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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얼마 되지 않는 사회서비스는 공급기관 지원 방식으로 제공되었다. 이는 사회복지관으로 대표되는 복지시설을 정부가 지원하면, 그 지원을 가지고 복지시설에서 알아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그리고 다양한 행정지침을 통해 제공해야할 서비스의 내용과 서비스 대상자의 큰 틀을 제시하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은 정부가 제시한 틀 내에서 서비스의 내용과 서비스 이용자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용자의 목소리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정부와 서비스 공급기관은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복지 이용자는 철저하게 소외된다. 그리고 복지의 대상자로, 수혜자로 남을 뿐이다.

사회서비스가 생산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급기관 지원 방식은 이를 전도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서비스를 생산하는 정부와 공급기관의 입장이 사회서비스 생산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를 통해 사회복지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불신이 발생한다. 사회복지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복지 종사자를 위해 사회복지가 존재한다는 비아냥도 존재한다.

복지 체감도 하락과 감독업무의 과잉

현재 복지는 당사자를 소외시킬 뿐만이 아니라 복지 체감도도 무척 낮다. 일각에서는 높은 수준의 복지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복지 체감도가 낮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복지 예산의 대폭적인 증가를 통해 복지 혜택을 전국민이 받게 하면 복지의 고마움을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고, 이는 다시 복지 예산 증액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발생하는 조세저항을 뛰어넘기만 하면 이후로는 조세저항 없이도 복지를 확장할 수 있다는 꿈같은 전망이다.

그러나 이 꿈같은 전망을 믿고 그냥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처지다. 복지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북유럽에서도 복지 체감도 하락에 따른 조세저항이 발생했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최고의 경지를 자랑하는 스웨덴조차 이런 불신에 의해 복지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보수정권이 1990년대 후반에 집권하게 되었으며, 사회민주당도 더 이상 복지 개혁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힘입어 스웨덴에서도 바우처방식이 도입되었다.

하물며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척박한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불신이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복지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는 불신은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복지예산 횡령 내지는 전용 사건에 의해서 증폭되고 있다. 복지 예산은 충분히 증가했는데 중간에 도둑놈들이 많아서 복지 예산이 정확하기 집행되지 않고 줄줄 세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 복지 예산 증액을 요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감독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감독도 투입된 재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투입된 재정에 대한 정부의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업보고 양식이 강화되고, 영수증 첨부와 회계가 강화된다. 그러나 이런 서류 작업이 증가한다고 해서 복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회계의 투명성이 직접적으로 복지의 질을 향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행된 복지 사업 자체에 대한 감독은 쉽지 않다. 결국 사업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서 진행한 사업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첨부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감독을 위한 행정 작업 업무만 계속 증가한다.

복지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의 감독을 강화하지만, 감독을 강화할수록 복지를 향상시키는 실질적인 활동이 아니라 정부에 제출하기 위한 서류작업만 증가하게 된다. 복지 예산이 불필요한 곳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정 투명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지만, 오히려 행정작업에 드는 비용과 시간만을 증가시킨다. 재정투명성이란 측면에서는 바람직할 수 있으나 복지 이용자의 요구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복지에 대한 불신은 복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복지에 대한 감독의 강화는 직접적인 복지의 향상과는 무관한 행정 업무를 증대시킨다. 복지의 향상과는 무관한 행정 업무의 증대는 다시 복지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킨다. 이렇게 복지 불신의 악순환은 확대 재생산된다. 복지 불신의 악순환은 실질적인 복지의 악화를 초래한다.

복지 현장에서는 이용자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라 정부 지침에 의한 서류 작성이 가능한 서비스를 중심으로 복지가 실행된다. 더군다나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보다 정부에 제출할 서류 작성에 보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업도 발생하게 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종진(2007, 복지부바우처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 자활 실문자들의 의식조사 겨로가를 중심으로)의 지적대로 바우처 사업은 기존의 사회복지 기관이나 시설 등의 서비스 공급기관에 대한 불신 속에서 진행된 측면이 크다.

성과평가, 예산절감의 도구로 전락하다

복지 불신의 악순환은 복지의 질을 악화시킨다. 복지의 이유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삶의 질을 향상시켰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성과평가는 검토된다. 투입된 재정이 어디에 쓰였는지 아무리 감독해봤자 복지의 질이 향상되지 않으니, 복지의 질만 향상시키면 투입된 재정이 어디에 쓰이든 용인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서 성과평가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처럼 복지의 질만 향상시킬 수 있다면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성과평가는 복지에만 도입된 것이 아니며 정부 예산 전반에 제기된 문제였다. 기획예산처는 2003년 5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성과관리제도 시행 방안'을 발표한다.

2003년부터 도입된 성과관리제도는 2007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가재정법' 8조 '성과중심의 재정운영'에서 법제화되었다. '국가 재정법 시행령'에는 '비효율적인 사업추진으로 예산낭비의 소지가 있는 사업'이나 '향후 지속적 재정지출 급증이 예상되어 객관적 검증을 통해 지출효율화가 필요한 사업'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를 하게 요구한다.

