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감소, 부진, 악화…."
12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보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들이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기업들의 투자는 시간이 갈수록 큰 폭으로 줄고 있다. 그동안 진정세를 보였던 물가마저, 최근 환율이 폭등하면서 출렁이고 있다.
한마디로 경기침체의 골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오전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경기 하강이 조금 더 깊고, 길어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강하다"고 우려할 정도다.
소비와 기업투자 등은 계속 하락 중... 일부 건설투자만 증가
우선 한국은행이 이날 내놓은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보고서'는 소비를 비롯해 투자, 고용, 물가 등 경제 전 부문에 걸쳐 국내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는 지난 1월 설 연휴기간이 끼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가 19.8% 줄어드는 등 크게 위축됐다. 2월의 경우 구체적인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같은 소비 부진은 계속됐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은 쪽은 설명했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소비와 수출이 줄다 보니, 기업 투자 역시 감소한 것이다. 작년 12월 -23%였던 설비투자 증가율이 1월에는 이보다 더 떨어져 -25.3%를 기록했다.
특히 앞으로 경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업들의 국내 기계 수주도 작년 12월 -38.5%에서 지난 1월에는 -47.8%로 감소폭이 더욱 커졌다. 이는 기업들이 향후 경기 전망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의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에 따른 예산 집행으로 일부 토목공사를 중심으로 적게나마 상승했다. 하지만 이 같은 토목사업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향후 건설수주액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토목 공사가 늘었지만, 일반 건축에서 더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공장 가동율 60%대... 물가는 다시 뛰고, 고용은 크게 악화
이러한 소비 침체와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함께 지난 1월 한 달 동안 제조업 생산도 줄어들었다. 이 가운데 IT 업종과 자동차 업종 등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공장 평균가동률은 61.5%에 그쳤다. 작년 12월에는 62.3%였다. 제조업 뿐 아니라 서비스업도 여전히 부진했다.
소비와 기업들의 투자 부진은 실업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취업자 수가 무려 10만 명이 줄어들었다. 작년 12월 1만 명 줄어든 것에 비하면 고용 사정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물가도 다시 오름세다. 최근 환율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고환율은 수입 원자재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기업들 처지에선 그만큼 제품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오전 기준금리를 기존 2%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한때 0.25%포인트 금리 인하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물가 상승과 불안정한 환율로 인해 금리를 동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기본적으로 금리는 우리 경제의 여러 현상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금리 결정 과정에서) 외환시장 움직임이나 경기 전망의 변동도 당연히 감안이 된다"고 말했다.
이성태 총재 "경기 하강의 골, 깊고 길어질 것"
이 총재는 특히 향후 경제전망에 대해선 "경기침체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제하고, "경기침체의 저점이 언제인지, 언제 반등할 것이냐는 세계 경제 움직임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경기하강이 조금 더 깊고 길어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강하다"고 이 총재는 우려했다.
그는 또 "앞으로 우리 경제를 보면, 고용사정이 좋지 않고 투자심리도 위축돼 있기 때문에 내수가 당분간 좋지 않을 것"이라며 "수출도 상당한 폭의 감소율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위험이 상당히 크다"고 전망했다.
앞으로,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경기에 발맞춰 통화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경기가 너무 위축되는 것을 막으면서,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 데 초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여러 경제상황을 비춰볼 때 작년 10월 이후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낮춰왔다"면서 "금융시장에서는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와 은행 대출 금리 등이 하락하면서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났으며, 기준금리 완화정책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점검하면서 앞으로 (통화) 정책을 운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치권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따른 한국은행의 국채 매입 여부에 대해서도, 이성태 총재는 "(한은은)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고 금융시장은 실물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채가 많이 발행돼서 채권시장 등 다른 금융거래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때 거시경제 상황에 적합한 금융활동이 이뤄지도록 간접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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