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에 있는 정안휴게소에서 뜻밖의 귀한 꽃을 만났다. 은은한 매향에 손에 들고 있는 잔에서 풍겨오는 커피향이 무색해 진다. 서울의 봄은 이제야 오는 것 같은데 경기도에 접어드니 연록의 빛깔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고, 남도를 향해 갈수록 완연한 봄이다.
요 며칠 따스한 날씨로 봄꽃들이 마음껏 기지개를 펴는가 보다. 논산, 잠시 견훤왕릉에 들러보니 무덤가에 꿩의밥, 꽃다지, 냉이, 양지꽃, 목련까지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향이 좋은 냉이꽃을 바라보니 신부의 부케를 닮았다. 이렇게 순백의 꽃, 질리지 않는 향기를 간직한 신부의 부케도 멋질 것 같다.
민들레도 피어나기 시작한다. 꽃술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불꽃놀이를 하는듯 하다. 저 작은 꽃술 하나하나가 씨가 되는 것이구나,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들 중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안다면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 하나도 없을 터이고, 함부로 대할 것 하나도 없을 터이다.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와 근처 공원 산책을 했다. 지난 밤 단비가 내렸다. 그래서인지 이제 서울에도 이런저런 꽃들이 수없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산자고, 할미꽃, 꽃다지, 냉이, 개나리, 진달래, 매화, 제비꽃을 집 근처의 공원에서 만났다. 개나리와 매화를 제외하면 조성된 것이 아니라 야생의 상태로 피어난 것이다. 그래서 더 정이 간다.
산책로에는 제비꽃과 갯버들의 꽃도 피었고 버드나무도 연록의 색이 퍼지고 있고, 수양버들도 갯버들처럼 화사하진 않지만 노란 꽃을 피웠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수양버들의 꽃은 기어코 담지를 못했다.
어떤 분이 "그거 하나 꺾어서 바람 안 부는 곳에 놓고 담으시죠?"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30분 이상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운가 보다.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그들이 피어난 과정을 생각하면 그러질 못하겠다. 어떻게 핀 꽃인데 사진 한 장 담자고 꺾을까 싶어서다. 물론, 사랑하는 이에게 아이에게 줄 꽃이라면 다르겠지만.
옥상으로 올라갔다. 올해 나를 가장 기쁘게 해 준 꽃은 단연 춘란이다. 돌단풍만 피었나 싶었는데 몇 년째 춘란이겠지 생각하며 키웠던 난이 올해는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운 것이다.
사실 지난 겨울, 그를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무관심 속에서도 꽃을 피웠으니 더 고맙고, 더 대견스러워 보인다. 비 온 뒤 반짝 추위가 있을 것이란다. 이젠 꽃샘추위도 아니고 반짝추위란다. 이제 완연한 봄, 애써 오더니만 이리도 빨리 피어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