'예산절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법은'2007년도 예산 편성지침'에서 전면적으로 실행되는데, '재정운영의 중점'으로 제시된 일곱 가지 항목 중 네 번째 항목의 내용이 바로 '재정사업에 대한 성과평가를 강화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 과정에 적극 반영'이다. 그리고 이 예산 편성 지침은 '2009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9년도 예산안 작성지침의 세 번째가 바로 '성과관리 지침'이다. 이 지침에서 기본원칙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세출 구조조정 및 예산절감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예산과의 연계 강화'와, '지속적인 재정지원 필요성이 없거나 유사·중복사업 등으로 평가받은 사업의 경우 추진여부를 재검토하여 예산 편성', 그리고 '사업별 평가결과를 재도 개선 등에 적극 활용'이다.

한국 사회복지에서 성과평가는 표면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복지의 질 향상'과 '예산절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 중 '예산절감'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9년도 '성과관리 지침'의 첫 번째 항목이 '세출 구조조정 및 예산절감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예산과의 연계 강화'인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사회복지의 목적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복지에 성과평가가 도입된다면 그 목적은 예산절감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무관하게 도입되는 복지에서의 성과평가는 복지의 질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성과를 평가할 지표를 합리적으로 마련하지 않은 채 성과 중심의 평가를 도입하게 되면,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사업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복지에서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용자를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게 되면 복지 혜택이 보다 필요한 사람은 배제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용자에 의한 복지 평가가 필요하다

복지에서 성과평가를 도입한다면 평가 기준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용자 중심의 평가를 하고자 할 때 서로 다른 이용자의 삶의 질을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삶의 질을 향상시킨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단일한 기준은 처음부터 만들 수 없다. 이용자마다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평가에 대한 합리적인 지표를 만든다 하더라도 각자의 삶의 질을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평가해준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이용자가 할 수밖에 없다. 이 평가에 잘 반응할 수 있는 도구는 아마도 시장일 것이다. 이용자의 평가를 정부가 취합, 정리해서 다시 각 기관에 대한 지도를 강화한다면 또 다시 수많은 행정 서류를 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평가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성과평가는 예산절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도입되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는 정부가 평가하는 것보다 이용자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평가의 기준이 다를 수 있으며 이용자의 평가가 아닌 경우에는 평가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 구매 방식은 이용자의 선택권을 확대하여 시장을 통해 이용자 스스로가 서비스를 평가하게 한다.

복지 불신의 악순환을 해결하고 시장을 이용하여 이용자가 직접 복지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바우처 방식을 도입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의 경우 바우처 방식의 도입을 통해 복지가 개혁되었다. 보스톤의 한 센터의 직원은 주정부와 계약서를 작성할 경우 1년에 50페이지를 작성해야하지만 계약방식 대신 바우처 방식을 사용할 경우에는 수급자 심사에 소요되는 5페이지만을 1년 동안 작성하면 된다고 한다.(정광호, 「바우처분석 :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행정논총』, 2007)

시장이 아닌 이용자가 복지를 통제해야 한다

이용자에 의한 복지 평가를 위해 시장에서의 평가가 도입되지만 시장에서의 평가는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 시장으로의 권력 이양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보여주듯이 파멸적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조절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을 조절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복지는 정부와 제공기관이 시혜자가 되어 이용자를 수혜자로 만들어 왔다. 이를 전환하여 이용자가 복지를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용자가 직접 복지를 결정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용자 대표나 이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사례관리에 참여해야 한다. 이용자에 의해 복지를 통제하기 위해 위원회에 이용자 대표가 참여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도입되는 방식이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그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보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벋어나지는 못한다. 복지 관료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에서 단지 한 걸음만 더 발전한 것일 뿐이다. 이용자 개개인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 개개인에 의해 복지가 통제되기 위해서는 복지를 통제할 이용자 조직이 존재하며, 이용자 조직에 실질적인 통제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용자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조직에 권한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용자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적인 조건에서는 이용자 조직이 건설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제공기관과 이용자간의 서비스 조정을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현재 복지현장에서 가장 크게 문제도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갈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서비스 조정을 정부가 일괄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이용자와 제공기관이 협의하여 서비스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용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된 방안일 것이다.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이며, 신고에 의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인정하듯이, 이용자 조직도 이용자의 권리이며 신고에 의해 이용자 조직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자본 간의 교섭이 의무사항이듯이 이용자 조직과 제공기관의 교섭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제공기관과 이용자간의 갈등을 당사자들이 조정하는 것을 통해 이용자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용자 조직에 대한 법적 권리의 보장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곽정숙의원실의 연구용역보고서인 [현행 바우처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의 일부를 기사화한 것입니다.
** 이기사는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복지개혁#성과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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