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은 지구 상의 어떤 사람도 하지 않은 '최초의 무엇'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인간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모험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과 보다 안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어쩌면 한 사람 안에 이 두 가지 욕망이 공존하되 그 균형이 시시때때로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실천의 문제로 돌입하는 순간 얘기는 달라진다. 이러한 욕망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몽상가'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모험가'라 부른다.
모험가는 스스로 몸과 인생을 바쳐 이전의 인간이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간다. 인간이 부딪칠 수 있는 험난한 자연과 대면하고 한계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를 기록한다.
그리하여 나 같은 호기심만 많은 소심한 인간도 간접적으로나마 모험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가 처음인 게 맞아?1991년 6월, 스물다섯 살의 영국 청년 스티비와 제이슨은 '인간의 힘만으로 세계일주'를 하기로 결심한다. 처음 이 생각을 떠올린 사람은 스티비 스미스였다. 그는 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에서 '온실가스 통계' 담당 직원이었다. 그가 수많은 자료와 인류의 속성으로 본 지구의 미래는 비관적이었다.
인생의 1/3 지점에서 그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나 가정과 직장의 테두리에서 안락하게 늙어가는 것이 과연 행복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결국 그는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여행을 생각했고 이왕 여행을 한다면 아무도 해 본 적 없고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인간의 힘만으로 하는 세계일주'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누군가 동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친구는 대학 동창 제이슨이었다. 스티비는 카펫 세탁업을 하며 록 밴드 보컬을 하는 제이슨을 찾아가 이 특이한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 그럴께. 믿기질 않는군. 언제 떠나지? 인간의 힘만으로 지구를 도는 게 우리가 처음인 게 맞아?' 망설임이 없다. 녀석의 수염이 숭숭 난 얼굴의 미소에서 비아냥을 조금이라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없었다." 머나먼 출발그들의 여행은 그 방법과 기간으로 볼 때 세계일주 중 최고의 난이도를 보여준다. 출발하기 전의 과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과연 새로운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여행을 결심하고 나서 준비해야 할 것은 노선과 이동 방법을 결정하고 비용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인간의 힘만으로 육로를 이동하는 것은 힘이 들지언정 방법은 간단하다. 자전거·인라인 스케이트·도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그렇지 않다. 처음 그들은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건널 생각이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서로를 바라보며 "그까짓 것 노만 열심히 저으면 된다구!" 큰소리쳤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비와 만난 해양학과의 교수는 '페달 보트'를 제안하고 설계도를 그려주었다. 페달 보트란 한강 오리 보트와 같은 원리로 무게 1톤의 2인승 목선이다. 설계도를 들고 배를 제작하려 하자 비용이 부족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찬조금까지 합쳐 6000 파운드.
이제 막 조선대학을 졸업한 아마추어 두 명에게 보트의 제작을 부탁한다. 목선의 목재, 자전거 기어와 체인, 철판 등 재료비만 4000 파운드. 인건비는 2000 파운드. 페달 보트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인건비를 더 달라며 파업을 했다. 전기톱을 들고 보트를 땔감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가장 하기 싫었던 방법, 스티비는 여자 친구에게 돈을 빌려 어렵게 완성된 보트를 띄웠다. 후원을 받기 위해 매스컴과 관계 단체를 불러 템스강에서 시승식을 했다. 결과는? 빠른 물살에 페달이 제대로 먹지 않아 우왕좌왕하다가 (그 와중에도 매스컴을 의식해 필사적으로 웃어 보였지만) 건너편 강둑에 뱃머리를 박는다. 어렵게 만든 보트가 부서지고 신문들은 그들의 실패를 보도했다.
페달 보트가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가 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악전고투 끝에 완성한 페달 보트의 설비는 이러하다. 흡사 전투기 조종석을 연상시키는 페달 좌석, 식량을 저장하고 다른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창고(그들은 여기를 '굴'이라고 부른다), 각종 전자제품의 전력을 공급해 줄 태양열 집열판과 GPS, 무선통신 장치,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 수 있는 여과기, 전복될 경우 원상 복귀하도록 설계되고 방수처리 된 선체로 구성되었다.
