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타고 종점에 내리면 인왕산 자락 아래에 옥인동 시민아파트가 있다. 시민아파트는 서울 곳곳에 있던 판자촌들을 정리하면서 철거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1969년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과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위해 동시 다발적으로 시민아파트를 착공했다. 얼마나 의욕이 앞섰던지 그해 5월 15일 하루에만 16군데에서 기공식이 열렸다. 시장과 부시장 등이 지구별로 차례대로 나누어 참석한 기공식 삽질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모두 끝났다고 한다.
시민아파트 기공 첫해동안 건립된 아파트는 모두 406동, 1만5840가구였다. 아파트는 모두 산 중턱에 지어졌다. 1호 시민아파트인 서대문의 금화아파트는 무려 해발 203m의 금화산 위에 지어졌다. 한 서울시 간부가 "공사하기도 힘들고 입주자들도 힘들 텐데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지어야 합니까"라고 묻자 김시장은 "이 바보들아.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니냐" 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시민아파트는 1970년 4월 8일 마포 와우아파트가 붕괴되는 대형참사를 끝으로 전면 백지화 되었다. 77년 말, 서울시 주택관리과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1971~77년 사이 모두 101동의 시민아파트가 철거되었고, 철거에 소요된 비용은 총 50억7백만원. 이는 437개동 건립비에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후 남아있던 시민아파트들은 노후화로 인해 철거되면서 점차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마포 용강동과 종로 옥인동의 시민아파트 두 곳이다. 이 두 아파트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획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계획에 따라 한강과 인왕산을 잇는 수변공원과 녹지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조만간 철거예정에 있다.
철거예정지가 된 옥인동 시민아파트는 현재 대부분의 입주민들이 이주를 마치고 30여 가구가 남아있는 상태다. 남아있는 가구는 언제 이주가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 시민아파트와 마포구 용강 시민아파트의 남아있는 세입자 52세대가 서울시를 상대로 주거 이전비 청구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2007년 4월에 개정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철거 세입자들은 임대주택 입주권 뿐 아니라 주거 이전비를 함께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개정된 법률을 곧바로 적용하지 않고, 1년 뒤인 2008년 4월에서야 조례를 개정해 이 같은 규정을 적용했다. 그 사이 1년 동안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은 세입자들에게는 주거 이전비를 주지 않았다.
옥인동 시민아파트 세입자 권리찾기 주민모임 김혜옥(46)대표는 "2007년 10월에 이사를 왔는데 9월 10일 이전에 온 세입자들에게만 보상을 해주고 본인에게는 60만원의 이사비용만 지불해준다고 하였다. 또 기존 세입자들에게도 주거 이전비와 입주권 중 하나만을 택하도록 하고, 이후 민형사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포기각서까지 쓰게 했다"며 서울시의 부당함을 말했다.
세입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설명회 및 소송준비 등 제반업무를 지원해주고 있는 진보신당 종로구/중구 당원협의회 소속 고미숙씨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이라는 것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려 없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고 호도하지만 사실은 개발업자의 이익만을 보장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방치되고 있다. 자신의 권리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약자를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상을 받은 세입자들은 이사를 가고 아직도 30여 가구가 옥인동 시민아파트에 살고 있다. 사람이 떠난 빈 자리를 메우려는 듯이 길고양이들이 여기 저기 돌아다닌다.
한가로이 아파트 현관 입구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예전에 사람이 살 때는 자동차가 길 양쪽에 주차하고 있어서 상당히 복잡했는데 이제는 거의 이사 가서 동네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할머니도 다음 주에 이사가기로 했는데 이곳은 인왕산 아래여서 공기도 좋고 아파트지만 이웃도 있어서 좋았는데 어디로 이사를 가면 이만한 곳이 있겠냐며 아쉬움을 남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