥'>(3면 4단기사)
▲ 2월 9일 <상임위 조정 중점 다룰 듯, DY 출마여부 뜨거운 감자>(3면 4단기사) /<정동영,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라>(15면 동서남북)
▲ 2월 12일 <정동영 미국 회견 파장 - 덕진출마 민주 찬․반 불당겨>(3면 4단기사)
▲ 2월 16일 <정동영 지지층 결집행보 본격 - DY 덕진출마 분위기 띄운다>(3면 4단기사)
▲ 2월 26 <정동영 빠르면 내달초 귀국>(1면 3단기사)
유권자들 "이 지역이 동네북이냐", "자존심 상한다" 볼멘소리
제목만 봐도 정 전 장관에 우호적인 보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전북민언련은 논평에서 "특이한 상황은 평소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대부분 단신으로 다루던 신문이 참여연대가 전략공천을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하자 1면과 3면을 털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면서 "다른 매체는 '시민단체의 정동영 전주출마 반대' 목소리를 주 내용으로 보도한 반면 <전북도민일보>는 공천권에 초점을 맞춰 전할 뿐 '정동영 출마반대' 목소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전북일보>는 올 1월부터 3월 11일까지 정 전 장관에 대한 기사제목만을 검색한 결과 모두 33건을 보도했다. 출마가 기정사실화 된다 하더라도 다른 후보들에 비하면 가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많은 분량이 할애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만하다.
그러나 이 신문은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내 눈길을 끈다. <전북일보>는 6일자 1면 '정동영 지지성명 선거법 위반 논란'의 기사에서 "도내 일부 상인·체육단체 관련 인사들이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4·29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지지하고 나선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며 "성명서에 공개된 일부 상인단체장은 서명한 적이 없다며 명단 삭제를 요구하는가 하면, 특정단체 명의를 사용하면서 불공정 활동 논란이 제기돼 선관위가 관련법 위반 여부 검토에 나섰다"는 기사가 시선을 끌었다.
'정동영 전 대통령후보 원내진출을 바라는 전북도민 일동'이라고 밝힌 20여 명의 지역인사들은 5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 전 장관의 4·29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독려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공개한 사회·기업·봉사·상인·체육단체장 29명 외에도 약 100여 명의 각종단체 회장 및 간부가 서명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전북지역의 다른 신문과 방송들도 정 전 장관의 출마와 관련된 보도에서 측근 또는 당 관계자 등 주변인들의 말을 인용한 기사를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선거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성 차원을 간과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체류 중인 당사자는 정작 아무런 말이 없다.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법도 한데 아직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런 가운데 유권자들은 후보난립에 낙하산 출마설까지 나돌자 "이 지역이 동네북이냐", "자존심 상한다"는 불만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지역에서 두 당선자가 불명예스런 사고로 낙마한 곳이다.
19명 후보 난립한 부평을, 보도 초점은 박희태 대표
전주 못지않게 뜨거운 관전 포인트 지역으로 부각되는 곳은 부평이다. 여·야간 지지색채가 뚜렷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승패에 정치권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번 선거결과에 MB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수도권 여론 향배가 직결될 것으로 보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평을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들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거물급 정치인들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부평 출마설이 언론에 거론되면서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과 지역언론들은 박 대표가 11일 취임 후 첫 휴가를 간 것과 관련해 온갖 추측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출마를 위한 장고', '출마 수순', '단순 치료차원' 등 부평을 재선보도의 초점은 온통 박 대표에 쏠리고 있다.
10일 현재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보는 11명에 이른 곳이다. 이외에도 부평을 재선거에는 민주당 2명, 자유선진당 1명, 민주노동당 1명, 무소속 4명 등 총 19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 중 선거 사무소를 개소하고 구체적 움직임을 갖고 있는 후보군은 10여명에 이른다.
여기다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는 후보군이 더 존재해 유권자들은 후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재선거가 임박해 오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언론이 이들 후보들을 외면함으로써 제대로 알 길이 없다. 현대 선거는 미디어 선거라고 할 정도로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은 막중하다.
선거보도 본령 망각하면 투표율 더 낮을 수도
가뜩이나 역대 재·보궐선거의 투표율은 30%를 넘기 힘들었다. 지난 2002년 8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율은 29.6%, 2003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또한 29.5%, 2005년 4월 국회의원 및 기초단체장 재·보궐선거 투표율은 33,6%에 그쳤다. 2001년 10월 실시된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41.9%를 기록한 이래 30% 안팎에 머물렀다.
더욱이 재선거를 치르는 곳은 대부분 유권자들이 선택한 후보들의 불법·비리 등 부도덕한 사고로 인해 다시 선거를 치르는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들의 관심은 다른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할 게 뻔하다.
이런 마당에 언론이 선거보도의 본령을 망각한다면 투표율은 더욱 저조할 수밖에 없다. 사실보도, 공정보도를 통해 언론이 유권자들에게 보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때 유권자들의 관심과 투표율은 높아질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의 실증적인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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