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신발 한 켤레 값이 대단히 비싸다고 느끼지만, 크기가 작은 신발이라고 더 싸지 않음을 헤아린다면, 아기도 똑같은 한 사람 몫을 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235미리 신발과 280미리 신발 값은 똑같으니까요(그래도 작은 신발이 퍽 비싸다고 느껴지지만, 작은 물건 만들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궁시렁궁시렁).
제가 타고다니는 자전거를 바라보는 꽤 많은 분들이 '아주 비싼 녀석'을 탄다고 느끼며 값을 묻곤 합니다. 고작 이십 만 원 주고 산 자전거인데, 이백만 원이느니 이천만 원이느니 하고 물으시던데, 자전거를 모르니 그리 생각하시는구나 싶으면서도, '자전거를 탄다는 사람들이 끌고 다니는 녀석'들이 으레 비싸기 때문에 '자전거를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섣불리 생각하시는'가 보다 하고 느낍니다.
제가 쓰는 사진기를 놓고도, 사진기를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은 '크고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진기를 잘 아는 분들은 '싸구려 사진기를 잘도 어깨에 걸치고 다니네'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처음 배워 찍던 1999년부터 지난 2008년까지 모두 열 차례 사진기를 도둑맞고 잃어버리느라 더는 새 사진기를 장만할 주머니가 못 되어 퍽 싼 장비를 갖고 다니는데, '사진찍기를 제 일거리로 삼는' 저로서는 참으로 값싸고 모자란 장비이지만, 사진을 모르는 분들한테는 제 장비만 해도 대단하게 여기곤 합니다.
지지난달인가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책마을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인 어느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이분들이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아무도 사진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문득, 제 사진기를 보시더니 '그 좋은 사진기로 한번 찍어 주셔요' 하고 말씀을 여쭈십니다. '아유, 이게 뭐 좋은 사진기라고요' 하고 쑥스럽게 웃습니다. 참말 '좋은 사진기'는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자리가 아직 낯설어 쭈뼛쭈뼛 있었는데, 이 말씀을 듣고는 마음은 홀가분해지면서 즐겁게 사진 스무 장쯤 찍었고, 이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이분들 인터넷모임 방에 사진을 띄웁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사진이 아주 잘 나왔다고 기뻐해 줍니다. 그러나 이분들 말씀이 아니라 제가 생각하기에도 사진은 제법 잘 나왔습니다. 찍히는 사람이 선선히 받아들여 주고, 찍는 사람 또한 흐뭇하고 반가운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곱 시, 아기는 어김없이 일찍 깨어납니다. 아기 아빠는 지난밤 두 시에 일어나 새벽 여섯 시까지 밀린 일을 하고 겨우 잠들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는 '나 지금 일어났으니 놀아 줘' 하는 얼굴빛입니다. 아기 아빠는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고 아기 엄마가 일어나서 아기를 안고 달래다가는, 곧이어 아기가 눈 똥을 치웁니다. 아기 아빠는 한 시간쯤 더 누웠다가 부시시한 몸으로 일어나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하고 겨우 책상 앞에 앉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나서 도서관 책꽂이를 뒤져 《街角》(木村伊兵衛,1981)을 넘겨봅니다. 그러고는 옆자리에 꽂은 《白い風》(川上 淸,1974)을 들춥니다.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힘들 때면 늘 넘기고 들추는 사진책인데, 지난해 여름에 처음 만난 《이해선사진작품집》(1980)도 후줄근함 마음을 채워 주는 고마운 마음밥 같은 사진책입니다. 《街角》은 이름난 사진책이지만 《白い風》이나 《이해선사진작품집》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 이 두 가지 사진책을 손으로 만지면서 펼친 사람은 나라안에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지 않으랴 싶습니다. 나라안에 '이해선사진문화상'이 있다고 하나, '이해선 사진'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알 만한 작품집은 2005년에 나온 《이해선 사진집》(눈빛)이 고작입니다. 비매품으로 나온 《이해선사진작품집》이나 《한국의 고궁》을 갖춘 도서관은 나라안에서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개인도 몹시 적어, 헌책방에 어쩌다 흘러나와 운좋게 만나지 않고서야 살펴볼 수 없습니다.
일본 사진쟁이 카와카미 키요시(川上 淸) 님 사진책 《白い風》 또한 비매품으로 1974년에 1000부 나왔습니다. 한국사람이 이 사진책을 만나고 카와카미 키요시 님을 알게 되는 일이란 참으로 힘들겠구나 싶은데, 일본사람 또한 이분 사진책과 사진밭을 헤아리기는 꽤 어려우리라 봅니다. 어쩌면 당신 스스로는 사진을 좋아하고, 당신 사진에 '찍히는 사람과 삶터' 모두를 좋아하기에, 아무 꾸밈과 스스럼이 없이 사진길을 걸었고, 당신 사진 가운데 몇 점을 꾸려 조그맣게 비매품으로만 몇 부 찍어서 나누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이 사진을 알아볼 사람한테만 사진쟁이 그분이 손수 나누어 주었을 테고, 이 사진책을 받아든 분들은 뜨거운 가슴을 얻으면서 기쁜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테며, 또 이 사진책이 뭇사람 손을 거치고 흐르며 나라 건너 한국땅으로도 들어와서 서울 홍대 앞 어느 헌책방 한 곳까지 꽂히게 되었습니다.
《白い風》을 꽂아 놓고 책손을 기다리던 헌책방은 〈온고당〉입니다. 지난날 〈글벗헌책가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던 곳이고, 이제는 헌책방 살림이 퍽 어려워 예전처럼 빛곱고 사랑 짙은 사진책을 만나기는 힘들어졌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 수많은 헌책방이 걸었던 길과 똑같이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할 테며,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쳐도 도움받을 손길 없이, 조용히 세월에 묻혀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머나먼 어느 뒷날, 헌책방 책시렁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白い風》이 하얀 바람을 쐬며 힘차게 깨어나듯, 길거리 어느 동네 헌책방에서 《街角》 같은 책이 하나둘 우리 눈에 뜨이며 새삼스러워지듯, 우리 마음에 헌책방 문화가 스며들면서 차츰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02년 7월 2일, 《白い風》을 저한테 판 헌책방 〈온고당〉 용수 아저씨는 "이 책이 언제 나가나 했는데, 책은 역시 알아보는 사람이 따로 있군요." 하고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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