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부·홍정욱 의원실 "USTR, 재협상없이 한미FTA 처리"
나로서는 영어가 국교(國敎)처럼 되어 버린 우리 현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영어를 잘하는 것이 좋다는 쪽이다. 당연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영어를 잘해야 할 사람은 잘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나 경제를 위해서나 말이다. 외교통상부와 국회의 외교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실이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4월 12일 <연합뉴스>는 "외교통상부와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실"을 인용하여 미국의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이하 인사이드로 줄임)>지의 10일자 기사내용을 "USTR, 재협상없이 한미FTA 처리"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내용인 즉 이러하다.
지난 4월 6일 열린 경제계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대니 세풀베다(Danny Sepulveda)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보와 관계자들이 '협정문에 손대는 재협상없이'(without renegotiating their texts) 한국과 파나마, 콜롬비아와의 FTA를 처리하기 원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합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USTR 관계자들이 한국과의 FTA 협정의 경제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미 FTA를 지지하는 경제계 인사들이 무척 고무"되었고, "다만 한-미 FTA 처리와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며, "USTR에서 한-미 FTA 재협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하였다.
또 <연합뉴스>를 보면,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USTR 대표보의 발언은 문자 그대로 한-미 FTA와 관련해 협정문에 손을 대는 재협상이 필요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미국 측도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의사가 없는 것이 확인된 만큼 우리도 독자적으로 한-미 FTA 국내 비준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됐다"면서 "아울러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조기 비준을 촉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하였다.
읽다가 말았거나 의도적으로 기사를 왜곡했거나
먼저 이 뉴스를 보도한 <인사이드>지는 명실상부 가장 정통한 통상전문지다. 일반인이 받아 보기에는 구독료가 만만챦은 이 잡지를 나는 오래 전부터 통상관련 취재 기자들에게 꼭 구독할 것을 권유해왔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대니 세풀베다는 오랫동안 오바마 의원밑에서 관련 업무에 종사해온 비서관 출신으로 그래서 누구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인물이다.
USTR에는 총 21명의 미무역대표보(Assistant USTR)가 있는데, 세풀베다는 그 중 의회업무국을 이번에 맡았다. 무역대표보는 우리 행정체계에 억지로라도 맞추자면, 글쎄 국장급정도 된다 하겠다. 4월 6일 업계 간담회에 참석한 그 외 인물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한미FTA 협상대표 웬디 커틀러가 있다.
그녀 역시 무역대표보인데 일본, 한국, APEC담당국의 국장이라 보면 되겠다. 내가 굳이 국장급임을 언급하는 이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국장이, 차관, 장관 그리고 대통령의 의사에 반해서 무엇을 결정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는 외통부와 홍정욱 의원실을 인용보도한 <연합뉴스>의 이 기사를 보고, '이 분들 영어공부 많이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연합뉴스>의 기사기에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아쓰기 할 것을 생각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USTR이 재협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
첫째, 우선 제목을 보자. "USTR, 재협상없이 한미FTA 처리"! 과연 그런지 보자. 한미FTA와 관련해서 4월 10일자 <인사이드>지에 이렇게 되어 있다.
거래규모로 볼 때 한미FTA가 콜롬비아, 파나마FTA보다 훨씬 비중이 크지만, 의회심의로부터는 가장 멀리 벗어나 있다고 하는 명백한 언급이 있었다고 이 소식통은 말했다. 업계소식통은 재협상없이 주요 쟁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USTR의 메시지를 반기긴 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이유에서 재협상이 여전히 필요할 수도 있음에도 주의를 요구받았다. 이 소식통은 USTR이 재협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한 업계 소식통은 "재협상을 원하지 않는 것과 재협상을 하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라고 말했다.(<인사이드>지 4월 10일자 기사)
미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산하 무역소위 위원장 샌더 레빈 의원(민주당, 미시간주)은 관련 조항을 재협상하지 않고서는 의회의 충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인사이드>지 3월 13일자 기사)
위에서 말했듯이 홍 의원은 이 기사를 놓고 "미국 측도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의사가 없는 것이 확인된 만큼 우리도 독자적으로 한-미 FTA 국내 비준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언급했다. 우리 외통부 관계자는 "USTR 대표보의 발언은 문자 그대로 한-미 FTA와 관련해 협정문에 손을 대는 재협상이 필요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눈을 씻고 보자. 방금 내가 인용한 당일자 기사에서 어떻게 USTR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의사가 없는 것이 확인"될까? 분명 "정치적 이유에서 재협상이 여전히 필요할 수"있고, USTR이 "재협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3월 13일자 기사에서 언급한 샌더 레빈의 발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4월 6일 당일, 심지어 한미FTA가 파나마, 콜롬비아FTA와 비교해 "의회심의로부터는 가장 멀리 벗어나 있다"는 USTR당국자의 "명백한" 언급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요컨대, 4월 6일 간담회 당일 USTR관계자는 "재협상없이 한미FTA를 처리하기를 원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
그래서 연합 기사의 출처가 "외교통상부와 홍정욱의원실"이라면 이들은 영어로 된 <인사이드>지 기사를 해석할 능력이 안되거나, 읽다가 말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기사를 왜곡한 것이다.
