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1일 저녁 10시 40분]
촛불 1주년을 맞이하는 5월 1일 노동절, 서울 도심에서는 다시 "독재 타도"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날 오후 6시 10분께, 1000여명의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은 종로 3가와 4가 사이 차도를 점거하고 200~300여명씩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이날 경찰은 진압을 시작하자마자 방패와 곤봉을 마구 휘두르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기자들도 경찰 곤봉에 맞고 쓰러졌다. 또한 경찰이 참가자들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길에 넘어져 머리를 다친 여대생이나 휠체어에서 떨어져 실신한 장애여성이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차가 지나는 바로 옆으로 쓰러지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진압 시작하자마자 곤봉 휘두르며 강경진압
경찰은 주로 깃발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을 골라 연행해갔다. 시위 참가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경찰은 팔로 목을 감거나 사지를 들어 제압하고 경찰차에 하나둘씩 태웠다. 결국 경찰은 이날 총 64명의 참가자를 연행했다.
한 참가자는 "경찰이 분사한 캡사이신 가루를 눈에 맞았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또한 여대생이 남자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자 다른 참가자들이 "남자 경찰이 여성을 연행해도 되냐"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이를 묵살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 중 일부는 "왜 또 데모냐"면서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다함께 "풀어줘"를 외치거나 "연행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시위대를 편들었다. 싸움을 말리던 시민들이 경찰 방패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는 등의 부상을 입거나 실신해 응급차에 실려가는 경우까지 생겼다.
시위대는 1시간 30분 가까이 경찰과 대치하다가 흩어져 밤 8시 20분께 명동 입구로 이동했다. 여기에서 집회를 마치고 해산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경찰이 남아있는 참가자들을 연행하고 참가자들도 돌이나 살충제 등을 던지면서 오히려 몸싸움은 치열해졌다. 결국 밤 10시 20분 현재까지 50여명 가량의 시위대가 남아 구호를 외치는 상황이다.
"공장 안 투쟁 넘어서겠습니다"... 임성규 위원장의 '자기비판'
저녁의 격렬했던 '가투'와 달리, 이날 오후 3시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119주년 노동절대회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고있는 이날 대회는 예전과 달리 문화공연으로 프로그램 대부분을 구성했다.
각 사회단체 대표들의 투쟁발언이나 연대사 대신, 전국학생행진 새내기 율동, 국립오페라단 조합원 합창, 패러디성악공연 '잡리스'의 노래 등이 이어졌다. 청소년이 연설자로 무대 위에 나서고 행사2부 사회를 대학생인 김일호나 영남대 총학생회장이 맡은 것도 '파격'이었다.
사전마당에서도 각 단체들은 부스를 설치하고 시민참여마당을 진행했다. '강성' 이미지가 강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스가 가장 북적댔다. 이 부스를 찾은 시민들은 '사랑해요 금속노조' 풍선을 받아들고 "정리해고 격파"를 외치며 기왓장을 격파했다.
민주노총 소속으로 무대에 오른 유일한 연설자는 임성규 위원장이었다. 이날 임 위원장의 연설은 자기비판이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조직 안팎의 비난을 수용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며 '사회연대운동'을 제안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 내부와 격차와 차별은 심화되었습니다. 영세자영업자와 농민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무겁게 남아있습니다. 수차례 혁신을 약속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조직된 노동자만의 임금·고용투쟁을 넘어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이주노동자의 차별을 해소해야 합니다. 이제는 '연대성'을 혁신의 징표로 삼아 사회연대노총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사회연대는 공장 안에 갇힌 투쟁을 넘어, 공장 밖의 사회적 의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실천입니다."
그러면서 임 위원장은 정부 측에 "5월 중순 대정부 교섭을 제안한다"면서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언론악법 개악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같은 임 위원장의 발언에 대회 참가자 2500여명도 박수로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올해 노동절의 키워드는 '연대'
다른 연설자들도 하나같이 '연대'를 강조했다.
봉일천고 2학년 송조은양은 교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명박정권은 '재벌천국 서민지옥' 정책을 펴면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일제고사로 무한경쟁에 내몰리면서 미친 교육으로 힘들어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라는 당찬 연설로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지난해만큼 촛불이 타오르지 않아 아쉽지만, 이번 재보선 결과를 보면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친구들도 이 정권을 반대하지만 학원과 보충수업 때문에 현장에 나오기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후보단일화를 통해 지난 4월 29일 조승수 후보 당선을 만들어낸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와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무대 위에 올라 손을 잡고 참가자들에게 함께 인사를 했다.
강 대표는 "선거에서 진 정부 여당은 아직 부자곡간을 채우기 위한 96조 감세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국민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다, 이제 동지들이 함께 정권 퇴거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표는 "이번 선거의 승리는 이명박정권의 오만에 종지부를 찍으라는 노동자 서민의 승리"라면서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전 민중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절대회에 함께한 '예비노동자' 대학생들 |
특히 1일 119주년 노동절대회에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등 1000여명의 대학생들은 '등록금 투쟁'과 '대졸초임 삭감 반대'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
등록금 인하를 외치며 삭발을 했던 홍익대학교 총학생회장 한아름씨도 참여했다. 한씨는 "삭발을 한 뒤 등록금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투쟁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던 학생들도 생각을 바꿔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씨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잠들어 있었던 것일 뿐"이라며 "등록금 투쟁을 계속해서 이어나가 성공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목포해양대학교 2학년 김지민(21)씨는 "등록금이 30만원이나 올랐는데 지방 학생들은 어디에 불만을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학생 신분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부총학생회장 이세라씨는 "4년간 몇천만원을 내면서 학교를 다닌 대가가 6개월짜리 단기 인턴이라는 사실에 암울한 심경이다"며 "정부는 대졸 초임 삭감과 청년 인턴제를 도입하면서 학생에게 위기를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절 현장을 취재하러 온 대학생 기자들도 활발하게 현장을 누볐다. 홍익대학교 <홍익신문> 수습기자 서희경(20)씨는 "큰 현장에 처음 나왔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며 "무섭고 침울한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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