보트의 이름은 '목샤(Moksha)'. 힌두교 경전에서 해탈의 네 번째 단계로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환각제 LSD 경험을 아주 긍정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책 이름이다. 스티비는 목샤의 의미를 묻는 <타임> 기자에게 산스크리트어로 '자유'라는 뜻이라고 둘러 댄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비용마련을 위해 런던 보트 박람회에 배를 전시하고, 선체에 이름을 써주는 대가로 10파운드씩 모금을 하는 한편 불철주야 관련 기업에 후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업 후원은 실패하고 만다.
보트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 관계로 완벽한 준비를 하고 떠나려면 또 몇 년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스티비는 '아마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나려 한다면 이 여행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단 빈주머니로 몸소 모험을 시작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로 결심한다. 노선은 영불해협을 건너고, 프랑스에서 포르투갈까지 자전거로 이동하며 성금을 모은 다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대서양을 횡단, 미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영국에서 가족들과 <내셔널지오그라피> 카메라맨과 여자 친구의 환송 속에 출항했다. 15일 만에 프랑스 해변에 도착한 그들. 보트를 리스본으로 보내며 트럭의 기름값을 주고 나니 수중에는 숙박비는 고사하고 밥값도 달랑달랑하다. 그들 앞에는 자전거와 노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13년이 걸린 여행의 출발에 불과했다.
이 두 권의 여행기를 통해 그들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흥분과 부러움, 안쓰러움과 웃음이 쉴 사이 없이 교차한다. 그것을 단지 몇 개의 단어들과 몇 마디의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여행의 빙산의 일각이라도 나누기 위해서는 다소 긴 인용이 필요한데,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와 출판사도 양해를 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한 가지 핑계를 대자면 난 이 책을 구입하였기에 그들의 모험에 일조하기도 했고, 한 사람의 독자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페달보트로 바다를 건널 때 나타나는 증상들보트에는 페달을 밟는 자리와 갑판 아래 딱 한사람이 누울 자리가 전부이다. 한 사람이 페달을 밟는 동안 다른 사람은 잠을 자거나, 기록을 하거나, 항로를 점검하기도 하고, 한 시간 반 동안 하루치 담수를 만들고, 빨래나 음식을 한다. 낮에는 두 시간 마다, 밤에는 네 시간 마다 교대로 페달을 밟는다. 스티비는 수많은 나날들 동안 그들에게 생기는 현상들을 거의 자동 기술에 가까울 정도로 기록했다.
영불해협 1일차 (94. 7. 14)- 햇빛이 스러져 가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돌이킬 방법은 없다." 이 생각이 나한테 가져온 효과는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를 느꼈다. 더는 용감할 필요가 없다.영불해협 3일차 (94. 7. 17)- 사흘째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구역질이 났다... 인간의 마음이 가진 적응력에는 한계가 없다. 바다에서의 세 번째 날, 계속 움직이는 기이한 젖은 세상은 이미 급속하게 일상적인 것으로 되었다.대서양 21일차 (94. 10. 16)-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내 머리는 거침없는 (기억의) 퍼레이드다. 일곱 살 때 누나보고 내 자전거를 타도된다고 그랬어야 했다.대서양 37일차 (94. 11. 26)- 커다란 부패성 부스럼, 항해원이라고 불리는 소금 염증 때문에 우리 둘 다 아주 고통스럽다... 매일 치르는 의식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소금 염증을 바늘로 찔러 고름 짜내기...대서양 45일차 (94. 12. 3)- 생각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추억은 소진되었고, 새로운 생각과 계획은 고갈되었다... 갇혀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계속 관대하게 대하겠다는 도전은 이 항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대서양 59일차 (94. 12. 18)- 복수의 칼날을 갈며 소금 염증이 도졌다. 상처가 몸 전체에 창궐 중이다. 고름을 짜내기 위해 종기마다 바늘로 찌르고는 고약을 발랐다. 우리는 너무 많이 때운 자전거 튜브 한 쌍 처럼 보였다.대서양 107일차 (95. 2)- 몇 달간 우리 몸에서 페달 좌석으로 떨어진 땀이 열기와 합쳐져 생명체를 위한 완벽한 번식장을 만들어냈다. 쿠션을 치우자 의자를 덮고 있는 왕성한 구더기 집단을 발견하고 제이슨은 겁에 질렸다. 수십 마리가 있었다.대서양 110일차 (95. 2)-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비스케인만으로 가는데 바다와 하늘은 둘 다 교통으로 붐볐다... 제일 쉬운 일은 개인 용품들을 가방에 꾸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폭풍으로 옷가지 대부분이 목샤의 빨랫줄에서 날아가 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칫솔 한 개, 가족사진 몇 장과 '찰리 브라운'호 선원들이 준 100달러짜리 지폐를 가지고 있었다.육지의 길에서 해야 할 일들그들은 마침내 대서양을 건넜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대서양을 건넜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여기 저기 망가져 버린 페달 보트의 수리에 필요한 비용과 여행 경비를 위해 그들은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동분서주해야 했다.
