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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

- 글 : 문영미

- 그림 : 조미자

- 펴낸곳 : 우리교육 (2007.5.18.)

- 책값 : 9500원

 

 

 (1) 날씨와 삶과 사람

 

 겉그림
겉그림 ⓒ 우리교육

 봄이 왔구나 하면서 활짝 웃을 수 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쌀쌀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입니다. 오월이 코앞인데 어쩜 이런 날씨일 수 있는가 싶어 걱정인 한편, 지난해처럼 찌든 더위가 일찌감치 찾아들지 않아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해가 제대로 들지 않으면서 뚝 떨어지는 날씨는 농사짓는 사람을 고단하게 합니다. 시름에 잠기도록 합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이야 옷깃을 여미면 된다지만, 흙 품에 안겨 뿌리를 내릴 씨앗은 어찌하겠습니까. 이 씨앗을 바라볼 농사꾼 마음은 어찌할 테고요.

 

 그렇지만 이런 날씨가 된다 할지라도 이 나라 농사꾼 살림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습니다. 나라를 뒤숭숭하게 한다는 정치 이야기가 가득 넘쳐서 그러할는지 모릅니다만, 생각해 보면, 어느 한때이고 '나라 뒤숭숭하게 하는 정치 이야기'가 잦아든 적이 있었는지요. 어느 한 번 '나라 뒤숭숭하게 하는 정치 이야기'를 그친 적이 있었는지요.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을 생각하고,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헤아리며, 우리가 날마다 쬐어야 하는 햇볕을 돌아보는 지식인은 참으로 있기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아이들 앞에서 우리 날씨를 얼마나 속속들이 파헤치며 들려주거나 알려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교 교사가 아니더라도 신문ㆍ방송ㆍ인터넷에 글과 그림을 띄우는 이들은 우리 삶터를 돌아보도록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띄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작은 꽃들이 폭죽을 터뜨리는 것 같아. 냉이꽃, 꽃다지, 제비꽃, 돌나물, 민들레, 그리고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파란색 잔잔한 꽃들이 꽃망울을 펑펑 터뜨려. 어떤 사람들은 잡초라고 뽑아 버리지만, 난 여러 가지 나물과 꽃이 있는 우리 마당이 훨씬 좋더라 ..  (11쪽)

 

 날이 찌뿌둥하면 골목마실을 하더라도 마음에 확 드는 사진을 얻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사진을 담으면 되건만, 날마다 흐린 날이 이어지니, 사진에는 온통 흐린 기운이 서리고야 맙니다. 어쩌다 하루 잠깐 날이 개어 사진을 신나게 찍어 놓으면 흐뭇하고 기쁘기는 한데, 찍은 사진을 돌아보는 동안 '나는 내 삶터를 있는 그대로 담지 않았어!'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늘 맑은 날씨였기 때문에 맑은 모습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바로 어느 한날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터는 허구헌 날 찌뿌리고 찌들고 찌그러져 있는데, 어느 한때 아주 살짝 활짝 폈다고 하여 이 핀 잠깐 모습이 '우리 온 모습'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곰곰이 생각하면, 아주 잠깐 활짝 갠 그 하루도 '우리 온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록 며칠 이어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김없는 우리 삶이요 우리 삶자락이요 우리 삶결입니다. 웃을 날이 드물어 웃는 얼굴일 적이 몇 번 없다 하여도 '웃는 얼굴'도 내 모습 가운데 하나이듯, 한 해 삼백예순닷새 가운데 하늘이 파랗게 열린 날이 고작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나날도 우리 삶터 모습 가운데 하나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속그림
속그림 ⓒ 우리교육

.. 배추는 무럭무럭 잘 자랐어. 그런데 며칠 뒤 속을 들여다보니 배추벌레가 잔뜩 붙어 있는 거지 뭐니? 벌레들이 많이 뜯어먹어서 배춧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어. 배추에는 원래 벌레가 잘 생겨서 농약을 많이 친대. 우린 절대로 해로운 농약은 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장갑을 끼고 벌레를 잡았어. 좀 징그럽긴 했어. 그리고 비장의 벌레 퇴치 마법 주스를 마구 뿌렸지 ..  (34쪽)

 

 머잖아 아파트숲으로 바뀔 골목길을 거닐면서, 구멍가게 앞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골목동네에 깃든 살림집으로 돌아오면서, 제가 붙잡고 있는 이곳 이 터전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되뇌어 봅니다. 남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하다고 여기지만 제 눈에는 싱그럽거나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이 골목 터전을 담는 사진이란 참으로 무엇인가를 곱씹어 봅니다.

