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충남 태안에서 여중생 2명이 중간고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 못하고 시험을 피하기 위해 제초제를 마셨다는 기사다. 이 중 한 명은 의식을 회복했지만 한 명은 중태라고 한다. 그런데 그 주위엔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이 약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요즘 청소년들을 매우 충동적이다. 요즘뿐만 아니라 청소년기가 충동적인 시기이다. 그 충동을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라고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헌데 우리 청소년들을 그 충동, 에너지를 쏟아낼 시간이나 공간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이들의 등엔 무거운 책가방이 메여 있다. 가방의 무게만큼,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시간만큼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생활한다.
시험 때문에 펑펑 울어버린 아이들
지난주엔 분당의 한 여고생이 아파트에 투신을 했다는 소식도 접하다보니 어제 중간고사 결과가 나오자 청소시간에 펑펑 울어버린 두 아이가 생각난다.
두 아이의 이름은 민수와 둘리(가명과 애칭)이다. 민수는 대뜸 눈물을 흘리며 학교도 싫고 공부도 싫다고 했다. 아무리 해도 되지도 않고 시험을 보고 성적이 나올 때면 자신이 왜 여기에 있나 싶기도 한다며 한참을 울었다. 그러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데, 공부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런 민수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둘리는 화장실에서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주위가 퉁퉁 부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둘리를 보니 뭔가 해주고 싶은데 달리 할 말이 없다. 청소가 끝나면 아이들은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저 상태로 수업을 받으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희 둘, 운동화로 갈아 신어라.""…….""갈아 신고 진학실로 와."두 아이가 신발을 갈아 싣는 동안 난 물병에 물을 받고 비타민 세 알을 챙겼다. 휴지도 넉넉히 챙겼다. 우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휴지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셋은 학교 뒷산에 올랐다. 내가 앞장서고 둘이 뒤따라왔다. 나도 말이 없고 아이들도 말이 없다. 민수는 울음을 그쳤는데 둘리는 연신 눈물을 흘린다.
소나무가 늘어선 4월 말의 산길은 선선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아이들 마음에 저 솔잎향이 이는 바람이 불어줬으면 좋겠는데. 민수와 둘리는 내내 말이 없다. 한 마디도 안 했다. 오후 5시가 다 돼서 한 남자와 두 여학생이 산을 오르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오고가는 등산객이 곁눈질을 했다.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모른 채 했다.
20여분 정도 산길을 걷자 나무 벤치가 놓여있다.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도 날 따라 하늘을 바라존다.
"뭐가 보이니?""아무 것도요.""아무 것도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저 속엔 무수한 움직임이 있겠지?""……."또 아이들은 입을 닫는다. 나도 할 말이 없다. 산에 함께 가자고 한 건 무슨 말인가 해주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냥 걷다 보면 아이들의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담임으로서 입장도 버리고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게 하고 산을 올랐다.
"자, 물 마셔."내가 물을 마시기 전에 두 아이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둘리가 먼저 마시고 민수가 다음 물을 마시고 나에게 건넨다. 물을 마시고 셋은 또 걸었다. 꿩이 우는 소리도 들리고 비둘기가 날개짓하는 소리도 들린다. 살짝 아이들 표정을 살피니 어깨가 축 쳐져있다. 민수는 출발할 때부터 체육복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었는데 한 번도 빼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쉰다.
"어린 녀석이 팔십 노인처럼 무슨 한숨을 자주 쉬어.""저 팔십인가 보죠."어쭈, 농담을 받아드린다.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둘리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렇게 30분을 더 걸으니 양지바른 곳에 외딴 묘지 하나가 나온다.
"우리 여기 좀 앉자."평소 같으면 '왜 무덤 옆에 앉아요?' 하고 투정이나 짜증을 낼법한데 아무런 말없이 따라 앉는다. 다시 물을 나눠 마셨다.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냥 두었다. 시험 점수 때문에 아파하는 아이들에게 점수 이야긴 더욱 할 수가 없는 것.
