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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 0'이 아니라, '6 대 0' 참패였다. 한나라당은 29일 오전까지만 해도 2석(경주, 부평을)을 자신했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 여론조사 결과도 빗나갔다. 결국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선거의 속설은 이번에도 현실화되었다. 이는 '여론조사의 무덤'이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이번 4·29 재보선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치러진 첫 국회의원 재선거(5곳)와 내년 지방선거의 탐색전 성격을 띤 수도권 기초단체장 보궐선거(시흥시)가 포함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니 중간평가'의 의미를 가졌다.

집권여당은 경제위기를 감안해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인천 부평을)과 울산에 '경제 살리기' 구호에 어울릴 법한 '맞춤형 공천'을 했다. 이른바 '경제 전문가'(이재훈 전 지식경제부차관, 박대동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후보를 내세웠다. 그러나 민심은 이들을 외면했다. 여론조사기관들도 이런 흐름을 정확히 읽지 못했다.

이해 당사자인 한나라당은 그렇다 치고, 제3자인 여론조사 기관은 왜 이런 흐름을 놓친 것일까? 4·29 재보선을 앞두고 4회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한 '더피플'(장강직 대표)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막판까지 혼전 양상을 보인 3곳(인천 부평을, 전주 완산갑, 경주)의 여론조사 변화추이를 짚어보았다.

[부평을] 노조 조직표와 야당 성향 '숨은 표'가 승부 갈랐다

인천 부평을 출마 후보의 지지율 추이변화
 인천 부평을 출마 후보의 지지율 추이변화
ⓒ 더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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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직 대표는 4회의 여론조사 결과와 당선 예측모델을 토대로 29일 오전에 당선자 예측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장 대표는 이날 오전 위험 부담 때문에 당선자 예측 결과 발표를 포기했다. 특히 인천 부평을이 문제였다.

홍영표 민주당 후보는 지난해 총선에서 떨어진 직후부터 표밭갈이를 했다. 지역에서 지명도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이에 비해, 전략공천으로 긴급 투입된 이재훈 한나라당 후보는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7%p 이상 높았다.

이런 후보 인지도-정당 지지도의 엇박자가 교차한 탓인지, 1차 여론조사(13일)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된 3차 여론조사(22일)까지 두 후보 간의 단순 지지도 격차는 1.7~4%p에 불과했다. 오차범위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조사결과를 근거로 장 대표는 홍영표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장 대표는 "일단 수치상으로 이재훈 후보가 홍 후보를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황에서 DJ(김대중)의 민주당 지지 발언이 호남표 결집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근거를 밝혔다.

그런데 마지막 5차 조사(27일)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 물론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추세선이 처음으로 교차해 두 후보의 순위가 역전되었다. 이재훈 후보는 34.2%, 홍영표 후보는 34%로 불과 0.2%p 차이였다. 문제는 이 0.2%p 격차를 가지고 과연 당선자를 예측할 수 있느냐였다.

더피플은 29일 당선자 예측조사 결과 발표를 포기했다. 장 대표는 그 대신에 '사견'임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한나라당의 승리를 점쳤다. 재보선과 같은 조직선거에서 영향이 큰 7% 이상 앞선 정당 지지도와 추세선의 변화가 근거였다.

"부평을은 정말 예측 불허다. (여론조사에 안 잡히는) 노조 조직표와 야당 성향의 숨은 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재훈 후보가 막판에 처음으로 역전한 추세를 감안하면 구도상으로는 한나라당 쪽에 유리하다."

그러나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홍 후보는 3만667표(49.5%)를 얻어 2만4199표(39.1%)를 얻은 이 후보를 10%p 이상 따돌렸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야당 지지 성향의 숨은 표가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는 얘기다.

[완산갑] DJ의 지지 발언보다 '친노 386' 낙인효과가 더 강했다?

전주 완산갑 출마 후보의 지지율 추이변화
 전주 완산갑 출마 후보의 지지율 추이변화
ⓒ 더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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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갑 재선거는 이광철 민주당 후보와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신건 후보의 양자 대결구도로 출발했다. 전주는 지역구가 달라도 어차피 한 선거구나 마찬가지다. 신 후보는 초반에 고전했지만 정동영 전 장관의 지원에 힘입어 3차 조사 때까지만 해도 승리가 예상되었다.

