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증제는 '선의의 옷을 입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역기능에 대한 대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유보되어야 한다."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위원은 22일 경남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지적했다. 최근 경남도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독서인증제'를 시행하라고 했으며, 박 교육위원은 이 제도에 대한 사서 교사들의 우려 등을 종합해 이날 입장을 낸 것.
도교육청이 밝힌 '독서인증제'란 "필독도서와 권장도서를 읽은 후 평가 받아, 그 결과에 대해 인증받는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말한다. 도교육청은 "독서를 통하여 사고력을 기르고 메타 지식을 확보하게 하여 학문 간의 통섭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고, 양서를 필독도서·권장도서로 정하여 학생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함으로써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는 데 있다"고 목적을 설명했다.
도교육청은 초·중·고에 "필독·권장도서 독서인증을 모두 받은 학생에게 독서인증서 발급할 것"과 "필독도서는 교과독서활동을 통과한 학생에게 독후활동 자격 부여하고, 독후활동 한 다음 독서인증할 것", "권장도서는 독후활동을 한 학생에게 독서인증할 것" 등을 제시했다.
박종훈 교육위원 "사회적 합의까지 시행 유보해야"
이에 대해 박 교육위원은 "'독서인증제'가 지니는 예측 가능한 역기능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 "그 부작용과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이 사업의 추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시행을 유보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번 독서인증제가 지금까지의 독서 문화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것"이라며 "인근 지역에서 독서인증제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고, 이미 인근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독서인증제는 심각한 역기능이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서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된 그 이면에는 학생들을 경쟁적으로 다그친 결과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대리 시험, 문제 가르쳐주기 등이 그것이고, 학생들은 그만큼 책을 읽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거짓 독서를 시키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각급 학교에 공문이 내려간 뒤, 그는 "학교 현장이 심각하게 동요하고 있다"면서 "학교에서의 학생 독서 지도는 사서 교사가 전문가이고, 그들이 반발하고 있고, 현장에서 아이들의 독서 지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교사들이 동요하고 있으며, 애써 가꾸어오던 도서관이 독서 실적 관리실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맥을 놓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적 보고를 강요하면 학교는 경쟁적 성과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일제고사 성적 공개의 광풍을 맞아본 학교와 담당 교사는 이제 그 실적을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할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독서 환경 조성이 아니고 실적 쌓기가 일과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문가 그룹에서는 이 사업을 '선(善)한 옷을 입은 폭력'이라고 혹평하고 있다"며 "독서가 외형적 결과에 집착하면 책읽기의 본질은 왜곡되고, 독서 인증제는 또한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고 밝혔다.
또 그는 "경쟁적 기록 부풀리기가 예상되고, 대학 입시에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대로는 안된다"면서 "교육청은 이 사업이 지니는 순기능과 불가피성을 투명하게 펼쳐 놓고, 전문가 그룹은 이 사업이 지니는 문제점과 역기능을 내놓고서는 모두가 모여서 토론을 할 것"을 제안했다.
사서 교사들의 반응
박종훈 교육위원은 독서인정제와 관련해 사서교사들이 인터넷에 올린 댓글을 소개했으며, 다음은 그 댓글의 일부이다.
"알아보니깐 부산교육청에서 몇 년 전에 추진한 사업이더라고요. 결과는 뭐, 반대도 많았다고들 하더라고요."
"글쎄요. 아직 해보지 않아서 얼마만큼 잘 될지. 분명히 강제적으로 읽게 되는 애들도 있을 텐데 그 아이들에게 미치는 효과나 독서에 대한 반감은 없을는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군지역에서 초등학생들의 능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이때 일률적인 필독도서를 읽고 인증서를 발급하는 것은 아이들의 독서 능력과 지식을 키워가는 것이 아니라 있던 독서 흥미마저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시행을 해야 할 입장이네요, 억지로 하는 건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데."
"경남의 학력이 전국 꼴찌라는 오명으로 교육청에서 학력신장과 경남의 장점을 내세우기 위해 많은 시책을 세워 학교로 보내고 있는데 그 중에 독서인증제가 그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독서인증제를 통해 수능과 교내시험을 치듯 책읽기가 숙제처럼 되어버리고 꿈과 비전을 제시해주는 도서관이 아니라 숙제를 전전긍긍하며 바삐 해내야 하는 각박한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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