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77년 봄. 경기전에서 영생고 선배들과>라는 글귀가 씌여있는 사진.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핀 걸 보니 딱 요맘때인 것 같다.
<1977년 봄. 경기전에서 영생고 선배들과>라는 글귀가 씌여있는 사진.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핀 걸 보니 딱 요맘때인 것 같다. ⓒ 시대미술

추억은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과 같다. 손때가 곱게 물들어 윤기가 흐르는 마호가니 책상. 그 윤기는 하루아침에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주 쓰다듬고 닦아줄 때 은근한 손때가 깃들게 된다. 추억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지난 20일 전주 예술회관에서 시작한 '미술인과 경기전'은 경기전에 특별한 추억이 얽힌 미술인들이 펼친 전시회다. 경기전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을 보냈던 미술인들이 오랜만에 그림을 모았다. 그림의 주제와 소재는 자유다. 연령도 50대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신사도 더러 있다. 최고 연장자는 90대.

그러나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경기전'이라는 추억이다. 경기전은 그들의 마음에 이미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처럼, 동네어귀의 큰 나무처럼 편하고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시대미술'의 홍선기 회장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말이면 그림 깨나 그린다는 학생들 모여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60~70년대만해도 주말이 되면 경기전에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이젤 들고, 물감, 스케치북 옆구리에 끼고 왔었죠. 누가 그렇게 하자고 정한 것도 아니었어요. 미술부 학생였던 사람치고 경기전에 오지 않은 학생들은 아마 거의 없었죠. 딱히 미술학원같은 곳도 없던 시절이라 경기전에 모여 선배들로부터 그림그리는 법도 배우고, 인생도 배우면서… 그렇게 놀았어요."

1960년대. 토요일 오후, 학교수업이 끝난 뒤면 그림 깨나 그린다는 전주의 미술부 학생들은 삼삼오오 경기전에 모였다. 까까머리에 교련복을 입고 온 남학생 혹은 감색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 단발머리 여고생은 그곳에 모여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칠했다. 때론 선배들에게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기도 했다. 

"그때는 학생들이 마땅히 만나서 어울릴 만한 장소가 없었죠. 더구다나 미술부 같은 경우에는 주말이 되면 그림연습을 해야하는데 경기전만큼 좋은 곳이 또 없었죠. 사시사철 변하는 풍경도 정말 아름답고요, 경기전과 마주하고 있는 전동성당 그리고 이 주변의 고즈넉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죠. 꿈도 많고 열정도 많았던 그 시절, 그것을 표출하기에 참 좋은 곳이었던 것 같아요. 참 넉넉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예술적인 감성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잘 알려진 대로,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그러나 전주시민에게 경기전은 '그 이상'이다. 역사적인 의미를 넘어 그 곳은 현재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자신만의 추억의 한 장소를 허락했다. 더욱이 한창 꿈 많은 학창시절의 추억이 스며있는 그들에게 경기전은 아주 특별한 '타임캡슐'이다. 

 낙엽밭에 앉아 기타를 부르며 노래도 했을 것이다.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낙엽밭에 앉아 기타를 부르며 노래도 했을 것이다.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 시대미술

 이젤을 펴놓고 스케치를 했던 그 누군가의 초상
이젤을 펴놓고 스케치를 했던 그 누군가의 초상 ⓒ 시대미술

"선배들한테 무지하게 많이 혼났죠. '다음 주까지 30장 스케치해와라' 하면 무조건 해가야돼요. 만약 안 해가면 그 날은 정말 된통 혼났죠. 벌서고 기합받는 것은 예사였구요. 요즘같으면 교내 폭력이라고 어림 택도 없겠지만 그때는 안그랬어요.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눈물 쏙 빠지게 혼내고 난 후에는 다시 따뜻이 다독여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선후배간의 정이 참 돈독했어요. 그렇게 혼나면서 배웠던 미술공부도 지금 든든한 밑천이 되구요."

