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부실징후 기업들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특히 오는 5월부터 금융권에 빚이 많은 45개 그룹에 대해 계열사 매각 등 강도 높은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 6월 말까지 1422개 대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부실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구조조정도 이어질 전망이다. 사실상 전 업종에 걸쳐, 웬만한 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30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엎드린 감독 당국과 은행들
정부가 이날 내놓은 기업구조조정 추진 방향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채권 금융기관이나, 해당 기업들에 대한 요구 수준의 강도는 전보다 훨씬 높았다.
그동안 금융감독 당국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채권은행을 통한 상시적이고,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날 오전에 열린 대책회의 자리에선, 이 같은 언급은 사라졌다.
대신,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거나 "밀착 점검하겠다"는 감독 당국의 보고와 다짐이 이어졌다. 물론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이후 달라진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직접 찾아와, "최근 경제지표가 다소 개선되고, 외국 금융기관들이 좀 긍정평가를 한다고 해서, 조금만 버티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옥석을 가려서, 구조조정을 할 기업들이 빨리 구조조정이 돼야 건실한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소극적이고, 단기적인 판단을 하지 말고 정부의 구조조정 책임자들이 몸을 던진다는 희생정신과 역사적 인식을 갖고, 오직 결과로 평가받겠다는 자세로 임해달라"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그는 이어 채권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그동안 금융기관이 저지른 일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소극적이거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율'외치던 감독 당국, '엄중한 책임' 등 강경 모드로 선회
이에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후에 주요 시중은행장을 만난 자리에서 달라진 정부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비공개로 가진 이 자리에서 김 원장은 "기업 구조조정은 앞으로 2~3개월이 중요하다"면서 "살려야 할 기업은 살리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과감하게 정리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구조조정은 시작에 불과했고, 지금부터 계열그룹 대기업 중심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시기가 왔다"면서"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이미 오전에 있었던 대책회의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과 감독 당국의 달라진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일단 정부 방침을 적극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향후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면서 "은행들 입장에서도 기업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적극 추진하겠지만,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주요 대상 기업들의 작년 3분기 금융위기 이후의 실적과 올 1분기 재무제표, 개별 기업과 그룹 상황, 앞으로 전망 등을 집중적으로 심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45개 대기업 중 11개 그룹이 우선 대상... 일부 기업들 반발도
현재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의 우선 대상은 대체로 45개 그룹 정도다. 이들 가운데 이미 부실규모가 커서 유동성 악화가 우려되는 11개 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 이들 11개 그룹을 상대로 재무개선약정(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이들 그룹들은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부동산 등 자신들의 보유 재산을 적극적으로 파는 등 자구노력을 추진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만약 재무개선 약정을 맺은 그룹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겨우 해당 채권은행장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미 채권단으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기업들은 향후 강화될 채권은행단의 구조조정 작업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부 기업들 사이에선 이미 내부적으로 자산매각 등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추가적인 요구가 올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 그룹의 재무책임자는 "우리의 경우 부채비율이 200%도 되지 않은데 불합격 그룹에 포함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일부 일시적인 유동성을 겪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정치적인 판단에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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