 

 보금자리를 잃고 떠나가야 하는 휑뎅그렁한 골목집 허물린 곳에서 시멘트조각과 돌쪼가리를 골라내어 텃밭으로 일구는 이 골목동네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흔히들 쓰레기라고 여기는 낡은 그릇이나 스티로폼 상자에다가 흙을 담아 마련한 꽃그릇하고 꽃집에서 파는 꽃그릇하고 얼마나 다른가를 맞대어 봅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 하여도 끝끝내 농사일을 놓지 않는 농사꾼들을 생각합니다. 큰돈 벌이가 아니라 하여도 그예 일손을 놓지 않는 도시 변두리 길바닥장사를 생각합니다. 일흔이나 여든이어도 호미와 쟁기와 낫과 삽을 드는 농사꾼을 생각하고, 예순만 되어도 일터에서 쫓겨나 먼산바라기가 되고 마는 도시 늙은이를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무엇이고, 사람 삶이란 무엇이며, 사람 일이란 무엇일까요.

 

.. 올해 우리가 키운 것들로 크리스마스 나무를 꾸몄어. 조롱박과 꽈리도 달고, 산에서 주워 온 솔방울에는 은가루를 뿌려서 매달았어. 어때? 멋지지 않니? 팝콘도 훌륭한 장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니? 팝콘을 꿴 줄을 나무에 감아 주려면 아주 길게 만들어야 해. 온 가족이 모여 중간중간에 팝콘을 집어먹으면서 꿰니까, 하나도 지루하지 않더라 ..  (50쪽)

 

 속그림
속그림 ⓒ 우리교육

 날이 추우면 보일러 단추를 누르면 되는가요. 기름이 떨어졌으면 채우면 되는가요. 도시가스 나오는 집에 살면 난방비 걱정에서 한시름 놓이는가요.

 

 입을 옷이 없어서 옷가게에 찾아가는가요. 집에서는 옷입기가 번거로워 홀가분한 차림새로 방바닥에 불을 넣는가요. 일터에서 여름에 긴소매로 지내고 겨울에 반소매로 지내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한겨울에도 꼭 딸기를 먹어야 합니까. 봄에도 꼭 능금을 먹어야 합니까. 여름에도 반드시 귤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 스스로 감나무 한 그루 키우지 않으면서 감을 그렇게 많이 사다 먹어도 괜찮습니까.

 

 날씨는 왜 이처럼 뒤틀렸을까요. 정치는 왜 이같이 어수선할까요. 교육은 왜 이다지도 빡빡하고 차가울까요. 문화는 왜 이 모양으로 엉성할까요. 사회는 왜 이와 같이 갑갑할까요. 사람들은 왜 이토록 웃지를 않을 뿐더러 울지도 않을까요.

 

 

 (2) 그림이야기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를 읽을 사람은 누구?

 

 마당을 옹기종기 가꾸는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아기자기하게 담은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를 읽습니다. 이 그림이야기를 좋아할 만한 분은 틀림없이 제법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그림이야기에 나오듯 마당 있는 집을 꿈꾸는 분은 퍽 많을 테며, 일찌감치 마당 딸린 집을 마련해 알뜰살뜰 가꾸는 분도 꽤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야기를 펼치면서 시큰둥하다고 느낄 분 또한 퍽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그림이야기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분 또한 쏠쏠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이야기가 없어도 진작부터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거나 일구어 온 분 또한 그럭저럭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속그림
속그림 ⓒ 우리교육

.. 낮에 와서 떠드는 여름 철새는 꾀꼬리야. 온몸이 노란색이라 금방 눈에 띄고 주황색 부리가 좀 큰 편이야. 꾀꼬리는 예쁘게 생겼지만 울음소리는 정말 이상해. "우가야 우가야 케엑 히요 호호 호이호." 이렇게 시끄러운 새를 왜 꾀꼬리라고 이름지었을까? 소쩍새는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노래를 잘하고, 꾀꼬리는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음치야. 하하. 새는 금방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힘들어. 나는 새가 가까이 왔을 때 재빨리 그린 뒤에 도감에서 찾아 봐. 새소리도 적어 보려고 했는데, 힘드네! ..  (30쪽)

 

