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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철학함> 전봉주 선생님을 모시고
<철학과 철학함> 전봉주 선생님을 모시고 ⓒ 배성민

<철학>이 무엇일까? 이 물음이 주어질 때마다 당구장을 자주 드나들던 젊은 시절의 어느 날 내게 던져진 당혹스런 주문을 기억의 창고로부터 끄집어내게 된다. 그 주문이란, 내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 당구장의 주인이 다가와 손바닥을 내밀며 손금을 읽어서 자신의 운명을 살펴보고 말해달라는 부탁이다. [철학과 철학함-전봉주]

필자는 올해로 철학과 4학년이 되는 학생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철학과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 "철학은 뭐에요?" "철학을 배우면 써먹을 일이 있나요? 지인들 점을 볼 수 있는 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매번 이런 질문을 받으면 철학은 점을 보는 게 아니라 정치, 사회, 언어, 논리,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한다. 답변을 하고도 필자는 매번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4년이나 철학에 대해 공부했는데 철학에 대해 시원시원한 답변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초라했었다.

"선배 철학이 뭐에요?"

올해도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인문학회 '카르마'에 새로 가입한 09학번 새내기들이 철학에 대해 물었다. 매번 하는 답변을 똑같이 하다 보니 듣는 후배들도 아리송해하고 말하는 필자도 기분도 이상했다.

묘한 기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전봉주 선생님의 '인식론' 수업을 들어갔다. 철학에 있어 인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다 쉬어가는 시간으로 최근 교수님이 활동하고 있는 '부산희망대학 인문학 강좌'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주셨다.

"부산희망대학에서 저는 사회적 약자(빈곤계층)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요. 가난하고 사회에서 차별 받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을 배운 사람들의 태도는 변화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사회적 차별에 대응하는 방식이 예전에 인문학을 배우지 않았던 때와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정신의 힘이 강해진 거죠."

전봉주 선생님이 말씀을 듣고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철학과 철학함' 에 대해 강연을 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하시고 약속 시간을 잡아 알려달라고 하셨다.

철학함이라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추는 것

 가운데 전봉주 선생님.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 중이시다.
가운데 전봉주 선생님.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 중이시다. ⓒ 배성민

인문학회 '카르마'의 주최로 20일 금요일 저녁 6시 동아대학교 인문대 강의실에서 '철학과 철학함'에 대해서 전봉주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하였다. 

먼저 철학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점을 봐달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선생님은 "미래의 운명을 예언하고 다가올 불운을 극복하는 방편을 제시하는 일을 업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그 만큼 많고, 많은 만큼 무지한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큰 것입니다. 여기서 무지하다는 지적은 그저 지식의 유무, 과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란 각자가 스스로 행사해야 할 자신의 이성에 대한 자각과 믿음의 결여상태를 말합니다. 칸트는 이런 상태를 이성의 미성숙이라고 부릅니다." 라고 하셨다.

두 번째로 통속 철학자와 전정한 철학자를 나누어 고찰한 대목이 인상이 깊었다.

"철학자란 진리를 추구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통속철학자는 당대의 일반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골라하며, 따라서 시류에 영합 내지 편승합니다. 진정한 철학자는 당대의 일반인들이 듣기 거북한 말을 주로 하며, 따라서 시류에 뒤처지거나 앞서갑니다. 진정한 철학자의 소임은 당대인들의 행태를 정당화하거나 당연시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인들의 행태가 함유하는 문제점들을 적시하고, 당대인들이 편향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철학자가 일차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참된 앎'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참된 앎을 모색하는 활동을 철학함이라고 하였다.

"철학함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추고,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판단을 정립하여, 이 판단을 자기 존재(결정)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철학은 앎과 행위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여성주의에 대해 박학다식한 지식을 가진 한 여대생이 있다고 합시다. 한 교수가 그 여대생에게 '4년 동안의 장학금을 줄 테니 나와 하룻밤을 보내겠니?' 라고 물었다고 해봅시다. 만약 4년의 장학금에 눈이 멀어 여대생이 몸을 팔게 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여성주의적 앎은 지식에 그치게 됩니다. 하지만 철학은 앎과 행위의 불일치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생각과 말과 행위가 일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로 산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권위와 거짓에 대한 비판과 도발 그리고 경우에 따라 투쟁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말과 같고, 자신에 대해서는 위선(생각과 행위의 배반 적 사태)의 발생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격률 위에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일입니다."

"철학하며 사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일이요, 생산적인 일이다."

 활발한 질문을 하고 있는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
활발한 질문을 하고 있는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 ⓒ 배성민

인문학회 '카르마' 소속의 국문과 4학년 신현아 회원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철학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된 것 같아 매우 좋습니다. 특히 저 자신이 잊고 지내던 지식이 행위가 일치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자각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끊임없이 지식이 행위와 일치 할 수 있는 철학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겠어요."

김진만 대표는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게 언제부터인가 비합리적이고 분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문제 해결이 시작되며 여러 가지 대안이 창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하며 사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일이요, 생산적인 일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09학번 후배들은 아직 많이 어렵지만 이제 철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철학에 대해 뭔가 더 알고 싶은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 한 눈들도 볼 수 있었다.

이제 필자에게 철학과 철학함이 뭐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과 같이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대답은 이제 하지 않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 블로그 뉴스, 동아대 자유게시판과 프로메테우스에도 송고합니다.



#철학#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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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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