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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불법비자금과 경영권 승계, 정관계 로비 등에 대한 폭로는 큰 충격이었다. 이는 삼성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발표(작년 4월 17일), 총수인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4월 22일)으로 이어졌고 삼성 최고경영진들은 줄줄이 법정에 섰으며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 회장이 없는 지난 1년, 삼성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는 어떻게 될까. <오마이뉴스>는 이 회장 퇴진 1년의 삼성을 되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두 번째는 이 회장 퇴진을 바라보는 삼성맨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본다. <편집자주>
떠나는 이건희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사진은 지난해 4월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한 뒤 퇴장하는 이 전 회장의 모습.
떠나는 이건희 회장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사진은 지난해 4월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한 뒤 퇴장하는 이 전 회장의 모습. ⓒ 권우성

 

"아쉬운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뭐, 'A'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전 회장을 일컫는 말)도 물러나신 마당에…."

 

그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30년여 삼성에 몸 담았던 때문인지,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다. 올해초 대대적인 인사 개편으로 그는 조용히 일선에서 물러났다. 물론 외부에선 그의 퇴진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 기자와 만난 그는 크게 개의치 않은 듯했다.

 

'이른바 거물급 사장들이 대거 빠지면서, 삼성 입장에선 이 분들의 경험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나 말고도 경험 많은 사람이 많이 있다"면서도,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사람이 나서야 하지"라고 말했다.

 

'새 시대라는 말은 무얼 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물끄러미 기자를 쳐다봤다. '그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물론 대답은 듣지 못했다. 자신 스스로 말하지 않더라도, 기자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만 두신다고 했을때, 나도 처음엔 막막하더라"

 

지난해 매출만 따져도 200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재벌 삼성. 이른바 삼성공화국 논란부터 특검수사, 이건희 회장 퇴진과 대대적인 인적쇄신 등 지난 1년의 삼성은 말그대로 파란만장했다.

 

최근 10여일 동안 기자가 만난 많은 삼성맨들은 한사코 고개를 흔들었다. 사장급 인사부터 말단사원에 이르기까지,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일수록, 직위가 올라갈수록, 그들이 느끼는 삼성의 지난 1년은 사뭇 달랐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 권우성

올초 일선에서 물러난 한 삼성 고위인사는 "(이 전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신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순간 막막하더라"라고 회고하면서도, "지난 1년의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전자계열사 한 임원은 "솔직히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일부 사업 접고, 사람들 나가면서, 어렵게 기업 키웠는데 외부에서 너무 (삼성을) 흔들어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이 전 회장이) 그만둔다고 했을때 정치적 희생양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면서 "기업총수가 경영 실적이나 성과로, 시장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는것 아닌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반면 금융계열사의 한 부장급 인사는 "오너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직원들은 경영권 승계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면서 "'관리의 삼성'이라고, 직원들에게 각종 보안교육 등을 해왔지만, 위쪽에서 사고 터지는 것을 보면 허탈하기도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이번 기회에 경영권 승계 등 무엇이든 깨끗하게 정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시민사회 등에서 요구해 온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법적 실체가 없는 구조조정본부나 적은 지분으로 수십 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불투명한 오너 경영 형태를 투명하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 없는 삼성 생각할 수 없어

 

그럼에도 삼성맨들은 여전히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에 대한 안타까움부터, 일부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삼성 내외부에선 이 전 회장이 삼성 인사나 경영 등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월 삼성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인사혁신. '미스터 반도체'라고 불리는 황창규 사장 등 스타급 삼성 사장들이 대거 퇴진하고, 임원 등도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됐다.

 

삼성은 현재까지도, 인사위원회에서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을 정해서 이뤄졌다는 것이 공식 반응이다. 물론 이 전 회장의 인사개입에 대해선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재계 한 고위 인사는 "이 전 회장이 물러났다고 하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속에서 가만히 뒤에 앉아 있기만 하겠느냐"면서 "지난 1월 그렇게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이 전 회장의) 최종 사인 없이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삼성 한 고위임원도 당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A (이건희 회장을 지칭하는 말)가 설마 삼성인사를 신문 보고 알았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고위인사는 "이학수 전 실장이 당시에 퇴진시키려는 일부 사장급 인사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면서 "아직까지 이 회장 없는 삼성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 모습.
지난해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 모습. ⓒ 권우성

 

지난 2월 삼성전자의 이사회 구성도 마찬가지. 삼성전자는 사내이사 4명 가운데 2명을 올해 새로 선임하면서, 과거 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들을 등용했다. 또 사외이사 숫자도 기존 7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신임 이사 2명이 과거 구조조정본부 출신이거나, 이와 관련돼 있는 조직 출신이라는 점은 여전히 이 전 회장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쇄신 약속에서 이사회를 중심으로 자율경영을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삼성전자는) 독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돼야 할 사외이사마저 그 숫자를 줄여버렸다"고 지적했다.

 

"옛 삼성이 죽어야 새 삼성이 산다"

 

따라서 삼성이 법적으로 책임있는 그룹 사령탑 없이 그룹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현재 삼성은 외형적으로 사장단협의회와 산하 3개 위원회(브랜드관리위원회, 투자조정위원회, 인사위원회)를 통해 그룹을 지탱하고 있다. 작년 4월 그룹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해체에 따른 후속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조직은 법적 설립 근거나 책임이 없다. 이곳에서 여전히 그룹 사장단과 임원 인사가 이뤄지고, 계열사 투자와 그룹 차원의 홍보 등도 집행되고 있다. 옛 구조본의 인력이나 조직이 일부 줄어들었을 뿐,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룹 안에선 사장단 협의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업무지원실이 새로운 실세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업무지원실장은 옛 구조본 재무팀 출신인 김종중 부사장이 맡고 있다.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 유성호

이에 삼성그룹 브랜드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한마디로 억측"이라고 잘라말했다. 업무지원실은 말그대로 사장단협의회를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원 숫자도 6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건희 회장의 퇴진 등과 관련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과거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한 측면도 있다"면서 "그렇지만, 이미 작년에 국민에게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한 이 회장의 약속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삼성은 또 이 회장의 퇴진과 함께, 특검에서 밝힌 이 회장의 계열사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실명전환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또 이밖에 전략기획실 해체 등 경영쇄신 약속은 그대로 유지, 집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상조 교수는 "사장단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그룹경영체제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로의 삼성 경영권 승계의 준비과정일 뿐"이라며 "이같은 형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고, 물론 그만큼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삼성계열사의 한 사장급 인사는 "김 교수의 지적에 일부 동의할 수도 있다"면서 "현재 삼성을 둘러싼 내외부적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느정도 과거의 삼성과 단절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비효율적이고, 권위적이거나, 비민주적인 '옛' 삼성의 문화가 있다면 이를 과감히 버려야 새로운 삼성이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이 얼마나 삼성에서 실천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건희#삼성#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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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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