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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갈아놓은 논밭에 씨를 뿌리고 논물을 대야하지만 흙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입니다. 그래도 작은 생명들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초여름처럼 더운 봄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여갑니다.

 들길에 쑥과 민들레가 자라났다.
들길에 쑥과 민들레가 자라났다. ⓒ 이장연

그런 날 아침을 드시고 들에 나간 아버지는 고추모를 심어둔 비닐하우스의 속비닐을 걷어내고 비닐창을 열어둔 뒤 논둑에 솟아난 풋푹한 쑥을 캐왔습니다. 변덕스런 봄날씨에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 어린 손자를 위해 "쑥떡이라도 해주라"며 캐온 쑥을 어머니께 건넸습니다.

 아버지가 캐온 쑥
아버지가 캐온 쑥 ⓒ 이장연

 봄하면 역시 쑥이다!!
봄하면 역시 쑥이다!! ⓒ 이장연

 물에 잘 씻어놓은 쑥
물에 잘 씻어놓은 쑥 ⓒ 이장연

그 쑥에 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다듬어 물에 깨끗이 씻어내 소쿠리에 담아낸 뒤, 너무 더운 날씨에 쌀벌레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는 우리집 쌀을 물에 불렸습니다. 아침상을 치운 뒤 오전 11시 쌀을 잘 씻어 2시간 가량 물 속에 담궈두었습니다. 불린 뽀얀 쌀은 오후 4시쯤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로 빻아왔습니다.

 물에 불린 쌀
물에 불린 쌀 ⓒ 이장연

새하얀 눈보다 더 고운 쌀가루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아침 쑥과 쌀가루가 모두 준비되자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휴대용버너에 시루 대용 양재기와 물을 부은 솥을 올렸습니다. 그 뒤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쌀가루를 손으로 "사사삭" 비벼서는 뭉친 것들을 털어낸 뒤 쑥과 함께 버무렸습니다.

 빻아온 쌀가루를 손으로 비벼 뭉친 것을 풀어냈다.
빻아온 쌀가루를 손으로 비벼 뭉친 것을 풀어냈다. ⓒ 이장연

 쌀가루를 손바닥으로 비빈다.
쌀가루를 손바닥으로 비빈다. ⓒ 이장연

 휴대용 버너에 솥과 시루를 올려놓았다.
휴대용 버너에 솥과 시루를 올려놓았다. ⓒ 이장연

 쑥과 쌀가루 버무리기
쑥과 쌀가루 버무리기 ⓒ 이장연

상큼한 쑥향기 그득한 쑥버무리 강추!!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린 것을 명주천을 깐 시루에 골고루 쏟아내고는 쪄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옛날 먹고 살기도 힘들 때 음식 축에도 못 들었다는 쑥버무리입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많이 해먹었다며,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한 대목인 "쑥대머리~"를 콧노래 부르며 흥겹게 쑥버무리를 쪄냈습니다.

한 시루 가득 쪄낸 쑥버무리는 그 특유의 상큼한 쑥향기로 입속에 침이 그득히 고이게 했습니다. 아직은 뜨거운 쑥버무리를 "후후후" 불어가며 집어 입에 넣으니 고운 쌀가루와 어울린 쑥이 입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스스로 녹아내렸습니다.

 쪄낸 쑥버무리
쪄낸 쑥버무리 ⓒ 이장연

이래서 어머니는 쑥떡이 아니라 쑥버무리를 하셨나 봅니다. 어린 손자가 먹기 좋을 만큼 부드럽고 손으로 집을 수 있는 쑥버무리를. 그 덕분에 "아들이 점심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며 안쓰러워 하시는 어머니가 담아준 쑥버무리 도시락을 도서관에 갈 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나들이 가실 때는 불안한 먹을거리보다 몸에 좋은 쑥과 우리쌀로 만든 쑥버무리는 어떨까 싶습니다. 추억의 쑥대머리 아니 쑥버무리를!!

 쑥버무리로 점심 도시락을
쑥버무리로 점심 도시락을 ⓒ 이장연

 상큼한 쑥향기 가득, 손으로 집어먹는 재미도 있다.
상큼한 쑥향기 가득, 손으로 집어먹는 재미도 있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쑥버무리#도시락#어머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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