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국내외 23권의 유명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국방부가 이번에는 '불온서적' 지정이 부당하다고 헌법소원을 냈던 법무관 두 사람을 끝내 파면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방부에 따르면 육군중앙징계위원회는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 7명 중 2명에 대해 '군 위신 실추'와 '복종의무 위반' '장교 품위 손상' 등을 사유로 파면 결정을 내렸고, 이상희 국방장관은 어제(18일) 이 같은 징계결정을 승인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결정은 '불온서적' 지정만큼이나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태의 발단이 된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며 초헌법적인 일이었다. 또한 헌법소원은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징계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며 그 자체로 불법인 것이다.
코미디 같은 일을 벌여 사회적 지탄을 자초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헌법소원을 냈다고 징계하다니…. 군대는 시대를 초월하고 헌법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라도 된단 말인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대의 위신과 품위는 누가 실추시켰나?
더욱 가관인 것은 징계사유다. 지난해 10월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내자 이를 항명으로 규정했던 국방부는 마땅한 징계사유를 찾지 못해 그동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군인도 국민인 이상 헌법소원이라는 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징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찾아낸 것이 '군 위신 실추'와 '복종의무 위반' '장교 품위 손상'이라는 해괴한 이유들이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군의 위신과 품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또한 국민의 기본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복종해야 할 대상은 헌법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
지난 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은 해외토픽이었다. '단속'된 책들은 군사정권 시절 '불온'의 단골 메뉴였던 마르크스 계열의 서적들도 아니었다. 세계적인 지성 노암 촘스키와 한국문단의 자랑 현기영의 저작들이 '불온'한 것으로 낙인찍혔다. 주목받는 경제학자 장하준과 역사학자 한홍구의 책들은 언론에 널리 소개되고 대학교재로 활용되는 것들이다.
전 세계가 다 읽고 온 국민이 다 읽는 책을 왜 유독 한국 군인들만 읽으면 안 되는가? 국방부의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행태로 인해 지난 해 출판계가 '불온서적 특수'를 누렸던 웃지 못할 광경을 우리 모두 목격했다. '불온서적'의 저자들과 출판사들은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군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품위를 손상한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을 벌여 웃음거리가 되기를 자청한 군 수뇌부임이 분명하다. 법무관들은 군대 내에서 헌법과 법률이 제대로 집행되도록 감시해야 하는 사람들이며, 사법적 판단의 권한을 갖는다. 법무관들은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을 뿐 징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방부는 헌법에 복종할 의무를 위반한 것
군대는 헌법의 예외 기관이 아니다. 군대 내 행정 또한 헌법과 법률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군인 또한 국민인 이상, 군인이라는 이유로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제약 받아야 할 하등의 근거도 이유도 없다.
일곱 명의 현역 법무관이 제기한 군인의 행복추구권, 학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국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다.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그 부당성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군복무를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마저 포기하도록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하물며 일반 사병도 아니고 사법적 판단을 고유직무로 삼는 법무관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낸 것을 '복종의무 위반' 운운하며 징계한 것은 반헌법적인 행위인 것이다.
국방부는 "징계문제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강변했지만, "내부 건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군 기강과 지휘계통을 문란케 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한 징계"라는 말에서 그 주장의 허구성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이번 징계는 '명령'으로 포장하기만 하면 군인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군 고위층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적 사고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국방부가 이번 징계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군 법무관 10여 명이 파면된 전례'를 든 것은 그 분명한 방증이다. 지금이 군사독재 시대란 말인가?
국방장관 사퇴하고 불법징계 철회해야
군인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것이지 봉건시대 노예로 군에 팔려간 것이 아니다. 또한 지금은 군이 쿠데타를 일삼으며 헌법 위에 군림하던 군사정권 시절도, 안보논리와 냉전시대의 잣대로 사상을 검열하고 통제하던 독재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사태의 발단이었던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징계는 유효하다'는 무지하고도 오만한 인식을 드러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헌법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헌법을 무시하고 헌법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는 국방장관은 즉각 사퇴하고 불법징계를 철회해야 한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그들의 직무에 비추어 매우 정당하고도 시의적절한 것이며, 이들의 노력이 군내 민주화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10년 6개월 동안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며 80년대를 보냈던 선배로서 후배 법무관들의 용기와 결단을 적극 지지하며, 법률가로서 이들의 의로운 싸움에 힘을 보탤 것이다.
파면된 법무관은 군인사법에 따라 불명예 제대해야하며 변호사 자격도 박탈된다. 또한 국가공무원법에 의해 5년간 공직 임용이 제한되고 퇴직금도 절반밖에 받을 수 없다. 헌법정신과 법률가의 양심을 지킨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정의와 거리가 먼 것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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