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홀로 피어 철 이른 일광욕을 즐기던 생강나무 '꽃'
"뭐해? 이 화창한 봄날, 집에 있지 말고, 어디 봄나들이라도 갈까?"
지난 일요일, 지인의 전화에 의기투합하였더이다. 아이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것들이 컸다고 이젠 안 따라 나서네' 싶었더이다. 이럴 땐 빨리 포기해야 덜 서운하더이다.
지인과 여수시 망마산에 오르니 중턱 체력 단련장에 아이들이 봄을 만끽하고 있더이다. 집에 있을 아이들이 아쉽더이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생강나무 꽃은 홀로 피어 철 이른 일광욕을 즐기며 꽃 향을 피우더이다.
"시간 여유가 있는데 매화 꽃 구경 갈까요?"
"좋지. 어디에 매화가 만발했어?"
하여, 망마산에서 여수시 소라면 현천으로 직행해 매화 꽃 구경에 나섰더이다. 현천 매화 밭은 봄바람이 산들거리더이다. 벌은 꿀 모으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더이다. 그 모양새가 여지없는 춘심(春心)이더이다.
여인들은 매화에 코를 대고 향취를 맡으며 푹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르고 하늘거리더이다. 그 모습이 톡 건드리면 금새 터질 것 같더이다. 그야말로 봄날의 연정을 잔뜩 품은 여심(女心)이더이다.
"여보, 우리 자태 시진으로 남겨줘요."
여심에 드리워진 춘심을 사진으로 남겼더이다. 꽃이 사람인지, 사람이 꽃인지 알길 없더이다. 그제야 여심은 꼬리를 감춘 채 인심(人心)으로 산화하더이다.
이름을 불러주자, 봄꽃이 된 '진달래'와 '광대나물'
"쑥 한 줌 캐 국 끓여 먹을까요?"
매화에 빠진 여심들이 한 줌 쑥을 캐는 동안, 나그네는 홀로 진달래와 광대나물을 쫓았더이다.
"너희들 어딨니?"
"나, 찾아봐라~!"
자신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던 '진달래'. 광대처럼 다양한 자태를 자랑하는 '광대나물'과 술래잡기를 하였더이다.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던 진달래와 광대나물을 만났더이다.
그러자 진달래와 광대나물은 김춘수 님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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