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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리 신이치로 선생님이 쓰고, 김은산 선생님이 옮긴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 겉 표지
호리 신이치로 선생님이 쓰고, 김은산 선생님이 옮긴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 겉 표지 ⓒ 민들레
입시와 진학지도가 없는 학교, 학년도 없고 시간표도 없고, 국어, 수학, 과학 같은 일반 교과도 없는 학교, 숙제도 없고, 종이 울리지도 않고, 시험도 없고, 성적표도 없으며 심지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어른도 없으며, 학교 건물에는 복도도 없는 학교.

나이와 직종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모두 똑 같은 월급을 받고, 지역사회가 학교의 확장이고, 지역 사람들은 유능한 교사인 학교, 조례 같은 딱딱한 의식이 없고, 입학식, 졸업식 대신 '입학을 축하하는 모임', '이제 안녕히 가세요를 말해야하는 모임'이 있는 학교.

교장실도 없고 그리고 또 돈도 없는 학교, 그렇지만 늘 즐거운 일이 가득한 학교, 이 특별한 학교가 바로 1992년 일본 와카야마 현 동북쪽 끝 하시모토 시 교외에 문을 연 '키노쿠니어린이학교'이다.

"학교는 즐겁지 않으면 안 된다. 즐겁지 않으면 학교가 아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자란다. 그리고 자라는 아이는 행복하다. 웃음 짓는 얼굴과 기쁨에 겨운 환성은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표시다. 키노쿠니는 이렇게 믿는 교사와 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학교다."

아이도 행복하고, 교사도 행복한 학교 키노쿠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해서 144명의 아이들과 30명의 어른들이 함께 생활하며, 수업의 태반은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체험학습이고, 어느 반이나 나이가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섞여 있다. 학년 반이 없는 대신에 공무점이나 농장, 전자공작소와 같은 프로젝트 반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키노쿠니 학교에 관한 정보가 적지 않다.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키노쿠니를 소개하였고, 이 책을 옮긴 김은산 선생이 2001년에 번역한 <키노쿠니 어린이마을>이라는 책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달 평균 40여명의 한국사람들이 키노쿠니를 방문하고 있으며, 간디학교, 두레학교, 무지개학교, 별학교 같은 우리나라 대안 학교 아이들은 며칠씩 머물면서 깊이있는 교류를 진행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키노쿠니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설립자인 호리 선생이 개교 2년째인 1994년에 쓰고, 2001년 한국에 번역 출간된 <키노쿠니 어린이마을>에 소개된 오래된 정보에 의존하고 있었단다. 책을 옮긴 김은산 선생은 개교 이후에 키노쿠니의 발전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한 이 책을 국내에 소개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책을 쓴 호리 신이치로는 일본에 처음 '서머힐'과 자유교육을 소개하고, 키노쿠니를 통해 자유교육의 실천적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책을 옮긴 김은산 선생은 1972년 한국에 서머힐을 소개하고 '한국니일연구회'를 이끌어온 자유교육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이 책의 특별한 장점은 한국어판 출간을 위하여 호리 신이치로 선생이 책의 마지막 장인 '키노쿠니 학교의 뒷이야기'를 추가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2008년까지 진행된 키노쿠니 학교의 변화와 발전과정이 모두 기록된 따끈따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학교가 자유학교인가?

니일이 영국에 세운 자유학교 '서머힐'을 모델로 시작한 키노쿠니 역시 '자유교육'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 호리 선생이 쓴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는 자유교육의 의미를 분명히 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자유학교는 아이가 기성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이나 사물을 보는 방식을 구축하도록 돕는 학교다. 교육방법 면에서는 어른들의 직접 통제를 되도록 줄이고, 아이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 실험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학교다."(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기존의 인간관계와 학교 속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을까? 호리 선생은 아이들이 감성과 지성 그리고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프로젝트 활동으로 아이들이 키노쿠니 '박물관'을 짓고 있다.
프로젝트 활동으로 아이들이 키노쿠니 '박물관'을 짓고 있다. ⓒ 민들레

"자유롭지 못한 아이는 우선 감정, 특히 무의식의 영역에 불안과 긴장, 죄의식과 자기증오 등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다. 이런 아이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기 어렵다. 내면에서 불안해하고 자기를 증오하는 아이는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고, 항상 외부의 평가를 의식한다." (본문 중에서)

"현대 학교교육은 이상할 정도로 기성 지식을 암기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때문에 암기는 잘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일은 잘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일에 불안마저 느끼는 것 같다."(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감성과 지성 면에서만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인 도덕마저 교과서로 배운다. 가령 협력이라 하면, '힘을 합치는 편이 서로 즐겁고 이롭다'고 실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체험 없이 그저 협력이라는 덕목만을 강요당하면 민주사회에서 요구하는 실제적인 사회성을 기르기는 어렵다." (본문 중에서)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유로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자유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호리 선생님의 생각이었고, 그는 키노쿠니를 통해 자유교육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호리 선생은 자유로운 아이와 자유학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유로운 아이는 감정적으로 해방되어 스스로 생각하며, 공동생활에서 민주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아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학교는 감성과 지성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운 아이를 기르는 일을 목표로 삼는 학교다."(본문 중에서)

왜, 자유학교가 필요했는가?

일본이나 한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많은데 학교 교육을 둘러싼 상황도 비슷한 점이 많다. 키노쿠니 설립을 준비할 무렵 일본에서도 왕따, 등교거부, 학교폭력 같은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교사가 준비한 것을 똑같이 배우고, 교과서 내용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느냐에 따라 서열화 되고 선별된다.

