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4·29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적 고향인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그의 지역구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우려와 긍정적인 전망이 혼재되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찬반과 관련해 <오마이뉴스>에서는 당사자는 물론 누구의 의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
정동영. 자네를 생각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조선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학교 동기 중 한 명이 집권 여당 의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한 경합에 나선 신명나는 굿판에서, 우리만큼 진하게 기쁨을 나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우리 동기생들은 분명 자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고맙다. 정말 고마웠고, 비록 그 당시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기분 좋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고맙다는 생각이 가슴 저 밑에서 뜨겁게 올라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그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냄비 근성이라서가 아니다. 자네가 보여준 '그릇'의 크기가, 같이 얼싸안고 함께 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옹졸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 동기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 감히 말하고 싶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기억하고 싶지 않을 과거를 잠시 꺼내 반추하겠다.
정치인 정동영의 일관된 의지가 아쉬웠지대변인 하던 시절에 자네는 나 같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선후배 언론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더라. 참 보기 좋았었다. 아니 부러웠다. 저렇게 사랑을 받으며 세상을 사는 놈도 있구나 싶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펼쳐지던 그런 귀중한 자리에서, 바람막이 치고 멍석 깔아주면서 이 자리는 바로 너를 위한 자리다, 야망과 꿈을 펼쳐 보라 하는데도, 자네는 계속 대변인이라는 울타리 속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더라.
대변인을 떠나 신참내기 정치인, 야망을 가진 정치인 정동영의 일관된 의지를 전 국민에게 말해보라고 시간을 줬다는 것을, 정치를 모르는 나도 눈치 챘는데 말이다. 역시나 온실에서 못 벗어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들이, 마치 하이에나가 죽은 고깃덩어리 하나 낚아챈 것처럼 방방 뜨던 시절 이야기다. 노인 폄하 발언 말이다. 자네가 했다는 말의 앞뒤를 들어보면 노인을 폄하하거나 우습게 보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네 생각에 동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네를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어했을 저들에게 빌미를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때 노인회관에 가서 노인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쇼'를 했던 것은 자네의 말에 일정 부분 동조했던 사람들조차 등 돌리게 하는 역효과가 났다는 것을 아는가? 도대체 자네가 뱉은 말에 그 정도조차 당당하게 책임을 지지 못하고 일관성 있게 나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라를 끌고 가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무릎을 꿇는 순간 자네가 진짜로 노인을 폄하하고 노인들의 표를 우습게 본 것이라고 자인하는 꼴이 되었지 않은가!
자네에게 보내던 후원금을 그때 끊었네
자네가 귀국하는 공항에 나가 두 손 들고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자네가 전주 덕진에서 출마하기 위해 귀국하는 것을 꼴사납게 보는 사람도 있는 법이네. 자라 콧구멍만한 넓이에서 편안하게 자라면서 일부 열성팬들에게 휘둘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지지를 받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그 사건 후 자네가 공직을 내놓고, 전주 덕진구도 미국에 있던 채수찬씨에게 넘겨주고 (한국에도 거기 나올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지?) 낙향하듯 서울 여의도를 물러났지. 그리고 2006년 지방선거 패배 후, 자네 고향 순창도 아니고 자네 지역구인 전주 덕진도 아닌 생뚱맞은 독일로 가더란 말이지. 나는 자네에게 보내주던 후원금을 그때 끊었네.
자네가 정말로 민초들의 목소리를 낮은 자리에서 듣고 싶었으면 독일 어느 메가 아니라 순창이나 전주로 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내 생각이 짧았다면 나를 설득해보게. 아무래도 자네는 정치인으로서 많이 고민한 끝에 더 적절하다고 판단해 독일을 택했겠지만, 그런 충고나 하던 이들 외에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듣지 않나? 정치인들은 다 그런가 보지?
작년 봄, 미친 소가 아닌 건강한 고기를 먹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여중생들의 절규로 시작된 촛불 집회가 광화문을 달구던 시절, 자네는 얼마나 같이 동참하셨는가? 그 당시 민초들의 눈과 귀에 정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왜 그리도 낯설었는가? 그런 와중에 미국으로 핫바지 방귀 새듯 그렇게 가셨는가? 이때는 또 무슨 논리가 자네를 미국땅으로 보내던가?
그렇게 외국에서 눈물 흘리며 내 조국 대한민국 백성의 어려움을 위해 투쟁하셨는가? 이 사람아, 왜 그 자리에 같이 서서 물대포를 몸으로 막아내지 못했는가?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네는 그런 일을 해도 호구가 해결되는 직업 아닌가? 우리 서민이야 그런 곳에서 잘못 까불다 걸리면 얻어터지고 잘 다니던 직장마저 잘리게 되어 불안하지만, 자네는 그런 것이 오히려 훈장이 되지 않는가?
자네가 정말로 큰일을 하고 싶으면...자네의 그릇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겠네. 자네가 진정으로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시골의 순진하고 따뜻한 마음에만 너무 의지하지 말게나. 자네가 정녕 전국구 인물이라면 전주 덕진이 아니라 부산이나 대구 어느 곳에 갖다 놔도 인물 됨됨이와 그릇의 크기를 보고 판단하는 민초들이 자네를 선택할 거라고 믿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수였는가? 게임도 안 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도 안타깝게 종로에 부딪히고 부산에 부딪히니까 노사모가 광주부터 지원하지 않던가? 이런 민초들의 힘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노무현이 가졌던 초지일관하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노무현은 적어도 그 정도 그릇은 되지 않았는가 말이네.
자네에게 감히 충고 하나 함세. 자네가 정말로 큰일을 하고 싶으면 나중에 서울시장에 출마해보시게. 최소한 서울시장은 인구 1/4 정도를 책임지는 중량급 인사이니 자네의 그릇과 역량을 제대로 검증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지난번 서울시장 하던 이명박이나 현재 시장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보여줘야 국민들이 자네에게 표를 줄 것 아닌가?
자네와 같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동기생으로 주는 마지막 한 표의 의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