3차 조사결과는 이광철 33.6% 대 신건 31.4%. 오차범위 내지만 2.2%p 차이로 이 후보가 앞섰다. 문제는 추세였다. 신 후보는 가파른 상승세였고 '인기 없는 친노 386'으로 낙인 찍힌 이 후보는 하락세였다. 이런 추세라면 추세선의 교차 역전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김심(金心), 즉 김대중 변수가 불거졌다. 주말에 14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의 민주당 지지 발언이 한명숙 전 총리와 박지원 의원을 통해서 전해진 것이다. 김심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에 실시된 4차 조사결과는 이광철 34.4% 대 신건 32.9%. 여전히 이 후보가 1.5%p 앞섰지만 오차범위 안의 불안한 리드였다. 게다가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에서는 신 후보(37.8%)가 이 후보(34.7%)를 3.1%p 앞섰다.

결국 지지율 추세선의 교차 역전이 멈춰버린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 더피플의 장 대표는 "DJ의 민주당 지지 발언 이후 정동영 지지율이 5% 정도 빠졌고 그 여파로 정동영이 지원하는 신건 후보도 정체다"면서 "원래의 추세라면 역전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수치상으로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걸린다"고 했다. 신 후보 당선 예측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반면에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29일 신 후보가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남성 장년층에서 지지율이 높은 점을 들어 신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 "단순 지지도로는 이 후보가 앞서지만 적극 투표층에서는 신 후보가 앞서고, 최종적으로 우리의 예측모델을 가지고 돌리면 신건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는 거였다.

그러나 아무도 이렇게 크게 이길 줄은 몰랐다. 막상 뚜껑을 여니 신 후보가 50.4%를 얻어 32.3%를 얻는 데 그친 이 후보를 무려 18%p나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DJ의 민주당 지지 발언보다 '친노 386 낙인효과'가 더 강하게 작용했거나, 지지 명분이 없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숨은 표가 예상보다 많았다는 얘기다.

[경주] 18대 총선 이어 이번 선거도 '여론조사의 무덤'

경주 출마 후보의 지지율 추이변화
 경주 출마 후보의 지지율 추이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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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여러 환담 끝에 기자들이 재보선 전망을 물었다. 홍 원내대표는 경주에서의 1승만큼은 자신했다.

"(5곳 중에서) 경주는 이긴다고 본다. 현장에 가보니까 '미워도 다시 한번'이더라. 밑바닥이 민심이 그렇더라. 지난번과는 다를 거다.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60%다. (투표장에는) 정종복보다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홍 원내대표가 말한 '지난번 선거'는 이른바 '친박연대' 소속의 김일윤 후보가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를 누른 18대 총선을 가리킨다. 당시 모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정종복 후보는 김일윤 후보를 14.6%p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개표 결과, 이같은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출구조사에서 뒤진 것으로 조사된 김 후보가 오히려 정 후보를 5.2%p 차로 이기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의 장담과 달리, 이번에도 경주 표심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여론조사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일부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는 이번에 재도전한 정종복 후보가 '친박 무소속'을 표방한 정수성 후보를 최대 15%p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더피플의 4차조사(27일)에서도 7~8%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4차 조사의 지지율 변화추세를 보면, 1차 조사(13일) 때 8%p 가량 앞섰던 정수성 후보가 2차 조사(17일) 이후부터 정종복 후보한테 역전되더니 3, 4차 조사로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졌다. 문제는 주말 박근혜 전 대표의 대구 방문을 계기로 '박풍'(박근혜 바람)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였다.

장 대표는 4차 조사가 진행 중인 지난 27일 "전주에서 김대중 변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면 경주에서도 박근혜 변수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추세가 다시 정수성 쪽으로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여론조사 상으로 박풍은 미풍이었다. 장 대표는 29일 오전 "경주도 (부평을처럼) 숨은 표가 있지만 조사상으로 한나라당이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조사수치를 믿는 수밖에 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경주 민심은 박근혜의 '침묵 모드'만큼이나 그 깊은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먼저 투표율부터가 수상(?)했다. 평일인데도 경주 지역 최종 투표율(53.8%)은 '이상과열'이라고 할 만큼 높았다. 지난 5년간 국회의원 재보선 최고 기록이고, 18대 총선(51.9%)보다 더 높았다. 투표함을 여니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수성(45.9%)이 정종복(36.5%)을 9.4%p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린 것이다. 

결국 이번 재선거의 승부처 3곳은 모두 단순 지지율이 아니라 적극적 지지자의 투표율이 승패를 갈랐다. 대중은 반대하러 투표장에 간다는 선거의 속설도 재확인되었다. 그들은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투표장에 갔다. 특히 경주가 그랬다. 집권여당이 지난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후보를 다시 공천한 경주는 그래서 '한나라당의 무덤'이자 '여론조사의 무덤'이었다.


태그:#4.29재보선, #여론조사의 무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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