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을 포함한 국민들의 신문읽기 진흥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필요한 비용은 국고 또는 신문발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할 계획이다."허원제(부산 진구갑) 한나라당 의원의 신문법 개정안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허 의원은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문읽기 활성화 세미나'에서 위와 같이 밝혔다.
청소년의 신문읽기 활성화를 위해 허 의원이 내놓은 계획은 중고등학교 학급당 4종의 신문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 신문의 발행비용은 신문사와 정부가 절반씩, 신문유통비용은 정부가 100% 부담하는 방식이다.
현재 전국 중고교 학급 수는 11만5322개로, 이 사업이 추진될 경우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약 840억 원 가량의 세금이 투입된다. 하루 약 50만 부의 신문이 더 배달되는 꼴이기 때문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문업계에도 간접지원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영하는 신문들 "탁월한 교육 효과 이미 입증됐다"
허 의원의 방안에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곳은 신문사들이다. <국민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부산일보> 등 주요 신문사들은 칼럼이나 사설을 통해 "신문 읽기의 탁월한 교육적 효과는 이미 학계에서도 입증된 만큼 법으로 지원할 가치가 충분하다" "신문읽기는 이제 국가적 교육정책의 하나로 추진할 때가 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도 신문이 교육적으로 유용한 도구라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신문읽기 활성화 세미나'에 참석한 김양은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신문 교육은 독서습관을 배양하는 데 효율적이며,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판단력과 표현력을 길러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시대의 신문교육은 읽기능력의 향상이라는 측면과 매우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정보사회에서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능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현재 교육 현장에 있는 권영부 동북고 교사는 "최근 여러 미디어 환경의 변화 때문에 학생들의 읽기가 부족한 감이 있다"며 "신문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법에 대한 교육이 병행된다면, 어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신문 읽기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소외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정보의 접근권과 국민의 알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실제로 신문발전위원회가 963개 소외계층 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신문발전기금으로 시행한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사업'에 대해, 수혜자 대부분이 만족하고 있으며 응답자의 95.5%가 사업의 지속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 지원이 오히려 가치관 형성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김성균 대표는 "이 사업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중고등학교 교실에도 <조선><중앙><동아> 등 사실을 왜곡하는 신문사의 논조가 강요될 수 있다"며 "일종의 세뇌교육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심현진(26·가명)씨도 "고등학생들이 학급에 들어오는 신문을 읽고 일부 보수신문들 같은 편협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면서 "신문을 비판적으로 읽는 교육이 선행되지 않으면 교육적으로도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아한 학생들 "어린이 신문 구독도 학생 의견 내기 힘든데..."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학생들은 대부분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이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정장원(18·서울 서초고)군은 "신문이 들어와도 안 보는 친구들은 계속 안 볼 것 같다"며 "공부하기 바빠 신문 볼 시간이 없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정군은 "학급에 들어오는 신문의 종류와 구독 여부를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결정권이 학생들에게 주어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초등학교의 어린이 신문도 학생이나 학부모 의견대로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일간지 4종류라면 학교와 신문사 사이에 더욱 많은 이권이 개입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유성혁(17·가명)군도 "어차피 인터넷에서 신문의 사설이나 기사를 더 쉽게 볼 수 있는데 굳이 각 학급에 신문을 넣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작년 한국언론재단에서 실시한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전국 5000명 성인 대상 조사)'에서 매체이용률은 인터넷이 74.3%였던 반면, 신문은 58.5%에 머물렀다. 신문의 신뢰도는 16.0%에 그쳤다. 방송(60.7%)에 크게 뒤졌고, 인터넷(20.0%)보다 낮았다.
세금으로 신문을 구독해 줄 만큼 청소년들의 독해실력에 그렇게 문제가 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에 진학한 이영균(20·가명)씨는 "신문을 구독해 나쁠 건 없겠지만, 독해력 향상을 위해 꼭 신문을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독해력은 세계 1위 수준. OECD가 지난 2006년, 전 세계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습도달도 조사(PISA)' 독해력 부분에서 한국은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청소년 독해력 1위를 차지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신문 구독부수는 OECD 국가 중 17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낮은 신문 구독부수와 청소년들의 독해력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