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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명의 군사가 바다 지키던 강화 용진진(龍津鎭)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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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삼국시대부터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고려시대 몽골항쟁의 근거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병인양요-신미양요의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랜 역사와 전통만큼 강화도에는 보물 제10호 강화 하점면 오층석탑을 비롯해 수십 점이 넘는 국가지정문화제와 지방지정문화재들이 있습니다.

 

관련해 "씽씽" 자전거를 타고 강화도의 숨은 보물과 문화재를 찾아 찾아나섭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틈틈이 이어온 '인천지역 문화재 찾아보기'의 강화도편입니다.

 

 순무골로 넘어가다가 용진진을 둘러봤다.
순무골로 넘어가다가 용진진을 둘러봤다. ⓒ 이장연

 

'강화도 보물찾기'의 첫번째로 소개해 드릴 곳은, 바로 용진진입니다. 강화군 선원면 연리에 자리한 용진진은 조선 효종 7년(1655)에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고자 축조된 진입니다.

 

 네모 반듯한 석축사이로 들어가보니
네모 반듯한 석축사이로 들어가보니 ⓒ 이장연
 둥근 성벽 안에 넓은 공간이 자리했다.
둥근 성벽 안에 넓은 공간이 자리했다. ⓒ 이장연
 비좁은 포좌에 들어가보니
비좁은 포좌에 들어가보니 ⓒ 이장연
 용진진 앞바다와 건너편 김포땅이 보인다.
용진진 앞바다와 건너편 김포땅이 보인다. ⓒ 이장연

 

용진진에는 병마 만호를 두고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도합 101명의 군사가 주둔하며 바다를 지켰습니다. 이 진에서는 가리산도대와 좌강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고, 포좌 4문, 총좌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석축 대부분이 없어진 상태고 홍예 2문만 남아 있던 것을 지난 1999년 문루를 복원했다 합니다.

 

 강화 용진진
강화 용진진 ⓒ 이장연
 석축 위를 따라 문루까지 갈 수 있다.
석축 위를 따라 문루까지 갈 수 있다. ⓒ 이장연
 복원한 문루
복원한 문루 ⓒ 이장연

 

용진진을 찾은 날은 메마른 봄바람을 뚫고 인천에서 김포를 거쳐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군청에서 잠시 쉬었다가, 강화풍물시장을 지나 가파른 산고개를 너머 선원사지를 둘러보고 해안도로를 따라 순무골로 넘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대리석으로 쌓은 석축과 뻥하고 뚫려있는 포좌를 통해 앞바다와 건너편 김포땅도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성벽 아래서는 봄나들이 나온 상춘객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었습니다. 용진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성벽 아래서 아낙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다.
성벽 아래서 아낙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용진진#자전거#강화도#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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