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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 2009년 3월 31일, 아침 모습이다.
춘설.2009년 3월 31일, 아침 모습이다. ⓒ 강기희

 

간밤 내가 사는 단임골에 눈이 또 내렸다. 사흘 전 30센티 가까운 눈이 내렸는데, 이번에도 10센티는 넘게 내렸다. 대설주의보는 잠시 해제되었다지만 밤부터 눈이 또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들려온다. 남쪽 땅에선 벚꽃축제가 한창이라는데 여긴 눈꽃축제가 한창인 것이다.

 

간밤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새벽까지 책을 펼치고 있었다. 컴퓨터도 TV도 음악도 끄고 오로지 책만 읽고 싶은 밤이었다. 고요했다. 가끔씩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눈뭉치가 지붕에 후둑후둑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책'

 

지난 해 화재로 소장하고 있던 책을 다 소실한 이후 내겐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그 많은 책을 불태웠을 때의 기분은 생살을 찢는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검게 탄 책은 지난 겨울 눈 속에서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긴 겨울을 보낼 때 내 짐 속엔 몇 권의 시집과 소설책이 전부였다. 되도록이면 짐을 줄여야 했던 시절이라 책을 구입하는 일도 하지 못했다. 그 겨울 벗들이 펴낸 책들을 받아 읽으면서 난 막 한글을 깨우친 아이처럼 신기하고 황홀해 했다.

 

거처가 마련되면서 책이 한두 권씩 생기고 있다. 우편물을 받아 볼 주소가 생기니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편배달부가 탄 오토바이 소리가 집 가까이에서 들리는 날엔 책이 한 권씩 생겼다. 기뻤다.

 

자연보다 훌륭한 책은 없다고 하지만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당장 내야 할 독촉고지서도 금방 갈아야 할 연탄불도 펼쳐든 책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책이 만들어 내는 마력인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선 노숙자들의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그날 졸업장을 받은 이들은 노숙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는 이도 있었고 5년이 넘은 이도 있었다. 그들이 1년 동안 한 일은 인문학 공부였다. 보통 사람도 인문학이라면 어렵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고개를 흔드는데, 노숙을 하던 이들이 인문학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인문학을 어렵지 않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이 복잡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자발적 노숙인이든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노숙인이든 그들은 하루 한두 끼의 식사만 해결되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책  표지
표지 ⓒ 북포스

치열한 경쟁보다는 삶의 근원을 생각하게 만든 시기, 그들에게 인문학은 영혼의 북소리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노숙 생활을 10년이나 했던 어떤 이는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난 후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했다. 책이 만들어내는 힘인 것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 빌 게이츠

 

오늘의 빌 게이츠를 있게 한 것은 책이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만드는 말이다. 노숙인들도 1년간의 책 읽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거리를 떠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독서를 다양한 취미 생활 중의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아직도 자신의 소개서에 독서가 취미라고 쓰는 이들이 많다. 책 읽는 일이 취미가 될 수 있다는데 있어 놀라울 뿐이지만, 우리네 독서 수준은 '취미' 수준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미로도 책 읽기를 하지 않은 이들이 더 많으니 우리의 삶이 궁핍하고 팍팍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간밤에 펼쳐 든 책은 독서경영전문가인 안상헌씨가 펴낸 <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북포스 펴냄)이다. 이 책은 직업적으로도 책을 읽어야 하는 내게도 책은 퍽 유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도 경영전문가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독서를 하는 일도 경영에 들어갈만큼 세상이 변하긴 했지만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고,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고 다니는 저자 안상헌씨라 반갑기만 했다. 독서광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상헌씨가 대하는 책에 대한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깊고 넓다.    

  

안상헌씨는 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말하면서 다양한 책들에게서 뽑아낸 글귀와 독서에 관한 선지자들의 에피소드를 첨가했다. 그것 뿐 아니라 그의 독서량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책의 제목만 보고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 정도는 나도 알 만한 이야기 아니던가'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내 생각은 저자의 재미있고 박학다식한 내용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기분 좋은 짓밟힘은 책을 접는 새벽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쇠의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이지만 서서히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영혼이 맑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그 맑지 않은 영혼이 그 사람 자신을 갉아 먹는다. - 법화경

 

적절한 인용구를 소개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얻고,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힘들 때는 그 순간을 견딜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미래의 전망도 밝혀줍니다. 꿈을 심어주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도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갈 수 있도록 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저자는 책이야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기본이 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저자의 말은 백 퍼센트 맞다. 독서는 우리가 매일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하듯 하루도 거르지 말아야할 영혼의 비타민과 같기 때문이다.

 

책 읽기 <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 본문
책 읽기<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 본문 ⓒ 강기희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 돋친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책을 가까이 했다. 그의 민족혼을 일깨워 준 것이 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어렸을 적엔 책 읽은 표가 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 크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죽어지는 방법 또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그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가 결정하는 것이다.

 

너나 할 것없이 돈만 좇는 세상이다보니 책이 뭐 그리 대수일까 하지만 어느 자리고 간에 성공한 사람의 곁에는 늘 책이 있었다. 책의 향기를 자신의 향기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미래가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책을 읽지 않아 입안에 가시가 돋게 되면 엉뚱한 말만 지껄이게 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지나치게 많음이 문제인 세상이다. 책 읽는 손은 이 세상 어떤 손보다 아름답다. 서점에서 책 고르는 마음은 어떤 비단보다도 곱고 순전한 것이다.  

 

저자 안성헌씨는 책에서 이렇게 또 말한다.

 

무지와 무식은 지식을 아느냐 하는 '소유의 문제'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느냐 하는 '존재의 문제'에 닿아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공부를 넘어 자신을 넉넉하게 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한 때입니다.   

 

긴밤을 꼬박 새워 책을 읽던 그 순간 우리는 우주로 가기도 하고 들뢰즈를 만나기도 하고 태양의 신 아폴로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책은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 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단 한가지라도 알고 있다면 오늘 퇴근길은 술집보다 서점으로 먼저 걸음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하지만 아직도 "책을 왜 읽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서점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부터 읽어 볼 일이다. 그럼 답이 나온다. 

 

2009년 3월 31일 오후, 잠시 그쳤던 눈이 또 쏟아 붓는다. 폭설이 내리는 걸 보니 이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이젠 컴퓨터를 끄고, 경북 영천에서 밭농사와 시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이중기 시인의 시집 <오래된 책>을 펼쳐야 겠다.

 

대설주의보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을 이해하는 방법도 책 속에 들어있다. 3월의 마지막 날 눈이 내린다.
대설주의보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을 이해하는 방법도 책 속에 들어있다. 3월의 마지막 날 눈이 내린다. ⓒ 강기희


책을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

안상헌 지음, 북포스(2009)


#책 읽기#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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