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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작업실을 두고 계신 윤석남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작업실에서 하시던 작업을 멈추고 나무톱밥이 묻은 손을 틀고 저희를 맞는 선생님은 일흔을 넘긴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쉰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만하겠습니다. 43세에 첫 개인전인 '윤석남전'을 열고, 44세에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드 그래픽센터로 유학을 떠난 것을 보면 윤석남 선생님에게 나이는 진애塵埃처럼 하찮은 것일 뿐입니다.

 

 윤석남선생님과 선생님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여성
윤석남선생님과 선생님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여성 ⓒ 이안수

 

매일 한 시간의 운전으로 11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는 시간의 반복으로 이 작업실에서 은일隱逸한 지 10년. 한 가지 일에 혼신으로 매진한 탓에 나이도 비겨간 듯 했습니다.

 

 작업실에서의 윤석남.
작업실에서의 윤석남. ⓒ 이안수

 

이렇듯 한 작가를 그 작가의 작업실에서 대면하는 것은 전시장에서 작품만을 마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설렘입니다. 산고를 앓는 그 몸부림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작가의 작업실은 제게 항상 성소聖所로 다가옵니다.

 

여기저기에 고뇌와 방황의 파편들이 흩어져있고, 그 파편들은 고대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처럼 작가의 사소한 과거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궁금했던 작가의 작업실에 발을 들어놓는 순간부터 전인미답의 유적지를 눈앞에 둔 고고학자의 흥분과 호기심 그리고 기대로 전율하게 됩니다.

 

대지 1천 평에 지어진 철골구조의 2층 작업실은 윤 선생님의 작업스케일과 스타일에 꼭 들어맞는 실용성을 갖추었습니다. 2000년, 이 작업실을 완공하고 나서 2003년 일민미술관에서의 '늘어나다'전, 2004년 열린화랑에서의 '윤석남전', 2008년 아르코미술관에서의 '윤석남, 1,025:사람과 사람없이'에 이어 올해 2월의 학고재에서의 '윤석남전'까지 이곳이 이 모든 작품들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윤석남 선생님의 작업실
윤석남 선생님의 작업실 ⓒ 이안수

 

1층은 채색을 하는 작업공간과 드로잉을 하는 책상, 그 옆에 몇 사람이 마주앉을 수 있는 소파가 놓이고, 윤선생님께서 직접 커피를 만들어 주시는 작은 키친이 연이어져 있습니다. 2층과 그 안의 또 다른 작은 다락은 선생님의 작품이 보관되는 곳입니다. 또한 나무를 선생님의 구상에 따라 조형하는 마름질 공간이 1층 작업실에 이어져있습니다.

 

 윤석남 선생님의 1층 작업실
윤석남 선생님의 1층 작업실 ⓒ 이안수

 

철제의 이 커다란 창고 같은 공간이 어느 곳보다도 포근하고 친근하게 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작업실 1,2층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는 수많은 개의 조각들 때문일 것입니다. 2층에는 '사람과 사람 없이'에서 선보였던 1,025마리의 개조각품이 다시 번호순으로 정렬되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지난 2월의 '윤석남전'에서 새롭게 선보인 108마리의 개가 넓은 공간을 그득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윤석남선생님과 1025마리의 목조각 유기견
윤석남선생님과 1025마리의 목조각 유기견 ⓒ 이안수

 

우연히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보는 이애신할머니의 사연을 접하고 '애신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유기된 개들과의 조우는 윤선생님을 5년간 이 작업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무를 잘라 샌딩을 하고 드로잉을 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1,025마리의 유기견 나무조각품은 약자로서의 여성에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던 이전 작업처럼 '상생'을 얘기합니다. 1,025마리 작업 이후에는 '108마리의 나무-개들'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그 일부가 학고재에서 선보였고 나머지 개들이 완성되면 일본에서의 전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윤석남선생님의 작업실 2층에 진열된 1025마리 유기견의 조각상
윤석남선생님의 작업실 2층에 진열된 1025마리 유기견의 조각상 ⓒ 이안수

 

1,025점의 개 연작이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의 욕망에 희생된 개였다면, 108점의 개는 희생된 개들의 진혼과 환생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꽃이나 촛불, 자개장식의 날개가 함께 한조를 이룹니다.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을 만드는 윤 선생님의 작업 탓에 큰 기계톱이 필요하고 표면을 샌딩하는 그라인드도 필수적입니다. 이것들은 숙련된 남자들에게도 위험천만의 도구들입니다. 하지만 윤 선생님의 손안에서는 한낱 고수鼓手의 북채에 불과합니다.

 

 윤선생님의 작품은 주로 품이 많이드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윤선생님의 작품은 주로 품이 많이드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 이안수

 

윤석남 선생님을 대하고나면 이전 '999'개의 여성상이나 '1025'의 목조각 유기견이 모두 다른 언어로 말하는 한 가지 의미였음을 알겠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랑'이며 '상생'입니다.

 

 윤석남 선생님의 2층 작업실
윤석남 선생님의 2층 작업실 ⓒ 이안수

 

윤선생님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다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분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용산참사 추도기금 마련전'에 관한 얘기를 전해 듣고 김기호, 천호석 선생님과 함께한 우리일행에게 '999'의 여성상의 일부인 20점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999명의 여인들은 모두 전국으로 흩어져 제 수중에서 없어져야 이 작품의 의도가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윤 선생님께서 기증해주신 20점의 작품은 종로의 '평화공간space*peace'에 전시되고 3월 28일에 '용산참사와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다른 작품과 함께 경매에 부쳐져 용산참사를 치유하는 기금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평생 일관해왔던 소외된 약자에 대한 윤선생님의 관심은 '999'의 여인과 '1025'의 개를 통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고  이처럼 작가 자신이 직접 온기 있는 손을 내밀어 상처받은 가슴을 보듬는 구체적인 행위를 실천합니다.

 

이 20점의 여인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트라우마trauma로 고통 받는 타자의 회복에 전력하고 있는 또 다른 윤석남이 되어 차별받는 약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한 어머니로서의 여성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용산참사를 돕는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기증하신 여성상 일부
용산참사를 돕는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기증하신 여성상 일부 ⓒ 이안수

 

작업실 밖에서는 2마리의 유기견이 윤선생님의 보살핌으로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기억을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용산참사 추도기금 마련 미술품 경매

 

참여작가 | 윤석남, 김기호, 김성래, 김윤기, 김종도, 두시영, 류성환, 박야일, 박이찬국, 이윤엽, 이인, 이한우, 정세학,이조희, 김서경, 박건, 주재환, 박진화, 방정아, 유연복, 김재석, 정정엽, 박흥순, 서수경, 박은태, 강성봉, 송효섭, 전진경, 나종희, 김미혜

경매일시 | 3월 28일 오후 4시

경매장소 | 평화공간space*peace(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99-1)

참여문의 | 김기호 011_9080_9417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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