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따라 쓰는 우리 마을 산책 이야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경칩에는 마을 뒷산(뒷산이 북한산입니다. 넉넉하고 웅장한 산을 뒷산으로 가졌으니, 우리는 복 받았습니다) 냉골 계곡에서 개구리알을 찾고 개구리 무병 장수(?)를 빌어주었지요.
다음 주면 춘분이니 봄이 깊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 지난 30년간(1960-1990년)의 평년값과 오늘의 최고 기온, 최저 기온을 비교해보니 2도 정도 높았습니다. 이런 걸 확인하는 마음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확인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하지 않나 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움터 뒷 골목에서 돌과 보도블럭 사이로 올라온 뽀리뱅이를 만났습니다. 뽀리뱅이는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노란 꽃을 피웁니다. 흙이 있는 틈, 그 작은 틈새로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녀석이 대견해 보입니다.
한껏 물이 올라 잎이 터지기 직전인 수수꽃다리입니다. 우리 마을의 봄은 이렇게 라일락 가지 끝에 찾아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서울에서도 북쪽에 있고, 또 북한산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봄 소식이 늦은 편입니다. 그래도 부지런히 봄을 만들어내고 있는 생명들이 지천에 있습니다.
지난 산책 때 참나무가 아직도 지난해 마른 잎들을 매달고 있는 걸 확인했는데, 오늘은 단풍나무도 그렇게 마른 잎을 매달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활엽수들이 대체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느티나무 쫙 쫙 벌어진 가지 밑에 자리 잡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가지 마디마디마다 잎눈이 움터 오르고 있습니다. 마른 가지에 점을 찍듯 올라온 잎눈 때문에 바라다본 하늘이 정겹습니다. 일년 중 이 때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 아래 남쪽에는 벌써 목련이 피었을 텐데 우리 마을 목련은 아직도 보송보송한 솜털에 꽃잎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꽃눈과 잎눈이 이제 곧 터질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이 목련 꽃눈을 만지고 싶어 안달입니다. 사군자와 서예를 배우기 때문인지 바로 붓털 같다는 표현이 튀어 나옵니다. 목련 꽃눈 가지를 꺾어 먹물 한 방울 찍어 꾹 눌려 놓으면 화선지 위로 바로 번져 나갈 것 같는 느낌입니다.
덩굴 장미 열매입니다. 이 새빨간 열매를 겨우내 산새들이 먹고 살지요. 그러나 채 소화되지 못한 씨앗들이 새 똥과 함께 땅에 떨어져 봄이면 새싹을 틔운답니다. 이렇게 열매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 열매를 먹을 만한 새들이 우리 마을에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복숭아 나무입니다. 오래된 마을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단독 주택이 많아서 그런지 집집마다 마당에 살구나무, 앵두나무, 감나무 같은 과실수들이 한두 그루 씩은 꼭 있답니다. 복숭아 나무도 자세히 보면 봄맞을 준비에 한창입니다.
마을과 산자락이 연결되는 곳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가꾸는 텃밭들이 있습니다. 구청이나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불법점거라고 하지만 조그마한 땅이라도 보이면 푸성귀들을 길러 먹으려는 자연스러운 사람의 마음에까지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햇볕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냉이들이 보입니다. 하나 뽑아 아이들과 냉이향을 즐겼지요. 이렇게 산비탈에서 냉이를 직접 뽑아 보니 그동안 싫어하던 냉이 된장국이 갑자기 맛있어 질 것 같다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냉이 맞아요?" 여기 저기서 아우성입니다. 인간이 본래 '수렵과 채집'에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은 냉이 찾기에 열심입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주고 된장국 끓어 달라고 하겠다고...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우리가 다 뽑으면 내년에는 여기서 냉이를 못찾을 수도 있다고 하자 아이들, 조용히 마음을 접습니다.
