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여파로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 사상 유래없는 취업대란으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우선적으로 감원 대상이 되는 한편, 인턴들을 채용하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는 등 잠재적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취업대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비정규직의 실태와 고민, 해법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아기 기저귀 살 돈이 없어요. 먹는 것도 집에 있으면 먹고, 아니면…."지난 3월26일 경기 평택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류형순(32)씨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강제휴업을 당한 뒤 한 달에 80만 원 정도 받고 있다, 4인 가족이 그 돈으로 어떻게 살겠느냐"며 "그 돈마저도 제때 안 나와 생활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이곳은 쌍용자동차 공장과는 차로 20여분 떨어져 있다. 복기성 지회 사무장은 "지난해 11월 강제 휴업 당한 뒤, 출입금지까지 당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쌍용차 전체 비정규직 340여명 중 35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고, 나머지 300여명도 해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 회사의 구조조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이미 시작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도 이곳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면 고용이 유지된다고 주장하지만, 비정규직이 모두 해고될 쌍용자동차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비정규직에 날아든 해고통지서... "억장이 무너진다"
쌍용자동차는 '비정규직의 무덤'으로 유명한 곳이다. 2004년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자동차에게 매각될 당시, 1700여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었다.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 지난해 초에는 640여명까지 줄었다.
같은 해 11월 4일 쌍용차와 당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생산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340여명에 대한 강제휴업에 합의했다. 또한 회사는 희망퇴직자에 한해 500여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며 퇴사를 종용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지회는 "희망퇴직은 '절망퇴직'"이라며 "대책 없는 강제휴업은 정리해고를 잠시 유예하는 것뿐이고, 앞으로 7100여명에 달하는 정규직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노사 양쪽에 거세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기약 없는 강제휴업에 비정규직 300여명은 회사를 떠났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비정규직 노동자 35명은 70만~8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월급이 제때 나온 적은 없었다. 한두 달 밀리기 일쑤였다.
지난 3월 초 결국 해고는 현실이 됐다. 이들에게 "4월 말에 해고하겠다"는 해고 통지서가 날아들거나, "고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도급업체의 입장이 전해졌다. 이어 일사천리로 쌍용자동차 출입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이에 대해 복기성 사무장은 "억장이 무너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식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작년에 최저임금보다 1원 많은 시간당 3771원 받고 일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내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무영 쌍용자동차 홍보팀장은 "3개 라인 중 1개 라인은 개조공사 중이고, 2개 라인은 주간 1교대 근무만 하고 있어 휴업은 어쩔 수 없다"면서 "비정규직 해고는 도급업체의 일이지, 우리와는 관련 없다"고 밝혔다. 출입금지와 관련, 그는 "휴업이기 때문에 원래 출입을 할 수 없고, 사회단체와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라도 출입할 수 없다"고 전했다.
비정규직법 통과 후... 정규직될 기회는 사라지고, 해고는 늘고
비정규직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권정일(31)씨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실시 방안 협의'라는 제목의 문서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지난달 8일 그의 집에 도착한 이 문서는 사실상의 해고통지서였다. 그는 "회사 관계자가 '더 이상 고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 달에 130만원 받으며 '죽어라'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하느냐"며 "소문에는 (도급)회사가 고용보험료도 제때 못 낸다고 하는데, 해고되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이날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해 크게 비판했다. 유제선(29)씨는 "비정규직법 시행 후, 2년 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면서 "이번에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면 다음에 또 연장된다, 죽도록 일해야 한 달에 120만원 받는 '노예'의 삶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법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9년 입사한 류형순씨는 "비정규직법 통과된 후 돌아온 건 해고통보"라고 밝혔다.
"2004년 1700명의 비정규직 중 40명에게 정규직 기회를 부여됐다. 이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강제해고는 당연히 불법이었다. 2007년 비정규법이 시행된 후, 이런 기회가 사라졌다. 회사는 어렵다는 핑계로 언제든지 2년 안에 해고할 수 있게 됐다. 한참 잘못됐다." 구조조정의 목표는 정규직...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과 함께 싸우겠다"
쌍용자동차의 비정규직 대량해고는 단순히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에게만 닥친 문제는 아니다. 비정규직법으로 '해고의 자유'를 얻은 기업들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대량해고의 칼날을 들이민 지 오래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자동차업계에서는 789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됐고, 2252명이 해고 위기에 처했다. 앞으로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아산공장과 GM대우 부평2공장의 근무형태가 상시 주간으로 바뀔 경우, 3000여명의 추가 해고가 예상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해고는 정규직 노동자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권순만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비정규직은 (구조조정의) 과정이고, 그 목표는 정규직"이라면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선출된 현재의 쌍용차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지회와 손을 잡고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