'구체적 조치'가 뭔지 협의개시조차 못해
둘째, 그렇다면 USTR관계자들이 "'협정문에 손대는 재협상없이'(without renegotiating their texts) 한국과 파나마, 콜롬비아와의 FTA를 처리하기 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USTR은 지난 3월 의회에 낸 연례보고서에서 한국, 파나마, 콜롬비아와의 FTA와 관련, "진전을 위한 기준(benchmarks)"를 정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리고 커크 인준청문회에서 한미FTA와 관련된 "기준"으로 상원 재경위원장은 30개월 이상 쇠고기수입을 요구하였고, 위에서 인용한 샌더 레빈 하원 무역소위 위원장은 자동차수입관세 2.5% 즉시철폐를 15년뒤 철폐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인사이드>지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이 FTA를 지지하는 업계대표와의 4월 6일 면담에서 세풀베다와 참석한 다른 USTR관계자들은 미-파나마 FTA 통과에 관련된 장애물들을 확인하였고 파나마 정부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소식통에 따르면 USTR관계자들은 미-파나마 FTA와는 달리, 콜롬비아와 한국과의 FTA의 경우 의회통과를 위해 필요한 구체적 조치들을 확정짓기 위한 콜롬비아와 한국 정부 그리고 의회와의 협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한다. (<인사이드>지 4월 10일자 기사)
파나마FTA의 진전 "기준"으로 지목된 것이 파나마의 노동관계법 개정, 조세피난처 문제
등이다. 이 기사에 나오듯 이와 관련된 "장애물"들이 확인되어 양국이 지금 협의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미FTA와 관련해서는 그 "구체적 조치"가 무언지 한미간에 제대로 협의개시조차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 USTR관계자는 "협정문을 재협상하지 않고" 즉 2007년 6월 양국서명을 통해 봉인된 그 협정문을 고치지(reopen) 않고 주요쟁점을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30개월 이상 쇠고기수입문제는 일단 협정문과 전혀 무관하다.
문제는 자동차다. 이 또한 (1) 협정문 본문 변경, 부속서한(side letter) 또는 확인서한 삽입등의 방법 곧 협정문을 변경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2) 협정문을 그대로 둔 채 '부속협정(side agreement)'를 통하는 방법이 있다. 후자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쟁점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기사에 나오듯 이 또한 의회와의 협의가 "초기단계"이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불확실하다.
한미 FTA 의회심의, 일단 올해 안은 아니다
셋째, 그렇다면 외통부와 홍의원실이 저렇게 오매불망하는 미의회 통과는 언제쯤 될까.
한미FTA와 관련 업계소식통은 USTR이 이 FTA의 경제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음에 고무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언제 한미FTA가 심의될지, 그 시간표(timetable)에 대해서는 어떤 언질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로비스트 역시 USTR당국자들이 4월 6일 모임에서 계류중인 통상협정과 관련된 일정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로비스트는 파나마 FTA는 올해 안에 통과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을 이전에는 아닐 것으로 예상했다. (<인사이드>지 4월 10일자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미 행정부가 '신속' 처리를 원하는 파나마 FTA 경우, 만일 4월 17일-19일 개최되는 전미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파나마 FTA 이행법안 의회제출을 공식확인하고 그 뒤 의사일정이 정해진다면 잘해야 올 가을쯤 가서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콜롬비아 FTA와 관련된 쟁점 예컨대 인권상황, 노조탄압문제 등이 해결될 때, 그때 콜롬비아FTA의 의회심의 차례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FTA는? 일단 올해 안은 아니다. 내년 초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일단 영어공부에 힘쓸 일이다. 특히 외교통상부와 홍정욱 의원실이 앞장서길 바란다. 그리고 기사를 끝까지, 차근차근 읽는 습관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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