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지막날인 31일 아침,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체험학습장을 향해 집을 나섰습니다. 함께 따라 나서고 싶었지만 밥벌이 때문에 컴퓨터 앞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불과 1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23번 국도로 오체투지 순례단이 힘겹게 기어가고 있음에도, 낯짝 한 번 내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컴퓨터 앞에 꽁꽁 묶여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는 방송 원고에 쫓기고 있어야 했습니다.
참교육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생계까지 위협 받아가며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저들과 맞장을 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코 앞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생활전선에 발목이 묶여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디 저뿐이었겠습니까?
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체투지순례단이나 참교육을 실천하는 선생님들은 내 몫의 짐까지 대신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현장체험에 나선 우리 집 두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녀석들이 아빠의 짐을 대신 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냥, 할머니 댁에 갔다 오면 안 돼?"
체험학습을 떠나기 전 날, 녀석들은 따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아빠! 우리 그냥, 대전 할머니 댁에 갔다 오면 안 돼?"
"그래도 좋지만 함께 가기로 약속 했잖어."
"별로 가기 싫은데······."
"안 돼! 약속 지켜야지. 낯선 애들과 어울리는 것도 공부여."
어떤 조직이나 모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아나키스트적인 지 애비를 닮아 그런지 녀석들은 단체 체험학습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녀석들에게 단호하게 말해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몰려왔습니다. 녀석들이 원치 않는 체험 학습장으로 등 떠미는 것 역시 일제고사를 강요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녀석들에게 최선인가? 녀석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한다고 할 때도 고민했던 문제였습니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자칫하면 단순히 '일제고사 거부'라는 목적 성취를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니들은 일제고사 봐라, 나는 당당하게 일제고사 거부한다'는 식으로 자신만의 진정성이나 정당성을 다른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선택권도 없이 강제적으로 일제고사를 봐야만 하는 친구들과 벽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본래의 순수한 뜻은 사라지고 온갖 추접한 수법을 동원해 일제고사를 강요하는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서로 미움만 생길 것입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무한경쟁이 없는 세상,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 주는 평화로운 세상, 그런 세상은 꿈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교육받게 하자는 참교육의 목적 또한 훼손 될 것입니다.
재밌을 것 같지 않은 현장학습체험에 나서다
다시 살얼음 밟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설득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일제고사 보는 것보다는 훨 낫잖어."
"그거야 그렇지만······."
낯선 분위기 속으로 들어서는 것에 영 내켜하지 않는 녀석에게 저번에는 아빠하고 갔으니 이번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보면 어떻겠냐고 집요하게 설득했습니다.
"이것저것 재미있는 프로그램 많이 준비했다더라, 가서 재미없으면 그냥 니들 끼리 버스타고 다른 데 다녀와도 되니께, 그냥 일단 한번 가봐. 재미었으면 없는대로 느끼는 게 있을껴. 그리고 현장학습 신청해 놓고 안 가면 안 되잖어."
"안 간다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간다는 거잖어."
"니들끼리는 다음에 얼마든지 갈 수 있잖어. 그리고 골치아픈 일제고사보다 재미있는 체험학습 시키겠다고 힘 써 온 선생님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냐? 니들이 빠지면 우리 지역에서 참여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잖어."
"그러긴 하네····.·"
우리 지역에서 단체로 현장학습 체험에 나선 아이들은 우리 집 두 놈과 엄마가 변두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중학교 3년생과 아빠가 농사짓는 여중생이 전부였습니다. 자녀들을 현장학습 보내겠다고 결의했다는 전교조 조합원 자녀들은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기론 우리지역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한 전교조 조합원 자녀는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아이처럼 단체로 현장학습을 떠나지 않았던 것뿐이지 일제고사를 거부한 전교조 조합원 자녀들이 분명 더 있었을 것입니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소리 소문 없이 병가나 무단결석한 조합원들이 더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일제고사는 일제고사일 뿐입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한다 하여 교육정책이나 세상이 크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고사에는 선택권조차 없는 무지막지한 교육정책은 물론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교육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압축돼 있습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것은 최소한 그 문제들을 바로 보자는 것입니다.
교육은 아이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일제고사'를 보고 안 보고를 떠나서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길인가? 적어도 그 길은 선택권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무단결석 처리 당해야 하는 이런 추악한 길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집 녀석들은 학습체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단체 체험이라서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는 '체험학습단'에 자의반 타의반 합류했습니다.
'일제고사' 따위에서 느낄 수 없는 것
겨우 방송 원고를 마감하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일제고사 반대를 위한 충남지역 공동대책위원회'의 한준혜 선생을 따라 갔던 녀석들이 저녁 밥까지 챙겨 먹고 돌아왔습니다.
"재밌었냐?"
"아니 별로. 대부분 초등학생들이라서."
"중학생은 몇 명이나 됐는데."
"전부 120명 정도 모였는데, 중학생은 한 20명쯤 되나?"
"그래도 재미있었던 게 있을 거 아녀?"
"아, 예산에서 끈으로 방울 같은 것을 왔다갔다 돌리는 민속놀이를 했는디, 그 쥐방울 놀이인가 뭔가, 그게 재밌었어."
"그리고 또 어디 갔었는데."
"보원사지에 가서 스님 설명 듣고 그랬는데, 스님이 디게 착해. 어린 애들이 빡빡 머리 보여 주세요 그러니까, 그냥 허허 웃어. 스님이 멋있어. 북도 엄청 잘 쳐."
"짜식이! 재밌었구먼."
"차타고 가다가 길옆으로 아주 넓게 펼쳐진 목장이 보였고, 저수지도 너무 멋있어."
"볼 거 다 봐놓고. 거 봐라 그래도 갔다 온 보람 있잖어."
"전체적으로 볼 때는 별로 재미없었다구. 다음에는 좀 다르게 했으면 좋겠어. 현장학습이라고 해서 민속 박물관 같은 데나 찾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만족할 수 있겠냐.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밴드 같은 거 만들어서 음악회 같은 거 우리가 직접 했으면 좋겠어."
함께 갔던 아이들 중에 드럼을 배우고 있는 아이와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한준혜 선생이 다음번 체험학습 때는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올리면 어떻겠냐고 제안 했던 모양입니다.
"나 보고 보컬 하래."
"잘 됐다. 너 노래 좀 하잖어. 휘연이네 아빠한티 전자 기타 부지런히 배워서 기타 쳐가며 노래하면 되겠네."
녀석의 생일이 바로 어제였는데 잠시 짬을 내 형님 동생으로 가깝게 지내는 블루스 음악 작곡가인 김유신씨네 카페에 놀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전자기타를 선물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일제고사 반대 한다는 그런 재미없는 노래는 안 부를 껴."
"거기서 그런 노래 불렀냐?"
"아니. 만약 밴드 만들면 그런 노래보다 그냥 신나는 노래 부르겠다는 거지."
공연히 맘 내키지 않은 단체 체험학습을 보낸 것이 아니었나 내심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녀석은 전체적으로 재미없는 체험학습이라 했지만 분명 보이지 않게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최소한 전자기타를 부지런히 연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마음을 '일제고사' 따위에서 느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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