 아파트에는 마당이 없습니다. 앞뜰도 없고 뒤뜰도 없습니다. 요사이 아파트는 집안에 장독 놓을 자리를 마련해 준다지만, 땅을 파고 김장독 묻을 흙이란 없습니다. 드럼세탁기가 옷을 보송보송하게 말려 주기까지 한다지만, 햇볕을 받으며 빨래를 널고 다시 햇볕을 받으며 빨래를 걷는 따스함을 선사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파트 방마다 꽃그릇 가득 채울 수 있어도, 비와 바람과 햇볕을 먹으며 꽃과 풀과 나무가 자라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꽃나무가 다 먹지 못하는 물을 흙속 깊이 흘려보낼 수조차 없습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 나라는 오로지 아파트로만 집터를 바꾸어 놓고 있으니,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는 거짓말 같은 책입니다. 말이 될 수 없는 책입니다. 나라흐름을 거스르는(?) 책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과 엇나가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어른도 아이한테 '너는 골목집에서 살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거든요. 마당이 있으려면 골목이 있어야 하고, 골목이 있으려면 돈있는 사람뿐 아니라 돈없는 사람 또한 작은 방 한 칸 얻어 지낼 골목집이 오순도순 모여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남을 밟고 올라서면서 나 하나 잘되면 된다고 가르치고 밀어붙이는 제도권 입시교육 틀거리에서는, 골목길은 뜯어없앨 곳이요 아파트는 올려세울 곳입니다.

 

..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 하나를 뚝 꺾어서 마루에 매달아 놓았어. 까치와 직박구리가 하도 이 감 저 감 쪼아대서 아직 덜 익었지만 오늘 따기로 한 거야. 덜 익은 감도 집에 두면 달콤하게 잘 익더라고 ..  (41쪽)

 

 골목집 사람들은 제 집자리를 빼앗기고 헐리고 쫓겨나더라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그날까지, 돌을 고르고 흙을 추슬러 텃밭을 일굽니다.
골목집 사람들은 제 집자리를 빼앗기고 헐리고 쫓겨나더라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그날까지, 돌을 고르고 흙을 추슬러 텃밭을 일굽니다. ⓒ 최종규

 

 그림이야기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는, 마당에서 텃밭과 꽃밭 잘 가꾸는 이야기만 들려줄 수 있어도 흐뭇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또, 이만한 열매로도 얼마든지 오늘날 어른과 아이한테 즐거움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마당은 어떤 사람이 가꿀 수 있는 마당일는지를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마당 가꾸기란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 어느 곳에서 이처럼 마당 가꾸기를 할 수 있는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덧붙여, 꾀꼬리 노래소리는 이상하고 소쩍새 노래소리는 좋다고 하는 이야기 같은 대목에서는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글쓴이 스스로 "새는 금방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힘들어" 하고 말하는 데다가 "새소리도 적어 보려고 했는데, 힘드네!" 하고 말하면서, 어떻게 꾀꼬리는 소리가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소쩍새 소리는 어떻게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두 새는 왜 그와 같은 소리를 내는지 모르면서, 또한 오래도록 지켜보고 이웃으로 지내는 가운데 가슴으로 받아안지 못했으면서, 이처럼 섣불리 글로 못박아 놓아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까치밥'으로 삼아 감을 남겨 놓는다는 이야기야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까치와 직박구리가 하도 이 감 저 감 쪼아대서 아직 덜 익었지만 오늘 따기로 한 거야" 같은 이야기는 참말로 무엇일까요? 아직 익지도 않은 감을 '사람 욕심'에 따라 이렇게 거둔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못되고 좁은 생각인가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준다니, 이런 이야기를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보도록 한다니, 글쓴이나 그린이나 펴낸이나 우리 삶터와 삶과 삶자락을 너무 허술하고 가볍게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허물려 빈 집자리 시멘트와 돌을 골라내고서 꽃밭을 가꿉니다. 바로 내일 헐린다 하여도 이렇게 꽃밭 가꾸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허물려 빈 집자리 시멘트와 돌을 골라내고서 꽃밭을 가꿉니다. 바로 내일 헐린다 하여도 이렇게 꽃밭 가꾸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 최종규

 

 다만,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가 '시골 삶을 꿈꾸지만 시골에 가지 못하는 사람'한테 추억을 선사하려는 책이라면, 시골 삶까지 이루지 못할 듯하지만 도시에서도 조그맣게 텃밭을 일구려는 사람한테 베풀려는 책이라면, 이런저런 아쉬움은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허허 웃으며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는 누가 보라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묶어낸 책이라 해야 할까요. 이 책을 펼쳐 읽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얻고 나누면서 내 삶을 알뜰히 붙잡으면 좋을까요.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달디단 샘물과 같은 그림이야기로 엮은 책이기에 애틋하고 소담스럽다고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렇다 하여도 이런 어설픈 다가가기라면 되레 '흙'이 뭐고 '물'이 뭐고 '햇볕'이 무엇인지를, 이리하여 '목숨'이란 무엇인지를 조금도 들려주지 못하도록 가로막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우리 마당으로 놀러 와 - 즐거운 자연 이야기

문영미 지음, 조미자 그림, 우리교육(2007)


#그림책#그림이야기#마당#텃밭#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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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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