"힘들지? 학교생활. 공부도?""… 네~."그리곤 다시 침묵이다. 가끔은 말없음이 말을 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지금 우리들 상황이 그랬다. 민수는 답답한지 다시 한숨을 쉬더니 그냥 누워버렸다. 둘리의 교복 치맛자락엔 눈물 자국이 그 아이의 맘처럼 자국나 있다.
"어때? 땡땡이치니까 좋지?""네~."그리곤 어이없는지 둘다 피식 웃는다. 나도 웃었다. 산에 오른 후 처음으로 본 웃음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선생님 이상하지. 너희들이 땡땡이치면 혼내야 하는데 오히려 수업 빼먹고 땡땡이 치고 있으니?""네, 웃겨요. 근데 좋아요. 땡땡이.""그래. 가끔은 벗어나는 것도 좋아.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다고 다는 아니거든. 그래서 그냥 너희들하고 아니 처음으로 학생들 데리고 산에 오른 거야. 그니까 너희는 행운아야. 땡땡이 행운아.""후훗…. 암튼 선생님 이상해요.""정상이 아니지. 그만 내려갈래? 정상까지 오르면 너희 힘들 텐데.""아녜요. 오르고 싶어요. 우리 가요."아이들에 땡땡이 시킨 나, 그래도 기분은? 다행이다
보통 여자 아이들은 산을 싫어한다. 어쩌다 한 번 가자고 하면 다리통이 굵어진다느니, 땀나서 싫다느니, 산에 가려면 혼자 가지 왜 데리고 가려고 하느냐느니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 붇는다. 그런데 요 두 아이는 선뜻 오르자고 한다. 나만 피곤하지 않는다면 조건을 달면서 말이다.
"그래 오르자. 그리고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자."그렇게 해서 학산 정상까지 느릿느릿 걸었다. 처음부터 산행의 목적이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땀을 낼 필요도 없었다. 오르면서 탓닉한 스님 이야기도 했고, 내 학창 시절 땡땡이 친 사건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준비한 비타민도 나눠 먹었다. 정상에 올라선 또다시 물을 나눠 마셨다.
온 시내가 다 보이는 정상에 오르자 아이들 입에서 "정말, 좋아요. 가슴이 뚤리는 것 같아요." 하고 동시에 말한다. 아이들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싸운 아이처럼 말이 없던 민수와 둘리도 제법 이야길 나누며 웃는다. 줄곧 축 쳐진 어깨를 펼 줄 몰랐던 민수의 어깨도 제법 펴졌다.
산에서 내려와 학교 근처의 바지락 칼국수 집에 갔다. 이 집은 내가 자주 들르든 집이다. 칼국수 국물 맛도 좋지만 바지락을 듬뿍 준다.
"오늘은 내가 모든 걸 서비스 할 테니 너희들은 먹기만 해."아이들 접시에 바지락과 칼국수를 떠주었다. 접시를 비우면 또 떠주었다. 쑥스러움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떠먹지 않을 것 같아서다.
"너희들 다 먹어야 해. 남기면 안 된다.""선생님도 많이 드세요. 우리만 주지 말고요.""난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많이 먹고 기운 내. 어깨 쳐지지 말고. 그리고 내일부턴 웃으면 돼."저녁을 먹고 나오자 날이 어둑어둑 해졌다. 야자시간이 다 됐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가면서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한 마디 한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 게요."복도에 서서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공부가 죽기보다 싫다며 투신한 여학생의 기사가 자꾸 맴돌았다. 아이들을 닦달하며 공부해라, 공부해라 압박을 해야 하는 나이지만 오늘은 그냥 그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의 자유를 주고 싶었다. 땡땡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비록 난 아이들을 땡땡이 시킨 못된 교사가 되고, 교사의 직분(?)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