한창 때인 젊은 학생들이 모여 주말마다 그림을 그린다. 전동성당의 종소리는 바람을 타고 들려오고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있어 단조롭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다말고 나무를 오르는 짖궂은 남학생들의 한켠엔 또 뭐가 그리 재밌는지 소근소근대며 깔깔대는 여고생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참 살뜰하고 따뜻한 풍경이다. 그리고 은근한 상상도 함께 떠오른다. 청춘남녀가 모였는데 설마 그림만 죽자 사자 그렸을까. 그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보니 홍 회장은 손사래를 친다.

 왼편의 저 큰 나무는 지금도 경기전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다
왼편의 저 큰 나무는 지금도 경기전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다 ⓒ 시대미술

"재밌는 에피소드야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았죠. 전주시내 미술부 학생들이 거의 모일 정도였으니 오죽했겠어요. 그때는 다람쥐도 참 많았어요. 다람쥐 잡으러 다니다가 그림은 안그리고 다람쥐만 잡는다고 선배들한테 혼나기도 하고, 매실 딴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경기전 지키는 할아버지한테 들켜서 쫓기기도 하구요. 썸씽(?)이라구요?… 저는 그 당시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전북지역의 중견화가들의 모임 <시대미술>의 회장직을 맡고있는 홍선기씨. 경기전에 관한 추억전시회는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었다고 한다.
전북지역의 중견화가들의 모임 <시대미술>의 회장직을 맡고있는 홍선기씨. 경기전에 관한 추억전시회는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었다고 한다. ⓒ 안소민
그러면 그렇지. 그림만 그렸다면 참 재미없는 추억이 될 뻔했다.

홍 회장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안했지만 '썸씽'을 말하며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보니 그 나름대로의 재미있는 청춘스토리를 짐작해볼만도 하다.

"요즘 학생들은 낭만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어디 학생들뿐인가요. 사회 전체가 다 그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이번 전시회 준비하면서 참 오랜만에 경기전에 가봤어요. 전주에 살면서도 뭐가 그렇게 바쁜지 자주 못가보네요. 말로는 먹고 사는게 바빠서라고 하지만 다 핑계죠. 안 그래요?"  

홍씨가 오랜만에 찾아간 경기전은 그 옛날 그대로였다. 외관은 조금 변했지만 그 분위기와 장소는 여전했다. 경기전은 여전한데 사람만 변하고 있다. 성당에서 들려오던 종소리, 바람의 온도, 어디선가 학생들의 웃음소리, 조곤조곤 이야기소리도 들려올 것만 같았다.

먹고사느라 바쁘다구요? 그렇담 경기전에 오세요

시대미술에서는 이번 전시회에 앞서 의미있는 행사를 열었다. 3월 14일, 전주시내 초등학생들을 초청해 경기전에서 사생대회를 열었다. 무척 궂은 날씨에도 1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이날 수상한 초등학생들의 작품들은 이번 전시회에서 함께 전시된다. 50여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반세기의 세대가 서로 나란히 마주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리고 전시회 한쪽에서는 60~70년 당시 경기전에서 찍은 그들의 '왕년' 흑백사진도 감상해 볼 수 있다.

2009년의 경기전은 분주하다. 아마 날이 풀리면 더욱 바빠질 것이다. 외국이나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 체험학습을 나온 유치원 원생들 그리고 늘 경기전 앞 한켠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던 할아버지들이 경기전을 잊지 않고 찾을 것이다. 경기전 내에서는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들과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일 것이다. 이 모두가 자신만의 타임캡슐을 묻고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반백이 되었지만 우리는 영원한 이팔청춘입니다. 경기전이라는 타임캡슐 안에서
지금은 반백이 되었지만 우리는 영원한 이팔청춘입니다. 경기전이라는 타임캡슐 안에서 ⓒ 시대미술

덧붙이는 글 | <미술인과 경기전>은 3월 20일부터 26일까지 전주 예술회관에서 열립니다



#미술인과 경기전#전주 경기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