심지어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 '학습의욕이 없는 아이', '공부 못 하는 아이'라는 딱지가 붙고, '공부 못 하는 아이'는 '나쁜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수학시간은 기초적인 수를 사용해서 생각하는 태도와 능력을 기르는 대신에 기계적인 반복 연습에 내몰리고, 국어 시간에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저자의 의도대로 읽고 파악하도록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호리 선생은 일본교육이 가진 10가지 잘못된 상식을 찾아내고 그 상식을 바꾸는 키노쿠니를 세웠다고 한다.

"교사의 관리 대신 아이들의 자기결정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획일적인 학습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존중하고, 지식의 전달보다는 구체적인 생활이나 창조를 매개로 한 학습을 중요시 하는 학교. 아이들 마음속에서 자기부정과 증오를 떼어내고, 살아있는 즐거움과 성장을 실감하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학교."(본문 중에서)

호리 선생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니일이 만든 '서머힐'을 일본에 새로 여는 자유학교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아울러 평화주의자 존 엑켄헤드가 스코틀랜드에 세운 킬크하니티하우스학교, 영국 노동당의 교육정책에 따라 세워진 '라이징힐학교', 펫 몽고메리가 미국 미시간주에 세운 '크롱라라학교'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구체적인 사례를 배웠다고 한다.

서머힐을 세운 니일은 아동기에 학습을 교육의 중심에 두어서는 안 되며, 무의식의 표출인 놀이와 창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목공, 미술, 음악, 춤, 연극과 같은 활동이다. 키노쿠니 역시 듀이의 실험주의 교육이론을 참고로 농업, 목공, 인쇄, 재봉, 음식만들기, 지역활동 등 여러 가지 작업이나 실제적인 일들을 교육내용의 중심에 두었다고 한다.

각각의 학교에서 그리고 듀이의 실험주의 교육에서 어떤 장점을 어떻게 가져와서 키노쿠니에 적용하였는가는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에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짧은 글속에 모두 소개할 수 없으니 이것을 찾아 읽고 공부하는 것은 독자들 몫이다.

어쨌든 서머힐을 비롯한 여러 자유교육 사례로부터 배운 키노쿠니 교육과정은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바로 ▲자기결정의 원칙, ▲개성존중의 원칙,  ▲체험학습의 원칙이다. 키노쿠니는 바로 이 세 원칙의 유기적인 통합을 통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를 주는 대신 책임을 묻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1996년 문을 닫은 스코틀랜드에있는 킬크하니티학교 건물을 키노쿠니학교가 구입하여 키노쿠니 아이들을 위한 국제학교를 만들었다. 사진은 킬크하니티 학교를 찾은 키노쿠니 아이들과 호리 선생님
1996년 문을 닫은 스코틀랜드에있는 킬크하니티학교 건물을 키노쿠니학교가 구입하여 키노쿠니 아이들을 위한 국제학교를 만들었다. 사진은 킬크하니티 학교를 찾은 키노쿠니 아이들과 호리 선생님 ⓒ 민들레

특히, 인상 깊은 자기결정의 원칙에 대해서만 조금 더 소개해 본다. "무엇이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자유교육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적흥미와 의욕을 자극하는 활동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 아이들은 오히려 부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진정한 자유학교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매력있는 활동들을 풍부하게 갖춰야 한다. 이론상으로나 우리의 경험으로 보나,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가 인정되느냐는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들이는 교사의 시간과 열정에 비례한다."(본문 중에서)

아울러 호리 선생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때는 책임을 묻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 흔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하지만 책임은 네가 져야 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호리 선생은 이것은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해도 좋다. 책임은 어른들이 져줄 테니까."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이 있는 학교, 이런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 볼 수 있는 학교라야 자유학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다. 스스로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부모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신념이 통째로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키노쿠니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선구적인 학교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벤치마킹하였는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앞서 소개한 학교 외에도 프리스쿨, 오픈플랜스쿨, 프레네학교, 북방교육, 이나초등학교, 오가와 초등학교 그리고 슈타이너학교와 같은 여러 학교들로부터 배운 장단점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키노쿠니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도입하였는지, 이 글을 통해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또 한 번 아쉽지만 할 수 없다. 구체적인 내용은 독자들이 직접 책을 읽고 공부하시기 바란다.

서평으로 소개 못한 구체적 사례, 직접 읽어 보시길...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지금 자유학교인 키노쿠니가 목표로 하는 것, 교육목표의 평가와 관점, 기본방침과 교육활동 형태, 하루 생활과 학습조직화 방법을 담고 있다. 아울러 키노쿠니 학교를 대표하는 수업형태인 '프로젝트 수업'을 전개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프로젝트의 '생각하는 방법', 프로젝트 계획 세우기, 그리고 미끄럼틀 만들기 프로젝트를 구체적 사례로 보여준다.

프로젝트를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기초학습 과정, 중학교의 교과학습과 진로지도, 그리고, 키노쿠니 설립 이후 5년에 대한 평가, 앞으로의 과제, 한국어판을 위하여 추가된 1997 - 2008년까지의 키노쿠니학교 뒷이야기까지가 이 책에 담긴 전부다.

몸과 마음,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를 키우는 자유로운 부모, 자유로운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흥미로운 책이다. 자유교육과 대안교육, 대안학교를 희망하는 모든 부모와 교사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거부하는 학교, 죽어가는 학교를 어떻게 살려야하는지 그 길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책 끝머리에 호리 선생님이 키노쿠니 졸업생들에게 들려주었던 당부 말을 독자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부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마로니에북스(2008)


#키노쿠니#대안학교#자유학교#교육#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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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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