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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나라이고 최강대국이며 최고 선진국으로서 영원무궁토록 번창하리라고 믿고 자랐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역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 미국의 우월성과 힘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인들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를 전적으로 지배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사상 처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불황은 대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의 주립대학 체제는 미국의 교육정책 중에서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적은 액수의 등록금으로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립대학 덕분에 미국 안팎의 수많은 수재들이 대학교육을 받아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립대학 시스템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학자금 융자빚을 갚기 위해 눈높이을 낮추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취직한 대졸자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생활비와 공과금을 낼 돈도 모자라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Liz Lomax의 그림. (플리커닷컴 화면 캡처)
 학자금 융자빚을 갚기 위해 눈높이을 낮추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취직한 대졸자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생활비와 공과금을 낼 돈도 모자라서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Liz Lomax의 그림. (플리커닷컴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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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몰고 온 미국 대학의 위기

현재의 경제위기는 사실상 미국의 대학 교육 체제 자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의 대학교육은 똑똑한 학생들이 아니라 부잣집 자제들만을 위한 교육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도래한다면 미제국은 미래를 저당 잡히고 퇴락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미제국의 종말을 슬퍼하지는 않겠지만 미국 대학의 침식과 쇠퇴는 애통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대학 문제의 본질은 이번의 경제위기가 아닙니다. 미국 대학은 경쟁과 자유시장이라는 자본주의의 미신을 확산시킴으로써 시장체제 안에서 존속하도록 조금씩 체질을 바꾸어왔습니다. 따라서 불황기에 어느 정도라도 시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불황의 여파를 떠맡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학이 경제침체의 원인을 제공한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주식 투자를 하여 돈을 벌려고 하거나, 각종 투자로 큰돈을 벌어 일부를 대학에 떼어주는 거대 재단에 빌붙으려 하는 현실입니다.

거기에다가 미국인들은 세금을 많이 거두어 적극적으로 공공복지에 투자하는 것에 큰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이 공공복지 분야, 그 중에서도 교육 분야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피츠버그 대학은 정부지원금, 등록금, 보조금, 기탁금, 기부금 등 다양한 수입원으로 재정을 꾸려나가기 때문에 다른 학교들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미국 증시가 붕괴했을 때 기탁금 투자의 손실을 입었지만 다른 수입원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츠버그대학교
 피츠버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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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스탠퍼드 대학의 경우 현재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했습니다. 기탁금을 투자하여 얻는 수익이 큰 수입원인데 그 수익이 25% 내지 30% 까지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츠버그 대학 역시 불황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작년 말, 총장을 비롯한 고위행정직 교수들의 월급 동결 발표가 났는데, 이는 결국 대학의 모든 직원들의 월급이 동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는 제가 일하는 동양학 연구소의 올 예산 중 4천 달러가 삭감되었고, 두어 주 전에는 연구소 직원들의 월급총액의 약 5%에 달하는 1만6천 달러가 깎였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다행히 여기저기에서 보충해 실제로 월급을 깎인 사람은 없었지만 다른 연구소에서는 비서들을 해고하고 직원들에게 1~2개월씩 무급 휴직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내년에는 상황이 더 나빠져서 올해보다 더 삭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문리대학의 경우 올해 임용할 교수직 62개가 새로 생겼는데 그중 52개의 임용 절차가 동결되었으며 언제 절차를 재개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구성원 쥐어짜기...위기 타파는 자본주의식으로?

미국 대학에 연구비 등 재정지원을 하는 대규모 재단 104곳의 자산 감소율 중간 값(median)이 28%나 된다고 합니다. 내년에는 또 그만큼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입니다.  

지난달 애리조나 주립대학에 있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학교에서는 모든 교수들이 한 달에 하루씩 업무단축(furlough)을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조업단축을 하듯 교수들에게 강제로 하루씩 무급휴직을 시킨다는 뜻입니다. 한 달에 하루는 교수들이 아예 학교 캠퍼스에 발도 들여놓을 수 없고, 학교 이메일 사용도 금지되며, 학교에 전화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당 하루 분 월급을 깎음으로서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거기다 애리조나 주정부의 주립대학들에 대한 지원금은 무려 6억 달러나 삭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코넬 대학의 경우 주정부 지원금 감소, 대학 운영상 예산 불균형, 그리고 증여금 수익의 감소 (-27%)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10% 예산삭감을 해야 할 형편이라고 합니다. 아이다호 주립대학도 모든 직원과 교수들의 연봉을 10%나 줄였습니다.

플로리다 국제대학은 스포츠팀 관련 예산에서 백만 달러를 줄였습니다. (스포츠팀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요? 저야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식축구팀이 없어진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습니다만 많은 미국학생들에게는 자기네 학교에서 수학과가 없어지는 것보다 스포츠팀이 사라지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시라큐즈 대학에서는 등록금이 4.5% 인상되었고 총장 연봉은 10% 줄었으며(원래 연봉 55만 달러에서 49만 5천 달러로), 연봉 5만 불 이상인 모든 교수와 직원의 임금이 동결되었습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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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보다 '이익', 대학의 맥도날드화

앞으로 장기간 미국의 대학체제는 교육의 질이 계속 저하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체 교수진에서 정년보장을 받는 정규직 교수의 비율은 점점 더 줄고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비율이 늘어남으로써 대학의 "맥도날드화"는 점점 가속화할 것입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정년보장을 받았거나 앞으로 정년보장 심사를 받을 교수의 비율은 지난 10년간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국공립 대학의 경우 시간강사의 비율이 34%에서 44%로 늘어났습니다.

