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빨리 이리 나와 봐."
예경이가 휴일 아침 행복한 늦잠을 방해합니다. 평소에도 좀 호들갑스러운 터라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무심코 문을 열었습니다.
"아빠는 안 돼. 나오지 마. 절대 나오지 마."아빠는 절대 나오지 말라는 말에서 느낌이 왔습니다. 올해 만으로 열 세 살인 예경이는 언제부턴가 첫 생리를 기다려 왔습니다.
제 엄마가 개인마다 다 시작하는 때가 다르고, 일찍 시작해 봐야 불편하기만 하다며,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해 줬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이미 다 생리를 하고 있는 터라 예경이는 생리 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해 전 예경이가 갑상선항진증에 걸려 매일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것 때문에 몸에 안 좋은 변화가 있는 건 아닌지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 불편함과 고통과는 별개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는 듯 합니다.
제 느낌이 맞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경이가 생리를 시작 한 겁니다. 아내가 생리대를 가지러 방에 들어 오면서 눈치를 줬습니다.
5월 1일 노동절. 태어난 지 12년 5개월 만에 예경이가 생리를 시작했습니다. 예경이도 그렇지만 저 역시 딸 아이의 생리가 처음이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 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축하 해.""에이, 몰라."첫 생리를 두고 아빠와 딸의 대화는 이렇게 서로 어색합니다.
축하 파티를 해야겠다 싶어 시내로 나갔습니다. 예경이가 평소 갖고 싶어 했던 선물을 사고, 와플도 사 먹고,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도 했습니다. 집에 와서는 평소 보고 싶었지만 미뤄뒀던 영화도 밤늦도록 함께 봤습니다.
예림이는 하루 종일 언니에게만 잘 해 준다며 투덜댑니다.
"예림이도 생리하면 똑 같이 해 줄게."반쯤은 압니다. 생리가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인지,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인해 입게되는 사회적손해가 얼마나 큰지. 하지만 생리라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귀한 일이라는 것도 압니다. 생명을 보듬을 수 있다는 증거니까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는 게 형벌일 수 있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앞으로 예경이의 삶 역시 수많은 난관과 부딪히게 될 겁니다. 생리 첫 날을 기쁘고 반갑게 보낸 것처럼 앞으로의 삶 역시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난관이 피해갔으면 하는 게 아니라, 그 난관과 부딪힐 때마다 기쁘고 즐겁게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덧붙이는 글 | 혹시 염려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 기사와 관련해서 예경이의 동의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