아이들이 "이 게 냉이에요?" 물으며 찾아온 잎입니다. 비스무리하게라도 생겼으면 어찌 설명을 해 볼 텐데 전혀 다른 놈을 가져왔습니다. 이 풀이 저 풀 같고, 저 풀이 이 풀 같고, 내 보기에는 다 똑같은 풀인데 이건 꽃다지, 저건 냉이, 저건 질경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 풀 이름이 뭐였더라 한참을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냉골 계곡, 개구리 산란 장소입니다. 계곡 바닥에 낙엽이 깔려 있어 보이지 않지만 수십 마리의 개구리들이 짝짓기에 한창인 곳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들어 개구리를 관찰하는 동안, 지나가시던 어른들도 우리를 보시며 개구리를 보시며 한마디씩 합니다. '어, 경칩 지나니, 개구리가 저렇게나 나왔네. 개구리가 나왔으니 봄은 봄인데 나는 왜 아직도 겨울잠자를 못벗고 있나?"하시며 껄껄 웃으십니다.
조금 더 자세히 개구리 생김새를 보기 위해서 계곡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볼 수 없었던 도롱뇽알을 찾을 수 있었지요. 아이들, 도롱뇽이 아직 우리 계곡을 떠나지 않았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너도 나도 구경하겠다고 합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서로 사랑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리 저리 튕기며 놀고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자세히 관찰하니 암놈과 숫놈이 서로 몸 색깔이 달랐습니다. 헤엄을 칠 때 주로 뒷다리를 사용한다는 것도 알았지요. 개구리는 평생 몇 번 짝짓기를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앵두나무 꽃눈입니다. 앵두는 꽃이 다닥다닥 피는데 그래서 그런지 꽃눈이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꽃눈 아래 가지에는 잎눈이 서로 마주나게 붙어 있습니다. 빨간 앵두를 먹을 날을 기다려봅니다.
도깨비풀(도깨비 바늘)입니다. 짐승이나 사람의 몸에 붙어서 번식을 하는 놈이지요.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서로 옷에 도깨비 바늘을 붙여주며 놉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옛 아이들이 그렇게 놀았듯이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노나 봅니다.
낙엽 사이로 애기똥풀 새싹이 한 뼘이나 자라 있습니다. 이른 봄 애기 똥풀에도 노란 진액이 나오는지 궁금한 아이들, 잎 줄기를 하나만 따서 손톱에 칠해 봅니다.
산책을 마치고 배움터로 돌아와 산책 일기를 씁니다. 아직 싹이 틀 기미도 보이지 않는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 참나무, 단풍나무부터 이미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수수꽃다리, 매화, 복숭아, 살구, 앵두나무까지 우리는 참 아름다운 마을을 고향으로 품고 있습니다.
<산책일기>
길 한가운데 소나무가 서 있었는데 희정샘이 말하기를 이 마을에 30년 동안 살았던 할아버지한테 물어봤는데 옛날에는 마을이 소나무숲이었다고 했다. 감나무를 3그루나 봤는데 여전히 잎이 나올 기미도 안보였다. 가면서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복숭아나무를 봤다. 눈으로 보기에는 딱딱해 보이는 앵두나무도 봤다. 회양목과 느티나무는 잎눈과 꽃눈이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라일락나무는 굵은 기둥은 지저분했는데 가지는 매끄러웠다. 목련 꽃눈은 붓의 끝부분 같았다.
<산책일기>
개구리를 봤는데 개구리가 말라서 아무 것도 못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뒷다리를 주로 많이 이용한다. 뒷다리에는 물갈퀴가 있고, 짝짓기를 할 때는 의외로 수컷이 위로 암컷이 아래로 간다. 그리고 가끔은 물살이 쎄서 개구리가 잘 안보였다. 나머지 애들은 개구리알 도롱뇽알을 봤지만 지민이와 나는 개구리만 관찰하였다. 빨간 개구리와 노란 개구리가 짝짓기를 하였다. 신기하였다.
산책일기를 마치고 봄새싹 샐러드 샌드위치로 간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모든 공부의 끝은 바로 우리 생활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 그렇게 우리 마을 봄은 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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