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왜 하냐?"
"대학은 왜 가니?"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어린 시절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 약간은 퉁명스럽게)
그랬다.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라 믿었다.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애썼고,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려고 매달렸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길을 살필 능력도 없었고, 다른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공부나 해라, 대학은 나와야지' 하는 소리만 들렸다.
시험 점수 몇 점 더 오르고, 전교 석차가 몇 등 더 오르면 그것으로 기뻤고, 내 미래는 밝아오는 듯했다. 그것으로, 딱(!) 그것만으로 족했던 삶을 살았다. 물론 내가 바란 장래도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나랏일(?)을 보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었다. 대학 진학도 거기에 맞추어졌다.
리처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에 등장하는 여느 갈매기들의 삶을 나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더 많은 먹이와 더 큰 권력,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추구했던 것들을 나도 신주단지 모시듯 살아왔다. 단 한 번의 의구심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꿈이 없었던 나의 삶은 겉보기에만 순탄해 보였을 뿐이었다. 대학 진학 이후 비로소 내 인생의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학 공부는 왜 하니?"
"어떤 삶을 살아갈 거니?"
이런 질문에 내가 어린 시절에 하곤 했던 답을 들려주면, 그들은 이렇게 다시 말했다.
"남들 이야기는 하지 마라. 남과 똑같게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잖아? 세상이 온통 똑같은 인간들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해봐, 으으 끔직한 일이지. 그러니 너만의 진정한 이유를 말해봐?"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만의 이유? 다른 사람들처럼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질문은 낯설었다. '뭐, 인생 별거 있나. 그냥, 남들처럼 살다 가면 되는 거지'라는 투철한 인생관(? 무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나에게 '나만의 이유?'는 있을 수가 없었다. 지독히 무식한 놈, 딱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무식을 들춰냈던 그 목소리, 아마도 <갈매기의 꿈> 주인공으로 유명한 조나단 시걸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루하루의 먹이와 무리 속의 하찮은 권력 다툼을 멀리하고, 자유롭게 날아올라 더 나은 삶의 의미를 갈구했던 그 조나단이 내 곁에 와서 속삭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니가 갈구하는 가치는 뭐니? 니 삶의 의미는 뭐지? 생존과 권력을 다투는 일로 너의 인생을 낭비할 생각이니?'라고 말이다.
물론 그때의 조나단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위대한 갈매기의 아들'로 추앙받던 그 조나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책 속에서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나단의 완성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삶, 즉 자신만의 가치 있는 삶을 추구했던 그 조나단일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조차 잊게 만든 조나단의 그 열정이야말로 진정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깨우친(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자의 가르침보다 더 신선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나는 무식함이 드러난 이후 나만의 의미 있는 가치를 찾기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그 구체적인 모습은 흐릿할 뿐이다. 아니 영원히 찾아 헤매기만 할 뿐, 끝내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불안감이 늘 나와 함께 했다. 하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만의 의미 있는 가치를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간절한 믿음!). 목적지에 얽매이지 않으며, 성취에 애달지 않는, 여행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삶. 길 떠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길 위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라 믿는다.
물론 그런 삶 속에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조나단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영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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