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는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일부 -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2009년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부여문화원과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한 신동엽 40주기 추모문학제와 문학기행이 전국에서 모인 문인과 학생 80여 명이 함께 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 자리에는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 짚풀생활사 박물관장의 인사, 구중서, 조재도, 안현미, 도종환, 손세실리아 시인의 시낭송, 거문고 산조 합주와 대금연주, 강민지의 판소리 가수 김원중의 '껍데기는 가라' 열창으로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다.
신동엽 시인은 1930년 부여읍 동남리 204번지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념의 격동기에 청년기를 보냈지만 역사의식이 남달랐다. 그는 <상호부조론>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며 이념과 국가를 넘어선 아나키스트를 꿈꾸었으나 장편 서사시 <금강>으로 민족시인의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 2009년 4월은 모든 이념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향그러운 흙가슴으로 중립의 초례청에서 맞절하자는 꿈과 희망을 노래하던 신동엽 시인이 고인이 된지 40주기가 된 해이다.
신동엽 시인은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한 뒤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그는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장편서사시 <금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에서 역사와 현실의 허구성을 아름다운 서정성과 가슴 저리는 감동으로 풀어낸다. 그의 주옥같은 시는 그를 사람들 가슴에 민족 시인으로 영원히 빛나게 만들었다. 격변과 억압의 동시대를 살아온 민중들의 답답한 가슴에 그의 시편들이 말 그대로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스민 것이다.
그를 민족 시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던 젊은 세대에게까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나 '껍데기는 가라'는 시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송되어 자연스럽게 애송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민족시인, 국민시인이라는 그 이름이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떠난 지 마흔 해가 지나도록 우리는 그의 흔적과 체취를 한꺼번에 만날 장소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만일 시인의 숨결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이들이나 시인들이 언제든 찾아가 은밀하게, 혹은 치열하게 시인과 맞닥트릴 수 있는 장소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정체성이 모호해진 이들, 모든 껍데기를 벗고 향그러운 흙가슴으로 중립의 초례청에 서고 싶은 이들이 어쩌면 그곳에서 본질의 자아와 알몸으로 겸허하게 대면했을 것이다. 뒤늦게 공간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09년을 기해 신동엽문학관이 착공이 시작됐다. 굽힘없던 시인의 시심은 금강의 도도한 물줄기만큼 꿋꿋하게 후배 시인들과 그가 사랑하던 민중들의 가슴에 꿈틀거리며, 다시 용트림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지않아 중립의 초례청 앞에서 시인의 영혼과 향그러운 흙가슴으로 대면하는 그날이 온다면 '껍데기는 가라'가 아닌, 아래의 시로서 기쁨의 환호성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散文詩 1_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 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가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추모 40주기를 맞는 2009년 4월은 신동엽문학관 건립 원년이어서 행사마다 큰 의의를 지닌다.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행사로는 '신동엽흉상건립 모금운동'이 있으며 부여군 일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신동엽시인 40주기 기념행사는 4월1일부터 4월 30일까지다. 관심 있으면 시간, 공간적 형편에 따라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