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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발언으로 난처해진 언론사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있는 유력 언론사 대표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있는 유력 언론사 대표의 실명을 공개했다. ⓒ 남소연

언론노동자는 팩트(Fact)로 먹고 산다. 그리고 수많은 팩트들은 사건의 진실로 향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팩트는 늘 어려운 존재다. 정부기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쓰는 것이 팩트냐? 물론 아니다. 그것을 근거로 묻고 따지고, 확인하면서 팩트를 확인해 간다. 이것은 거리의 기자회견 또는 집회, 제보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서관, 인터넷, 지인을 통한 전화 확인을 통해 '사실' 근처로 접근한다.

 

최근 장자연씨 죽음과 관련해 그가 남긴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글에 남겨진 회사와 관련 대표의 '성'을 공개하자, 이것을 언론이 어떻게 써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부분 언론사들은 '○○일보'라고 보도했고, 소수 언론사는 회사 이름을 공개했다. 그리고 아예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누락한 언론사도 있다.

 

기사 가치는 충분하다. 즉, 그동안 언론들이 '장자연 리스트'라 부르며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이 리스트에 재계와 언론계의 명단이 있다고 보도해 왔으며, 검찰수사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종걸 의원의 발언에 '침묵의 카르텔'을 선택한 언론사들이 있다.

 

시종 '○○일보'라고 보도한 언론사도 있고, 이종걸 의원의 발언 내용은 '○○일보'로 표기하고 그 언론사가 각 언론사에 '본사 최고 경영자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는 내용의 해명 혹은 보도자료라고 부를 수 있는 자료를 배포한 사실은 실명을 거론해 전한 언론사도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종걸 의원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 언론사들도 있고, 그의 발언 내용 동영상을 링크해 놓거나 직접 보도한 언론사도 있다.

 

기자들은 여기서 또 하나 고민하게 된다. '만약 팩트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이다.  " "(쌍따옴표)로 면피를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장자연씨가 남긴 글'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이미 고인이 된 장씨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장씨 매니저들과 언론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X파일 보도 사건을 떠올려 보자. 국가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녹취록이 있고, 녹음 테이프 원본이 있었다. 또 그것을 풀어놓은 글이 있으며, 그 관계자들이 모두 살아있고 당시에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도할 수 있는 조건들이 모두 갖춰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침묵하는 상태가 일정 정도 유지됐다는 것이다. 즉 삼성과 정치권 실세, 검찰 그리고 언론사가 모두 문제의 쟁점이었다. 이는 그동안 언론이 '삼성 비판'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일 수도 있고, 너무 거물이었기 때문에 말을 떼기가 어려웠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말을 떼고 비판하기 시작하자 하나둘 베일이 벗겨졌고, 이후 '삼성공화국'의 내부 고발자들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체 언론사가 리스트에 등장한 꼴

 

이번 고 장자연씨의 메모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메모'를 확보하고 있을 것이고, 그러지 않은 언론사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갖고 있지 않은 언론사들은 검찰 혹은 수많은 정보원에게서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심지어 나 같은 작은 매체의 기자 역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문건('글')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모두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보도하지? 신뢰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나름대로 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언론사들은 고민했다. 언론시민사회단체 역시 직접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관련 회사 입구에서 제대로 보도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언론사는 다시 이것을 받아쓰거나 혹은 묵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 이종걸 의원의 발언이 있었다. 기자들은 또 고민했다. 즉 국회에서 수많은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면책특권이 있다. 그러나 그 발언을 전하는 기자들에게는 면책특권이 없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일보'였다. ㄱ신문사, ㄴ신문사도 아닌 '○○일보', '스포츠○○'이었다. 이니셜로 쓸 경우 사실상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실상 전체 언론사가 리스트에 등장한 꼴이 되어 버렸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고, 모르는 사람들 역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국회 동영상은 그대로 있고, 보도한 언론사들도 많아졌다. 심지어 <100분 토론>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토론 중 진행자의 만류에도 계속 언급했다. 목요일에 보도된 이 동영상은 토요일 현재까지 동영상이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토론 전문에서는 '○○' 등으로 처리됐다).

 

그리고 결국 '○○일보'에 해당되는 언론사가 입을 열었다. <조선일보>는 11일자 지면을 통해 "조선일보사는 조선일보의 특정 임원이 '장자연씨 사건'에 관련된 것처럼 공표해 조선일보와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의 신상철 대표이사를 10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고 밝힌 것이다.

 

'○○신문'을 보도했던 언론사들은 이제 <'○○일보'사는 ○○일보의 특정 임원이…>로 처리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해당 신문사 스스로 '○○'을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서도 기자들은 또 고민하게 된다.

 

<조선일보>가 해당 언론매체에 대해 '단정적으로 적은 게시글을 장기간 방치'했다며 명예훼손에 의한 형사 고소 이외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한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상 이 말에는 전체 언론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결국 '기자는 팩트로 말해야 한다'는 고민 속에서 우리들은 다시 고민하게 된다. 도대체 팩트가 무엇인가?

 

 조선일보사는 10일 "고 장자연씨 사건에 <조선일보> 특정임원이 관련된 것처럼 공표해 <조선일보>와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이종걸·이정희 의원을 고소했다.
조선일보사는 10일 "고 장자연씨 사건에 <조선일보> 특정임원이 관련된 것처럼 공표해 <조선일보>와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이종걸·이정희 의원을 고소했다. ⓒ

덧붙이는 글 | 이기범 기자는 언론노보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펙트#장자연#이종걸#이정희#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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