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 있는 대형 한인교회인 동양선교교회의 주차장 확장으로 35년 동안 살아왔던 주거지에서 내몰리게 된 재미 일본인 마사코 모치주키(73)씨. 그는 자신을 '나무'에 비유했다. 35년 동안 한 집에 살면서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이 교회는 주차장을 확장하기 위해 예배당 뒤편에 있는 4개의 아파트 건물(총 40가정)을 사들였다. 그리고 작년부터 거주자들에게 퇴거를 종용해 현재까지 38가정이 아파트를 떠난 상태다. 최근까지 장애인과 노인 등 5가정이 남아 있었으나 교회 임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3가정은 떠났고 1가정은 거주지를 물색하고 있다. 마사코씨만 마지막까지 남아 퇴거를 거부하고 있다.
마사코씨가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마사코씨는 그 교회가 들어서기 전인 1974년부터 이곳에 살았다. 결혼하면서 마련했던 신혼 보금자리다. 자녀가 없는 마사코씨는 10여 년 전 남편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뇌출혈로 두 번이나 쓰러져 몸마저 성치 않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지금껏 돌보고 있다. 세금법을 공부해 매년 노인들의 세금 환급을 돕고 있고, 노인들에게 점심식사를 나누어주는 봉사활동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이사 갈 곳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마사코씨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마사코씨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 집을 떠나는 게 두렵고 힘들다고 했다.
"이 집은 제 신혼의 단꿈이 묻어 있는 곳이고 제 고향 같은 곳입니다."그가 이사 오면서 마당에 심은 장미 나무 5그루는 마사코씨만큼이나 이 집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매년 장미꽃이 필 무렵인 이맘때면 마사코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부터 연다. 마당에 핀 장미꽃을 보기 위해서다.
"이 장미들은 제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좀 있으면 또 꽃을 피울 겁니다. 그런데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이 장미 나무를 시멘트로 덮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그냥 살게 해주는 게 저를 돕는 겁니다"
이젠 모두 떠나고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은 마사코씨는 장미를 자식 삼아, 버려진 고양이와 참새들을 친구 삼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다.
"늘 우리 집에 들르는 식구들이 또 있지요. 버려진 고양이들과 참새들입니다. 날마다 마당으로 날아드는 참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제 일과랍니다. 가끔 내가 좀 늦게 일어나면 참새들이 부리로 창문을 두드려댑니다. 왜 밥을 안 주냐고요.(웃음)"더 많은 보상을 바라고 버티는 거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 마사코씨는 거액의 보상도, 더 좋은 주거 지역도 원치 않는다며 자신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가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마사코씨는 답답한 마음에 3개월 전부터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마사코씨가 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자 한국인 친구가 혹시 교회에서 도와줄지 모른다며 교회로 이끌었다.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친절하게 맞아줍니다. 장로님들이나 목사님들도 저에게 '도와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합니다. 그러나 나를 도와주는 건 그냥 계속 살게 해주는 겁니다.""교회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지를 더 지어주진 못할망정..."
이번 철거는 마사코씨 개인의 문제일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사코씨가 살고 있는 집은 '렌트 컨트롤'(Rent Control) 아파트로 분류된다. LA는 저소득층 및 노약자들을 위해 주거지를 보존하고 집주인의 횡포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고자 1978년 이전에 건축한 집 가운데 일부를 렌트 컨트롤 아파트로 묶어두었다.
렌트 컨트롤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는 몇 가지 혜택을 받게 되는데, 집주인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으며, 마음대로 렌트비를 인상할 수 없다. 만약 렌트비를 올리더라도 1년에 한 차례, 물가 상승 지수에 맞추어 3%에서 8%까지만 인상하도록 법으로 제한해놓았다.
때문에 마사코씨가 살던 아파트에도 저소득층 주민들이 많았다. 한인타운노동연대는 "주민들이 월수입 600~1600불인 저소득층이며 매월 500~600불 정도의 렌트비를 지불해왔다"고 밝혔다. 마사코씨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과 은퇴하기 전에 모아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현 렌트비 시세를 고려할 때 직업도 없는 마사코씨가 교회에서 지급하는 이사 비용 보조금만으로는 2년을 채 버티기가 어렵다.
마사코씨를 곁에서 돕고 있는 한인타운노동연대의 남장우 상임 활동가는 마사코씨의 집은 법과 연결되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8년 이전으로 돌아가 집을 세우지 않는 한 이런 렌트 컨트롤 아파트는 더 이상 지을 수가 없는 거죠.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 건물들을 더 짓지는 못할망정, 주차장을 짓겠다고 건물을 사서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철거하겠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뿐입니다."이에 이 교회의 행정담당 목사는 "주일마다 많은 분들이 예배드리러 왔다가 주차장이 없어서 돌아가는 실정이다. LA시 법에 따라서 철거 절차를 밟아나갔다. 하지만 해당 건물들이 렌트 컨트롤 주택이라는 건 몰랐다. 현재 철거된 건 계속 진행하되 나머지는 충분히 고려하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예수님이라면? "퇴거당하는 분들 틈에 있겠죠"
한인타운노동연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7년 사이에 LA 지역에 있는 이런 렌트 컨트롤 주택 1만3000개가 사라졌다. 부동산 개발 과열 경쟁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지만, 막상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비싼 렌트비 때문에 더 가난한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약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것 같냐는 물음에 마사코씨는 웃으면서 "그분이라면 처음부터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없애진 않겠죠"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한인타운노동연대 박영준 소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 교회에 없을 겁니다. 아마 퇴거당하는 분들 가운데 계실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주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