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사과벌레김성식의 집에 손님이 찾아들었다. 신현우와 현수 형제, 그리고 장세진이었다. 모두 어린 시절 친구로 어울렸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신현우는 김성식의 죽마고우였다. 세 사람은 모두 좌익이었다. 그들은 해방 후 잠시 대한민국의 관직을 맡았던 사람들이었다. 이승만 정권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던 그들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인민군이 들어오자 의욕을 가지고 새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서들 오게. 그동안 집에 얼씬도 안 하던 사람들이 웬일인가? 그것도 셋이 한꺼번에..."
신현우는 방에 앉자마자 김성식에게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이 중요한 시국에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할 텐가?"
순간 김성식은 조금 긴장되었다. 뼈가 있는 말인지 아니면 순수한 인사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대꾸했다.
"자네들처럼 이렇게 친구 집에 놀러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세 사람은 스스럼없이 시국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김성식은 자꾸만 몸이 도사려졌다. 이번에는 장세진이 말했다.
"이제 곰팡내 나는 연구는 잠시 접어두고 민족과 국가를 바로세우는 일부터 하세. 연구실에는 그 후에 돌아가도 될 것 아닌가?"
예전 같으면 농지거리로 받을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래서 욕설로 대꾸할 수도 있는 제안이건만, 김성식은 입이 오그라드는 자신을 느껴야 했다.
신현우가 미숫가루 사발을 놓으며 김성식에게 말했다.
"자네의 학식을 공화국에서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텐가?"
"나야 직장이 있지 않은가?"
"거절하는 건가?"
"거절이 아니고 내 능력 밖의 일이라서."
그들이 돌아간 후 김성식은 한동안 어두운 표정으로 벽만 보고 앉아 있었다. 정숙이 힐긋힐긋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이따금씩 정숙은 그에게 조심성이 지나치다고 말하고는 했었다. 사실 평시 같으면 오늘 왔던 친구들과는 막걸리 잔이라도 기울이며 허물없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어 곤혹스러웠다.
'이것은 나의 비겁일까? 신중함일까? 아니면 우유부단일까?'
정숙이 그의 옆으로 오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잘하셨어요."
김성식은 친구들을 만나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름대로의 지침을 정하고 마음 정리를 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음 졸이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힘에 겨웠다. 점심을 들기 전 그는 소주 반병을 들이켰다. 정숙도 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낮술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낮술도 그의 심란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는 못했다.
처남에게서 들은 인민재판 이야기그날따라 자꾸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점심상을 물리고 조금 누워 쉬려 했는데, 사촌 처남이 집으로 찾아왔다. 처남은 김성식에게 왜 이렇게 집에만 있느냐고 은근히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모두들 바쁘거나 바쁜 척하고 있는데 이렇게 혼자 집에만 있으면 반동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처남은 여러 사람들의 근황을 김성식에게 알려 주었다. 먼저 지금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몇이 거명되었다. 그들 중에는 좌익이거나 동반자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끼어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낮술을 마시며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을 처남에게 실토했다.
"평소에 붉었던 사람은 붉은 세상이 왔으니 좋아서 일할 것이고, 그 반대였던 사람은 겁이 나서라도 그런 척해야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야 그럴 만한 게 전혀 없지 않은가? 누워서라도 책이나 읽으면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닐까?"
"최기서 씨도 학자지만 며칠 전부터 혜화동 파출소에 나가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던 걸요?"
김성식은 처남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최기서라면 순수하게 공부만 하던 연구자가 아닌가? 최는 평소 우익정부에 부정적이기는 했지만, 자기는 이성을 가진 학자라고 자처했던 사람이었다.
"학자도 그럴 수가 있는가?"
"학자도 그래야만 하는 세상인가 봅니다."
처남은 그저께 명륜동에서 본 인민재판 이야기를 꺼냈다. 반장을 통해 성균관 앞으로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따발총을 멘 인민군들이 청년 몇 사람을 모아다 놓고 인민재판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반동분자요, 아니오?"
모두들 기가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는데, 그 중에 청년을 고발한 듯한 사람이 나서, "악질 반동이요"라고 소리치자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이 현장에서 쏘아 죽였다는 것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그 청년이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인민공화국에서 군령으로 인민재판을 금했다고 했는데?"
"말대로만 되면 정말 문자 그대로 인민공화국이겠지요. 그게 안 되니까 탈이지요."
다음 날 김성식은 학교에 나가 보았다. 자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고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새로 편성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심리학 연구실에 있던 조교 하나가 서기장 격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임원들이 이명선에게 무언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이명선은 일제 때 악질적으로 소문 난 마쓰다 교수의 심부름 역을 하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임원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따로 있을 바에야 뭐 하러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선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성식은 '괴뢰'니 '꼭두각시'니 하는 말들을 떠올렸다.
교수들에게 가두시위 요구하는 인민공화국자치위원회는 총장관사의 2층을 쓰고 있었다. 아래층은 대학본부의 사무실이었다. 김성식은 자치위원회의 회원 신분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서기장에게 가 신분증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동무는 출근 상황이 좋지 않아서 발급을 해 줄 수 없습니다."
김성식은 내심 충격을 받았지만 침착한 어조로 되물었다.
"지금은 방학 때가 아니오? 교수가 방학 기간에 날마다 출근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소?"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아무튼 날마다 나와 출근부에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일요일에도 나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교수들이 나와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모두 출근부에 인장을 찍고 자치위원회에 눈도장을 찍히기 위해서였다. 전차도 운행하지 않는데 10여 리 길을 걸어 나와 도장이나 찍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무용하고 비참한 노릇이었다.
김성식은 위원장인 유응호에게 가 말했다. 그는 별실에서 상임위원들과 회의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가 뚱한 얼굴로 김성식을 맞이했다. 김성식은 신분증 발급을 요청하고 매일 출근의 부당함을 제기했다. 그러자 유응호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일을 안 해서 그렇지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랍니다. 8월 15일까지 매일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하라고 합니다. 오늘도 학생들은 힘차게 열을 지어 나갔는데 과연 교수들은 몇 명이나 나갔는지 모르겠군요."
유응호는 교수들이 한심하고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일기 <역사 앞에서>를 재구성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