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09 서울모터쇼' 대언론 프레스데이 행사에서 가장 많은 기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무엇일까?
세계 최초로 공개된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카? 기아자동차가 심혈을 기울여 7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는 2세대 '쏘렌토 R'? 아니면, GM대우의 전기차 볼트? 르노삼성 고연비 뉴SM3? 쌍용차 디젤하이브리드카?
유감스럽게도 이날 '신차의 향연'으로 불리는 모터쇼의 최대 관심사는 '차'가 아니라 GM대우가 초청한 9명의 앳된 소녀들이었다.
"돈 없다더니"... 소녀시대 '한 방'으로 흥행 성공한 GM대우이날 오전 10시쯤, 현대자동차에 이어 6번째로 대언론 발표회를 진행한 GM대우 부스. 비장한 표정의 마이클 그리말디 GM대우 사장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GM대우가 국내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차세대 마티즈, 시보레 볼트 등 신차를 소개했다.
그리고는 행사장에 그룹 소녀시대의 히트곡 '지(Gee)'의 전주가 흘러 나왔다. 이어 순식간에 무대 위로 올라온 소녀시대 멤버 9명은 발랄한 몸짓을 섞어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소녀시대야?"라며 반신반의하던 기자 수백 명이 "맞다"라고 외치며 무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GM대우는 사전에 취재진에게 소녀시대의 출연을 알리지 않았다. 갑자기 등장한 소녀시대를 찍으려고 몰려드는 취재진으로 장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노래가 끝난 뒤, 소녀시대가 차세대 마티즈 옆에서 포즈를 취하자, 취재 열기는 더욱 고조됐다.
그러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는 차세대 마티즈가 아니라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이쪽 좀 봐주세요"라는 기자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그 어떤 신차 발표회장보다 자리다툼도 치열했다. 뜨거운 취재 경쟁으로 모터쇼 행사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열띤 신차 취재 경쟁 속에서 소녀시대를 앞세워 흥행몰이에 성공(?)한 GM대우 측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소녀시대와 함께 차세대 마티즈 옆에서 포즈를 취하던 마이클 그리말디 사장의 얼굴에도 시종일관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GM대우 신차 옆에서 잔뜩 폼을 잡고 있던 미녀 도우미들은 소녀시대 쪽으로 몰려간 기자들을 돌아보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멀찌감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국내외 타 브랜드 관계자들도 허탈해 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행사를 준비했는데, 소녀시대가 '한 방'에 분위기를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GM대우가) 돈이 없다더니, 돈 많네"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GM대우가 최근 산업은행에 1조 원 수준의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 GM대우가 행사 당일까지도 소녀시대가 출연한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던 배경 중에 하나는 '돈'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시대의 출연료가 높아서 막판까지 행사 출연이 불확실했다는 것이다. 소녀시대가 이날 행사에 얼마의 출연료를 받았는지는 결국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대학축제를 비롯해 기업 행사, 지방자치단체 축제 등에 가수가 출연할 경우 인기그룹 빅뱅이나 동방신기는 회당 최고 2000만 원 가량을 받고,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등은 15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들의 출연료는 공연장소, 무대의 성격, 곡수 등을 종합해 책정되고, 수도권을 기준으로 거리에 따라 교통비 명목으로 100만~200만 원이 추가된다고 한다.
타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모터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부스 대여 명목으로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야하고, 행사장 인테리어와 발표회, 도우미 등 많은 추가 비용이 나간다"며 "요즘같이 자동차 시장이 불황일 때 고액의 출연료를 줘야 하는 인기 연예인까지 부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황' 속에 열린 모터쇼... GM대우 "2분기 자금유동성 우려" '아름다운 기술, 놀라운 디자인' |
'2009 서울모터쇼'가 2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12일까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다.
2일은 언론 공개행사로 진행되며 일반인들의 관람은 3일 낮 12시부터 이뤄진다.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낮 동안 전시장 방문이 어려운 직장인과 동반 가족을 위해 폐장시간을 오후 8시(토·일요일은 오후 7시)로 2시간 연장, 운영한다. 입장료는 대학생 포함 일반인 9000원, 초등학생 포함 어린이 6000원이다.
올해 7회째인 서울모터쇼는 '아름다운 기술, 놀라운 디자인'(Beautiful Technology, Wonderful Design)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며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GM대우·르노삼성·쌍용자동차 등 5개 국내 완성차 업체와 120개 국내 부품업체가 참여한다.
해외에서는 9개국 33개 업체가 참여해 총 158개 업체를 모터쇼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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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날 서울모터쇼는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장기 불황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GM 파산 우려, 한미FTA 자동차 부문 재협상 등 국내외 자동차 시장이 뒤숭숭한 상황이어서, 예년의 모터쇼와 비교해 대폭 규모가 축소되거나 차분한 분위기였다.
우선 이번 모터쇼에는 경기 불황을 이유로 수입차 업체 절반 이상이 불참을 선언해 아우디·폭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토요타(렉서스)·혼다·포드(링컨) 등 6개 업체 8개 브랜드만이 참가했다. 이번 모터쇼를 두고 "집안 잔치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모터쇼의 또 다른 특징은 화려한 '쇼'를 최대한 억제하고, 모터쇼에 늘 따라붙은 '미녀 도우미' 숫자도 예년에 비해 동결하거나 대폭 축소했다는 점이다. 업체들은 저마다 "관람객의 시선을 도우미가 아니라 자동차로 끌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도우미를 고용하는 비용이 크지 않았는데, 요즘엔 도우미들도 등급이 나눠져 있어 최고의 도우미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아예 도우미를 줄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인 자동차 수요 및 매출 감소에 따른 유동성 문제에 어느 기업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프레스데이에서는 쌍용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노조지부장이 직접 무대에 올라와 신차를 소개하고, 판매 확대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날 행사에서 경기 불황에 대한 어려움을 가장 강하게 표명한 업체가 바로 소녀시대의 '한 방'으로 흥행에 성공한 GM대우라는 것이다.
마이클 그리말디 GM대우 사장은 이날 행사에 참여한 업체로는 유일하게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고 "올 2분기에 (자금)유동성이 우려스러운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산업은행의 자금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최근 6~8개월 전부터 현금흐름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계속 (자동차) 수요가 준다면 당분간 생산량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현재 생산설비 등 사업자체에 대한 변경이나 매각 계획은 없지만 서울 정비사업소를 매각할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리말디 사장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협력파트너로서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높은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향후 몇 년간 지속적인 투자를 희망하기 때문에 산업은행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추가 여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원형식은 추가 대출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리말디 사장은 GM대우가 2002년 출범이래 주식 배당금 등 어떠한 형태로도 자금을 국외로 유출한 적이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GM대우가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여신이 본사인 미국 GM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리말디 사장은 본사 GM의 파산이 GM대우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요청하는 추가 구조조정을 할 경우 GM은 파산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만약 GM이 파산하더라도 미국 내 사업장에만 영향이 있을 뿐 글로벌 사업장에는 영향이 없고 따라서 GM대우도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산업은행에 1조 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요청한 GM대우가 창설이후 매년 6000여 명에 달하는 사무직 직원들에게 각종 보상금 명목으로 '격려금 잔치'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GM대우는 또 최근 생산직 임금을 10% 삭감하고 서울 양평동과 동서울의 정비사업소 2곳을 매각하는 내용의 계획안을 밝혀, 노조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