성인 TV채널 토크쇼에 출연해 홍보하는 대가로 그 프로그램의 MC가 주연을 한 소프트 포르노 영화 시사회에 참석을 해야 했고, 기념 티셔츠를 팔고, 이동 경로의 학교들을 찾아 강연을 하기도 했다. 다행이 '국제 인력 탈것 연합(IHPVA)' 의 미국 활동가를 만나 같이 자전거를 달리며 홍보와 모금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자전거의 페달은 유난히 불편했지만 협찬을 받았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타고 가야 했다. 그리고 여행 중간 중간에도 계속 강연과 모금, 후원자를 찾기 위한 방송 출연은 계속 된다. 바닷길은 단순하지만 고되었고, 육지의 길은 덜 고되지만 모금을 해야 했기에 복잡다단했다.
이러한 모금 활동은 단지 그날그날의 먹을 것을 사기 위한 비용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주머니에 몇 십 달러만 남아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횡단을 해낸 다음에는 태평양을 건널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우 오랜 모금 활동을 했고, 그들은 이번에도 돈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모금에 지쳐 가난한 상태로 태평양으로 떠났다.
4개월여의 항해 끝에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 도착했다. 스티비는 여행을 잠시 중단하고 하와이에 머물며 여행기를 쓰기로 한다. 다혈질이지만 쾌활한 락커 제이슨은 하와이에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이 여행에 동참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을 모아 호주를 횡단한 후 열대 태평양을 건너려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자전거를 들고 동남아시아로 떠났다. 스티비는 하와이 사우스 데본 셀콤비의 목가적 해변 마을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며, 나머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4년 동안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2000년까지의 기록이고 우리나라에는 2007년에 출간되었다.
Experdition360이 책은 완주의 기록이 아닌, 완주를 위해 출간된 책이다. 물론 하와이까지의 8년간의 여행기록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이 차고 감동스럽다. 만일 이 책을 읽은 후 그들의 나머지 여정이 궁금하다면, 이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이트인
www.expedition360.com에 방문해 보자. 참가자들의 면면과 각종 기록사진, 동영상, 일지, 보도 자료를 볼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행기의 출판 이후 쏟아진 것으로 보이는 기업 스폰서들이다. 이 사이트에서는 그들의 제품을 입고 먹고, 들고, 마시는 스티비와 친구들의 사진을 직접 볼 수 있다. 최근 포스팅 된 기사는 2007년 12월, 세계일주를 마친 '목샤'가 'Earl's Court Boat Show' 에 전시되었다는 소식과 그들이 만든 환경을 위한 여행 단체인 <Experdition360>이 2007년 최고의 탐험가로 선정되어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현재 잠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스티비는 이 책의 감사의 말에 이렇게 썼다.
"하와이까지 페달을 밟아 가는 것과 책 한 권을 쓰는 것 중 후자가 더 힘들었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의 후반기 여행에 관한 책을 만나게 되기 까지 조금은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