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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물푸레나무 코뚜레에 코가 꿰인 소가 등에 멍에를 지고 숨을 쌕쌕이며 더딘 걸음을 하면 멍에 끝에 달린 쟁기를 앞세운 늙은 농부는 연신 바쁘게 "이랴! 이랴!" 소리로 걸음을 재촉한다. 녹슨 워낭소리가 푸르른 들판에서 방울처럼 구르다 흩어지고 소가 헛걸음을 하면 농부는 질퍽한 논둑에 앉아 곰방대를 빤다. 곰방대에서 피어오르는 파르스름한 연기, 먼 곳을 바라보는 휑한 소의 눈, 아득한 곳에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 

쟁기질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었다.

할아버지는 쟁기질은 무지렁이 촌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게으른 놈이 죽으면 소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배워서 당신처럼 살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 때문이었을까. 도시에 둥지를 틀고 분필 잡는 '선생질'을 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쟁기질을 잊고 살았다. 아니다. 쟁기질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았다. 사는 것이 끝없는 쟁기질이요, 선생질도 아이들의 마음 밭을 가는 쟁기질이었음을 모르고 살았다.

시골에 불원간에 돌아가야 할 정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밭을 가는 쟁기질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되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 쟁기를 끌 소도 없고 은빛 보습을 끼운 쟁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만 주면 트랙터를 몰고와서 드르륵 밭을 갈아주는 이웃이 있으니 밭가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지난 토요일(21일) 나는 비록 소가 끄는 쟁기는 아니지만 우리 텃밭을 내 힘으로 갈아엎었다.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3년째의 일이다.

아예 쟁기질을 하지 않는 자연농법과 땅에서 나는 것을 땅으로 돌려보내는 순환농법을 실천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풀을 갈아엎고 다져진 땅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쟁기질이 필요하다고 배웠던 짧은 지식과 경험도 작용했지만, 여름날 우거질 풀을 떠오르면 조금이라도 풀을 잡기 위해서 쟁기질을 해야 한다는 이웃의 권유를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기선생의 경운기를 빌려 밭을 갈기로 한 것이다.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나를 아내는 재미있다고 카메라에 담았다.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나를 아내는 재미있다고 카메라에 담았다. ⓒ 홍광석

한 번도 경운기를 다룬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시골 할머니들도  몰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았다. 시동 걸고 몰고 가는 일이야 그런대로 눈짐작으로 따라할 수 있었지만 밭가는 일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어를 1단에 넣고 천천히 움직여도 경운기는 제멋대로 가고 특히 회전을 할 때는 회전 반경을 예상하지 못해 경운기가 콩밭으로 달려들었다. 어렵게 후진 기어를 넣고 간신히 빠져나오니 경운기는 이미 예정된 코스에서 벗어나 있었다.

갈아엎은 땅을 다시 갈고, 경운기의 방향만 제대로 잡아주고 따라만 가도 될 것인데 나도 모르게 잔디 깎는 기계를 밀듯 경운기를 미는데 힘을 썼으니 지치지 않을 장사가 있을 것인가? 불과 200 평의 밭을 가는데 2시간 넘기고 보니 시간은 오후 4시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손으로 밭을 갈 욕심과 금방 끝나겠지 하는 안이함 때문에 점심을 미뤘더니 완전히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어설픈 농부가 스스로 업그레이드라도 된 것처럼 생각되고, 진짜 농부가 되는 한 단계의 의례를 통과한 것처럼 흐뭇했던 까닭은 내 피에 흐르는 쟁기질의 유전인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쟁기질한  밭의 일부 쟁기질 후 두둑까지 치고나니 작물이 자랄 수 있는 밭의 꼴이 갖추어졌다. 다음 주에는 멀칭을 하고 우선 콩과 토란, 생강, 울금 등을 심어야겠다.
쟁기질한 밭의 일부쟁기질 후 두둑까지 치고나니 작물이 자랄 수 있는 밭의 꼴이 갖추어졌다. 다음 주에는 멀칭을 하고 우선 콩과 토란, 생강, 울금 등을 심어야겠다. ⓒ 홍광석

앞으로 소가 끄는 쟁기질은 사진 속의 풍경이 되고 말 것이다. 아쉽다고 한들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들판 가운데 소 대신 기계가 소란을 피우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당분간 쟁기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쟁기질은 밭을 가는 일만은 아니다. 우리 가족이 먹고 싶은 것들을 심을 수 있는 농사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리고 농사란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마음 밭을 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때맞추어 씨앗을 넣고 풀을 이기도록 응원하는 일이 남았다. 얼마나 수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 절반은 하늘이 맡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참, 비록 소를 앞세운 쟁기질은 아니었지만 경운기로 밭을 가는 내 모습을 할아버지가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필통에도 옮길 예정임



#쟁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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