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길지만 만남의 인연은 짧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도 그렇지만 꽃과 만남도 반짝하는 시간이다. 엊그제 찬바람 속에서 매화를 만났는데 벌써 자두나무의 청백색 꽃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정원 가꾸기와 텃밭 농사 3년째, 아내와 나는 피었다 지는 꽃을 보며 계절을 읽는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쉴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자칫 어려운 사람들의 염장이나 지르는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사는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그러나 나의 텃밭 농사는 부자가 되기 위한 일이 아니다. 권력을 잡기 위한 일도 아니다. 사람과 어울려 세상을 뒤집자는 운동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끼니마다 자신이 기른 채소를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그리하여 아내와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꾸는 일일 뿐이다.
아직 출퇴근 하는 견습농부지만 아내와 나는 주말이면 거의 정원에서 보낸다. 너른 잔디밭, 제법 꼴을 갖춰가는 철쭉 길, 나의 땀으로 심은 각종 나무들…. 아내는 잔디밭의 풀을 뽑거나 텃밭을 가꾸고, 나는 주로 삽이나 괭이가 필요한 일을 한다. 몸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는 일을 한다.
텃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꾸면서 우리가 얻는 소득을 화폐 가치로만 따진다면 마이너스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런 산술적인 문제를 고민했다면 우리 부부는 벌써 손을 들었을 것이다.
텃밭 농사에는 계량적인 수치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경험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보람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내와 나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4년 전 직장을 그만 둘 정도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던 아내는 현재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약을 복용하지 않음에도 활동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리고 나 역시 혈당 수치가 최대 340까지 오르고 200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농사를 짓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약을 먹지 않고도 혈당 수치가 140선에서 오르내릴 만큼 안정되었다. (아직도 보통 이상이지만)
아내와 나의 건강이 호전된 배경에는 정원 가꾸기와 텃밭 농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경험이지만 생명이 싹트고 자라는 텃밭의 일상을 보면서 늘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정신적인 긴장을 완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병세를 호전시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적당한 육체적인 노동과 그 노동을 통해 수확한 각종 야채를 거르지 않고 먹었던 것도 건강회복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한 사람들이 농촌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많은 은퇴자들이 귀촌하여 텃밭 농사를 짓는다면 침체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은퇴 후 일거리가 없는 은퇴자들에게 텃밭 농사는 정년 연장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농촌생활은 보기보다 아름답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기어다니는 파충류와 만남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하고 모기와 싸움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괭이와 삽을 잡은 손목이 아프고, 여름의 풀이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미리 알아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풀 속에서 숨을 못 쉬고 죽어가는 작물, 벌레에 당한 배추를 볼 때면 속이 상한다는 사실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좋은 점이 의외로 많다. 자연 환경이 주는 혜택은 다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고 무엇보다 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부의 합의다. 부부의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텃밭의 규모를 얼마나 할 것이냐?" 또 "텃밭을 어디에 만들 것이냐?"하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마음에 드는 집이나 땅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생활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남겼기에 내 이야기는 사족일 수 있다. 다만 은퇴 예정자 혹은 은퇴자들 그리고 도시 살림을 정리할 생각이 있는 분들은 텃밭농사의 뜻을 이루어보십사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은퇴 후 동남아시아의 나라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국보다 가까운 농촌 어디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도 외국으로 나가는 은퇴자들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은퇴자들이 우리 농촌에 안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요즘 아내와 나는 우리의 선택이 잘된 선택이었음을 거듭 이야기한다. 애초에 1천여 평의 농사가 부담스러워 절반쯤 잔디밭을 조성했지만 최근에는 농사짓는 땅을 더 줄였다. 금년에 소나무와 철쭉 심어 이제 텃밭은 50여 평의 비닐 하우스를 포함하여 200여 평 쯤으로 줄였다. 아내와 내가 남의 손을 빌지 않고 다루기에는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본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거스릴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건만 만남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나에게 노년이 오리라는 생각조차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이었다. 그때는 꽃이 피고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도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그런데 이제야 피고 지는 계절의 꽃시계를 보게 되었고, 앞으로 매화와 자두 꽃을 맞이할 횟수가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 보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 늦었다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지난 2월 말부터 주말이면 잔디도 옮기고, 나무도 심었다. 울타리에는 남천을 심고 철쭉으로 길을 냈다. 그 뿐 아니라 경운기를 빌어 난생 처음 쟁기질도 했고, 고추 등 채소를 심을 밭에 이랑을 만들어 멀칭도 했다.
아직 자랑할 만한 정원은 아니다. 구석구석 손길을 기다리는 곳도 많다. 그래도 이따금 들르는 사람들로부터 보기에 좋다는 말을 들을 때는 보람도 느낀다. 사람의 손이 가는 만큼 땅도 변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자두나무 꽃그늘에 앉아 새소리를 듣는다. 평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만들어야지 무작정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어차피 짧은 만남이라면 여생을 자연과 더불어 보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공감하는 분들, 특히 육체적인 병에 시달리는 분들은 한 번 쯤 더 생각해 볼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