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추억의 도시락 같은 거.
지난 번 남대문 갈치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닭곰탕집을 하나 보았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니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찢은 닭고기를 넣어 놓은 것이 그 옛날 버드나무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혹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고 검색창에서 버드나무집을 찾으니 온통 강 아래 고깃집만 나온다. 내가 찾으려는 건 주머니 생각하지 않고도 즐겨 먹을 수 있던 닭곰탕집인데도 말이다. 버드나무집은 온 나라 자동차 댓수가 백 만 대 아니 수 십 만 대도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귀에 낯선 기사식당이란 단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내가 살던 집 골목에서 나오면 바로 버드나무집이 있었는데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지금에야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해주는 업체가 따로 있어 거의 비슷한 김치나 깍두기를 이집 가도 먹을 수 있고 저집 가서도 먹을 수 있지만, 식간을 이용해서 배추와 무를 길거리에 쌓아놓고 다듬는 광경은 그것만으로도 구경거리였다.
아줌마들이 아기 목욕통으로 쓸 만한 커다란 함지를 두세 개 갖다놓고 차고 앉아 커다란 연필 깎듯이 배추를 부엌칼로 툭툭 치면 10센티 전후로 제멋대로 잘린 배추조각이 쌓인다. 그 위에 고춧가루, 마늘, 파, 소금, 미원를 뿌리고 벌겋게 버무리는데 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몇 입 나누어 먹어야 될 정도의 크기로 썩썩 잘랐다.
요즘에야 설렁탕집에서 가끔 보는 그런 커다란 깍두기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커다란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거기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원을 넣었는데 그게 무슨 음식이냐고 탓하지 말라. 그 때는 배웠다는 주부들도 거의 모든 음식에 미원을 쳤으니까.
닭고기 기름 많은 것 아시지. 지금에야 '껍질 빼고 기름 빼고'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 양은 냄비에 주욱죽 찢어놓은 닭고기와 육수를 붓고 밥 넣고 다대기 한 숟갈 넣고 펄펄 끓여 파 송송 썰은 것 얹고 커다란 깍두기와 국물 넉넉한 배추김치와 마늘을 곁들여 나오면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드-은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양은 냄비와 닭을 보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제대로 먹으려면 닭곰탕을 시켜야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닭곰탕만으로는 안주가 되지 않는다. 문간 옆 조리대에서는 방금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닭을 커다란 쟁반 위에 놓고 손으로 뜯어 접시에 담고 있는데 닭 한 마리 시키니 양은냄비에 곰탕국물을 곁들여 준다. 닭국물이 달긴 하지만 미원을 약간 가미한 것 같은 맛과 질긴듯하면서도 졸깃한 닭고기 씹는 맛이 옛 맛과 비슷하다. 국물이 식으면 자동적으로 육수를 첨가해서 다시 끓여주니 맘이 흐뭇하다.
요새야 닭 조리법이 다양해졌지만 튀길 기름조차 귀하던 때에는 그저 푹 삶아 국물도 내고 백숙으로 고기도 뜯어 먹는 것이 제일 간편한 조리법이었을 것이다. 푹 고은 닭을 건져 찬물에 손가락을 식혀가며 다리 비틀어 내어 어른들 몫으로 따로 남겨두고, 닭 날개 뜯어서 '바람 필까봐' 남정네 못 먹게 감추어 두고, 수탉 잡으면 '벼슬하라고' 닭 벼슬은 아들에게 따로 떼어주고, 가슴살은 발라서 국거리로 남겨두고, 뱃속의 미숙란과 똥집은 내가 먹고, 국물에는 대파를 송송 썰어 얹어 내었으니 이만큼 추억과 정감이 배어있는 음식을 보기 쉽지 않으리라.
국밥이라는 것이 체면 차리고 먹는 음식이 아니다. 할 일도 많은데 장소 구애받지 않고 솥 걸어놓고 끓여 사발에 국 푸고 밥 집어넣어 깍두기 하나 놓고 먹는 음식이니 애시당초 점잖게 격식 차리고 먹을 거면 들여다보지도 말아야할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곱창이나 꼼장어처럼 신분 상승된 음식이 하도 많아 아직도 제 분수를 알고 있는 이런 음식을 보면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