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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29) 오후 티엔(26, 가명)을 처음 봤을 때, 어디선가 한참을 울었음을 짐작케 할 만치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퉁퉁 부어 있었다. 부어오른 그녀의 눈동자는 꽃샘추위로 트고 붉어진 볼보다 훨씬 도드라져 보였는데, 묻는 말에 조근 조근 차분하게 답하는 모습이 참 성실한 사람 같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티엔은 05년 11월말에 결혼비자로 입국했다. 그녀는 입국 당시 이미 임신 4개월의 몸이었는데, 남자 아기를 낳고 한 달 만에 이혼을 당했다. 입국한 날짜를 기준으로 7개월 만에 이혼을 당한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받고 아기를 베트남으로 보냈다고 했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짝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기를 베트남으로 보낸 후, 불법체류를 하며 일을 해 왔다는 그녀의 튼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튼 자욱이 건조한 피부를 관리하지 못한 탓이란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꼭 때를 안 밀어서 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녀의 손이 내려왔다.

퉁퉁 부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삶의 질곡을 담은 그녀의 눈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짜안해졌다.

그런 그녀에게 모질게 마음을 먹고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시 묻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게 된 배경부터 입국, 출산, 이혼까지의 일정과 남편과 헤어지게 된 이유까지 묻기 시작하자, 조금 전까지 조근 조근 답하던 그녀의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티엔은 입국일자를 묻는 부분에서부터 말이 막히기 시작하더니, 결혼중개업체에 대한 정보와 이혼 사유, 아기를 베트남에 서둘러 보낸 이유 등을 묻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다만 '도와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 일을 생각하다보니 서러움이 복받쳐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대충하고 넘어갈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접고, 몇 번 반복하여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여전히 명확치 않았고 조금씩 다른 말들이 이어졌다. 결국 상담을 이어가는 중에 이혼에 앞서 타 단체에서 상담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하여, 당시 실무자에게 전화연락을 해 봤다.

다행히 티엔의 일을 기억하고 있던 당시 실무자는 "남편은 아기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티엔은 맞다고 주장해서 친자 확인 소송을 하라고 권했는데, 티엔이 결혼중개업자의 주선으로 합의이혼을 해 버려서 상담을 접었었다"고 알려줬다.

친자 여부를 놓고 부부가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말로 합의이혼을 한 배경이 이해가 되었다. 만일 티엔이 한국체류를 계속 원하고, 아기를 한국에서 기르려면 친자확인소송을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출생하고 한 달 만에 이혼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티엔의 전 남편 J씨 입장은 어떠한 지 물어볼 필요가 있어서 연락을 취해 봤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이었다.

이미 여러 단체에서 전화를 받아본 경험이 있던 J씨는 차분하게 그간 사정을 이야기해 줬다.

"아기를 낳았는데 병원에서 그러는 겁니다. 부모가 둘 다 B형인데, 아기는 A형이라고요. 그 사람 업어 키우려고 했는데, 속이 까맣게 탔습니다. 사실 임신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채팅만 하면서, 돈만 달라고 하는데 낌새가 이상하더라고요. 그래도 말도 안 통하고 임신했는데 어떡합니까? 혈액형이라도 같았으면 감쪽 같았겠지요."

대화 말미에 J씨는 전 부인이 낭비벽이 심해 이혼하고, 살림 잘한다는 소문이 있어 베트남 신부하고 결혼했었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J씨는 그런 일을 당해 어이가 없었지만, 티엔이 베트남 간다기에 비행기 값 쥐어주고 헤어지면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일도 제대로 못했고 이제야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관련 자료들을 다 모아놨고 결혼중개업체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말과 함께 원하면 얼마든지 자료를 발송해 주겠다며 J씨는 "부모는 B형, 아기는 A형, 당신 같으면 어떡하시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제야 티엔이 친자확인 소송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삶의 질곡을 엿보게 하는 눈물이라고 여겼던 티엔의 눈물이 가식적인 정치인 뺨치는 거짓 눈물, 악어의 눈물로 변해 버리는 순간이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의 눈물에 담긴 복잡한 의미를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가타부타 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티엔에게 J씨가 친자 확인과 관련한 자료들이 있다는 말을 전하는 대신에, '친자확인 소송을 하려면 아기가 한국에 있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이런 절차는 어딜 가나 똑같으니, 그 결과에 대해 자신이 있으면 다시 이야기하자' 하고 말을 끊었다.

"부모는 B형, 아기는 A형, 당신 같으면 어떡하시겠습니까?"라고 되묻던 J씨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자꾸 귓전을 때리며 심란해진다.


#결혼이주여성#베트남#합의이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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