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약속 있는가?"
13년 간 타고 다녔던 나의 차 '적토마'. 폐차 당일, 미적거렸더니 벗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점심식사를 핑계로 움직여야 했지요. 식사 후 그와 폐차장으로 향했지요. 가면서 그랬지요.
"야, 적토마. 너 덕분에 세월 잘 보냈구나.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
20일 오후, 폐차장은 삭막합니다. 겹겹이 쌓인 차, 바퀴 없는 차, 유리창이 깨진 차, 트럭, 봉고 등 가지가지 군상입니다. 드디어 13년간 발이었던 '적토마'를 폐차하려는 게 실감납니다.
적토마가 고철 값으로 변해 딸랑 10만원
사무실은 한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폐차한 차량은 두 대. 경기가 어려워 올해 들어 폐차 차량이 줄었다는군요. 자동차등록증과 신분증을 내미니 차적 조회를 합니다. 과태로 제로. 자동차등록말소신고서가 작성됩니다.
우리네 인생이 크고 작은 우여곡절의 연속이듯, 적토마의 삶도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그러나 서류에는 '폐차'란 냉혹한 결과만 나옵니다. 우리네 사망신고와 비슷하단 느낌입니다.
여수시에 따르면 3년간 자진 폐차는 2006년 1545대, 2007년 1870대, 2008년 2685대로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서류를 마치니 통장번호를 요청합니다. 고철 값으로 딸랑 10만원을 지불한다나요. 소형차는 10만원, 고철 무게가 많이 나가는 포텐샤나 그랜저는 20만원이랍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차는 고철 값을 남기네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 '적토마, 안녕!'
"차를 맡겼는데 찻값을 줘야지, 왜 고철 값을 줘요? 하하~."
"결국은 분해돼 고철이 되니까 고철 값을 줘야요."
기대하지 않고 썰렁한 농담을 던졌는데, 역시나 사망신고서만큼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적토마가 분해될 폐차장을 둘러보았지요.
엔진, 범퍼, 타이어, 부동액, 폐기물, 차체로 분리한 후 차체를 압축하면 끝이었습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차체를 보니, '세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이 죽어 앙상히 뼈만 남은 모습.
적토마를 두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뒤돌아보니 처량하더군요. 들어올 땐 당당한 모습이더니, 이제는 홀로 남겨진 쓸쓸함이 느껴지더군요.
한마디로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발(去者必返)'이라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거겠지요. 이젠 정말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적토마,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