연구중심 공립대학에서는 정년보장 교수와 후보 교수를 합친 비율이 34%에서 29%로 떨어졌고 동시에 대학원생이 가르치는 강의는 37%에서 41%로 늘었습니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에게 점점 많은 강의를 맡기는 이유는 누구나 알다시피 간단합니다. 미국대학의 조교수 연봉은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 사이이며 일 년에 2강좌에서 5강좌 정도를 강의합니다. 강좌 당 겨우 1천 달러에서 3천 달러 정도로 값싸게 시간 강사를 고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비정규직의 지나친 확대는 결국 교육의 질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교수들은 수강인원을 꽉 채워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때문에 과제가 많다든가 학점이 짜다는 평판을 얻으면 곤란해집니다. 학생들에게 적당히 인기를 끌려면 어려운 과제를 내는 등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거나 강의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학교를 운영하는데 혈안이 된 미국 대학들은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교육이 아닌 이익 남기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뻔합니다. 제가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의 일입니다. 새로 학장을 영입했을 때 저도 임용위원회에 참여했었는데, 교수들은 대학교육에 대한 열정과 비전이 있는 후보를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했지만 고위 행정직원들은 사업가들의 비위를 맞추며 기부금을 얻어올 다른 후보를 결국 영입했습니다.

이제 대안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제가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구조와 기능면에서 미국 교육은 커다란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팔고 사는 상품으로, 그리고 학생을 교육 소비자로 간주하는, 따라서 교육자를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장사꾼으로 만들어놓은 미국 교육체제는 바뀌어야만 합니다.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현 체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는 많은 면에서 점점 미국의 체제를 닮아가고 있는 한국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도 졸업 시 부채 2만 달러 ... 실패한 교육모델

핀란드 등 유럽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와 기술학교 중 하나를 선택하여 진학합니다. 대학교에서는 이론 중심의 교육을 하며 연구를 중시합니다. 기술학교에서는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며 독자적인 연구는 거의 하지 않지만 산업체와 연결된 프로젝트는 많이 진행합니다. 어디를 가든 수업료는 완전히 무료입니다. 국가에서 보증을 서서 학생에게 융자금 대출도 해줍니다.

학자금 융자빚 때문에 오랜 기간 고생하는 미국인들을 풍자한 만화. 
"불쌍한 스탠리 영감 같으니. 학자금 융자빚을 3개월분만 남기고 다 갚았는데..."
 학자금 융자빚 때문에 오랜 기간 고생하는 미국인들을 풍자한 만화. "불쌍한 스탠리 영감 같으니. 학자금 융자빚을 3개월분만 남기고 다 갚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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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도 학비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무료입니다. 학생들은 정부에서 재정지원금을 받습니다. 모든 학생은 12학기까지 융자금과 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는 대학입학시험을 보아서 성적순으로 입학하지만 일단 입학하고 나면 돈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의 경제수준이 아닌 학업능력이 대학교육 수혜여부를 결정하는 진정한 실력주의 제도인 것입니다.

한국의 서울대학교도 원래 뛰어난 인재들을 돈 걱정 없이 교육시킬 목적으로 만들었고, 수 십 년 동안 값싼 등록금으로 수많은 전국의 인재들을 교육했습니다. 저는 과거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국립대학을 양성한 것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아주 좋은 투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립대 등록금도 많이 올랐고 가난하지만 똑똑한 젊은이들이 아닌 값비싼 사교육시장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너무 많아졌지만 말입니다.

현재 미국의 대학 진학률이 (2006년 통계로 45%) 등록금이 없거나 저렴한 유럽에 비해 높은 편인 것은 기술학교 등 실질적인 대안이 없어 학력 인플레이션이 많이 일어났고 전반적으로 대학졸업자가 평균 임금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4년제 대학 학생 3명 중 2명(2001년~2007년 평균 60%)이 학자금 융자를 받았고 졸업 시 평균 부채가 2만2700 달러에 달한다(2007년 통계)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큰 빚을 지고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지도층은 아직도 대학교육의 국공립화에 큰 저항감을 보이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경쟁만이 가장 훌륭하고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교육제도도 사람이 만든 제도이니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미국도 유럽이나 과거의 한국과 같은 교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공약을 실천하라고 요구하며 삭발을 하다가 끌려간 한국 학생들을 응원하면서 한국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에게 제발 미국대학 모델은 따라가지 말아달라고 부탁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한 웹페이지들

http://chronicle.com/weekly/v55/i32/32a00102.htmhttp://chronicle.com/review/brainstorm/index.php?id=1298
http://www.aft.org/higher_ed/conferences/2009presentations/Trends_3.pdf
http://philanthropy.com/free/articles/v21/i12/12000601.htm
http://www.aft.org/higher_ed/conferences/2009presentations/Trends_3.pdf
http://www.bc.edu/bc_org/avp/soe/cihe/newsletter/News21/text4.html
http://highereddata.aft.org.
http://www.insidehighered.com/news/2008/03/12/jobs
http://www.prb.org/Articles/2008/collegeaccess.aspx
www.pirg.org/highered/BurdenofBorrowing.pdf
http://www.diverseeducation.com/artman/publish/article_9601.shtml



태그:#미국 대학, #경제위기, #맥도널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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