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병욱)은 19일 오전 11시 대법원 동관 지하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영철 대법관의 조속한 사퇴를 촉구하는 한편 사법제도 개혁을 주문했다.
지난 5일에 이어 두 번째. 이들은 '법관 독립 수호' '행정법관 철폐' '양심법관 보호' 등 구체적 주장 내용까지 밝혔다.
법관들이 나서기 힘든 구조인 데다 신 대법관 사퇴 여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상황. 현재 대법원 내에서 자정 목소리가 밖으로 전달되는 곳은 법원노조뿐이다.
기자회견 뒤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오병욱 위원장은 "오늘의 사법위기가 일개 담당 부장판사의 꼬리자르기식 경질이나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공직자윤리위 회부 형식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한 뒤 "신 대법관의 거취표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직권남용의 형사 문제화도 검토하는 등 강력한 퇴진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잘 짚지 않는다면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근무평정 제도 개선, 재판권 독립 등 권력 분산을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오병욱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
"신영철 사건, 곪았던 것이 터진 것"- 법원노조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곪았던 것이 제대로 터진 것이다. 그동안 법관 사회가 경직되어 있어 내부 단속이 잘 되어왔고 법관들도 입이 무거워서 외부로 알리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신영철 대법관 사건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 곪아서 터졌다? "그동안 법원노조에서는 줄곧 법관서열화, 관료화의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한 법관들의 불만도 고조된 것이 사실이다. 일부 법관들이 승진 등의 과정에서 주류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가 볼 땐 미네르바 구속 등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단 등도 법관 관료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른바 촛불재판 사건으로 촉발됐지만 대법원 배당문제라든지 법관 관료화 병폐로 나타난 현상이다.
판사가 사법연수원까지 나와 임명되면 재판업무에 전념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법과 정의를 선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행정업무를 하는 법관들이 있다. 대법관까지 올라가는 사람들 보면 일선에서 재판 경험 충분한 사람보다는 행정 업무를 많이 했던 사람들이 있다. 코스다. 이 코스를 밟아서 명예를 챙기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제사에는 관심없고 젯밥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과 똑같다."
- 지난 5일에 이어 오늘도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신 대법관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잖은가? 특히 일부 언론을 통해 희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속하게 입장정리를 촉구하고 사법부가 지니고 있는 곪은 부분들에 대해 개선의 칼을 대야 한다는 게 우리 주장이다. 더불어 이 문제는 신 대법관 사퇴 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 그렇다면 근본적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하나?"미봉책으로 그쳐서는 절대 안 된다. 법관의 피라미드식 승진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서열식 승진구조는 사법관료화 현상을 낳고 헌법과 법률에 명시한 법관의 양심을 왜곡하게 된다. 그리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 역시 개선해야 한다. 영장 전담 판사 제도 역시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방어하기 용이한 구조로 바꾸고 심급 제도에도 칼을 대야 한다"
- 법원노조가 생각하는 심급 제도 개선 대안은?"1심 법원의 경우 원칙적으로 단독재판장에 맡겨야 한다. 2심 법원의 경우 경력이 비슷한 세 명의 판사가 실질적인 합의체를 구성해 사실문제와 법률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합의부 판사들 상호간에는 순환보직을 운용해야 한다. 지금의 합의체는 주심판사와 배석판사의 연차가 워낙 차이가 나서 주종관계가 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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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법관 사퇴 여부가 관심사다. 만일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우리 사법제도가 일본의 그것을 많이 모방한다. 일본에서도 징계를 받고 그대로 그 직을 유지한 사례가 있었다. (신 대법관이 사퇴하지 않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법관으로서 명예는 실추될 대로 실추됐다. 우리 사법부가 자정할 기회까지도 본인의 자리 보존을 위해 빼앗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법적, 기타 수단을 다 동원해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형사문제화도 검토하고 있다. 형법 123조에 근거해, 사법 행정권의 남용을 들어 형사고발할 수 있다. 대법관 인사청문회 위증 부분은 국회에서 별도로 따질 것으로 안다."
"좌파 판사의 주장?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여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사태를 '좌우갈등' 혹은 '진보세력의 사법부 흔들기'로 보고 있다."좌파스럽다고? (웃음)이번에 문제제기한 판사들? 진보적이지 않다. 오히려 보수적인 분들이었다.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가 걸어온 길이 어떤지, 반성해 온 길이 어떤지 뻔히 알면서, 말로는 선진사법 얘기하면서 느닷없이 좌우로 몰아가니 황당할 따름이다. 좌파판사의 주장?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양심적이고 순수한 판사들의 문제제기였을 뿐이다. 이렇게 묻고 싶다. 지금 좌파 우파를 논하고 있는 주체가 누군가? '조중동'과 집권여당뿐이다. 이 문제를 순간 변질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주체가 누군가. 그들이다. 이 문제가 좌우논쟁이 되면 해결점이 없다."
이 순간 이영열 법원노조 사무처장이 <신뢰와 존경이 가득한 사법부>라는 대법원 소개책자를 들고 왔다. 그는 2006년 발간된 이 책 16쪽을 열어 읽어줬다. 그 곳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헌법이 천명하고 있듯이 법관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선언하여야 합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궁극적으로 법관의 독립을 통해서만 제대로 이뤄질 수 있고 이는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법관으로서의 모든 것을 걸고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려는 불굴의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 처장은 "'사법부 독립'에 대해 대법원 책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이 '불굴의 용기'를 펼쳐 보인 판사들의 양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번 사태에 대해 노조 차원의 진상조사를 시도한 적 있나?"있다. 하지만 조사 대상이 법관 그룹이라서 폐쇄되어 있다. 다만 박재영 전 판사와는 전화 인터뷰를 했다."
- 뭐라 하던가?"'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몇 년이 지나, 언론의 집중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한 시기가 온다면 그간의 과정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언론에 드러나는 것도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하더라."
- 이번 사태가 사법부 개혁 움직임까지 이어지리라고 보나?"말들은 안 하지만 내부의 자정 분위기는 많이 뜨고 있다고 본다. 판사의 특성상 드러내기를 싫어하지만 다수가 분노하고, '이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법원 노조도 많이 나서야 할 것 같고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석에서 만난 판사들도 '미네르바 구속은 개인적으로 너무 창피하다'고 얘기하지만 그들이 인생을 건 도박을 하기까지 지금 구조에서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법원노조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사법부 개혁과 신뢰회복을 위해 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