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거침없이 하이킥>의 가능성을 얻었다고 평가 받고 있는 MBC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 갈수록 아줌마들의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지면서 큰 웃음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줌마들의 지나친 수다를 싫어해 '시트콤 같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드라마 같은 드라마는 얼마나 많은가? 묻고 싶다.
특히 재미가 가속화되면서 그동안 감춰져 있던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투입되면서 <태희혜교지현이>는 또 다른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다. 그간 <태희혜교지현이>에 등장하는 아줌마들의 끈끈한 우정은 몇 년째 유지되는 그러한 돈독한 사이로 설정되어있다.
그 가운데 세리엄마(박미선)은 유부녀에서 이혼녀로 둔갑해 있었다. 실은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노처녀였던 것. 이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이는 왕년스타 윤종신(윤종신). 그는 이를 빌미로 자신의 집 화장실을 뚫는 일부터 부엌일까지 시키며 번번이 골탕을 먹인다.
그 사이 문간방 성웅을 좋아하는 미선의 마음을 헤아려 집들이를 하겠다고 나선 종신.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음식을 만들어 내느라 성웅과 좋은 시간을 갖지 못한 미선은 화가 나 종신과 밤새 술을 마시며 보내고, 용녀(선우용녀)에게 그 현장을 목격당한다.
그 사건이 종신과의 러브스캔들로 이어지고 급기야 미선은 커밍아웃을 한다. 그 사이 용녀는 간첩신고를 하는 등 일대 소란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대한민국 여성이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드라마 아니냐는 재미없다는 반응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난 그래서 <태희혜교지현이>이 좋다. 몇 년째 많은 시트콤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외면을 받고 있다. 이럴 때는 억지웃음보다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웃음을 유발하는 <태희혜교지현이> 신선하지 않은가?
더욱이 주부들의 삶에서 나아가 노처녀의 이야기까지... 대한민국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로 영역을 넓힌 점은 참으로 기특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아줌마로 살아가는 일은 참 힘들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은 싱글, 그 중에서도 올드미스 혹은 골드미스로 불리는 그녀들. 이름 하여 노처녀들의 삶은 더욱 더 팍팍하다.
적령기가 되면 남녀 모든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룰이다. 그런데 남자미혼과 여자미혼에 위치에 있어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못할 때 받아야 하는 데미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부터, 가족들마저 노처녀가 되면 무시하며 시쳇말로 '똥차' '막차'라는 단어들로 규정짓는다. 그래서 노처녀들은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명절을 지옥으로 생각할 정도다.
더욱이 번듯한 직업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동정의 눈초리까지 받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부동산 일을 하는 미선에게는 가상의 남편과 자식이 필요할 만도 했다.
우리나라 부동산의 경기는 큰손언니들이 꽉 잡고 있다는 점과 대부분 집계약을 남편과 함께 사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아줌마들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미선이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련한 자구책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녀가 선택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골드미스, 올드미스는 심한 스트레스는 받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어디 편하게 숨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진짜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일 뿐인데도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 묻는 이도 더러 있다.
게다가 남존여비 사상에 의해 여성을 꽃으로 만들어버린 대한민국에서는 나이든 노처녀를 보는 시선인 화장실 유머까지 양산했다. 가령 '꽃이 시들었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과일이 아닌데, 과일인 척하는 것은 토마토!'라며 남성들은 낄낄댄다.
그래서 <태희혜교지현이>를 보면서 이상하게 저 편에서 막돼먹은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영애 언니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역시나 한해 두해 가면서 어느덧 영애 언니 나이 32. 이제 사회적 시선에 의해 올드미스가 돼버린 지 몇 년째이다.
집에서는 이제 똥차 취급을 하다못해 그녀의 엄마는 영애 언니의 인생을 '막장'이라 규정지었다. 1회에서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엄마 좋아하는 막장 드라마 한다"라고 영애 언니 말하자, 엄마 왈. "이년아! 니 인생이 막장이야!"라고 정곡을 찌른다.
어찌 딸에게 인생이 막장이라 할까 싶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조금 헤아리자면 이해도 간다. 하지만 어쩐지 노처녀들의 인생을 막장으로 규정짓는 데에 있어서 항의하고 싶다. 사실 영애 언니 그동안 많은 연애 사건이 있어왔다.
1일 방송분에서도 장동건(이해영)과장이 "영애가 정지순(정지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열받은 영애 언니 홧김에 사랑 고백을 하며 "선배, 선배라고요!"라며 도망을 쳐버린다. 일찌감치 엄마는 집에서 틈만 나면 선을 보라 강권하고, 정지순에게 반찬까지 싸주며 잘해보라며 남의 속도 모르고 분노를 돋운다.
그뿐이 아니다. 이미 첫 사랑에게 돈을 떼이고, 백마탄 왕자는 스토커 취급을 하고 떠나버린 지금, 골드미스가 되겠다고 집을 샀지만 그녀의 공허함은 달랠 수 없다. 왜 꼭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영애 언니의 삶은 고달프다. 여기에 회사 사람들은 뚱뚱하다는 이유로 '덩어리'라며 성희롱을 해대는 것은 일쑤이며 웬만한 남자들 영애 언니에게 접근할라치면 음흉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사회이며, 이상한 종자들은 남성이란 종자들이다. 예쁜 여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을 어찌 뭐라 할 수 있겠냐만은 영애 언니의 살들을 왜 지들이 뭐라 하느냐 말이다. 왜 영애 언니 연애의 니들이 왈가왈부하느냐 말이다.
하지만 노처녀인 영애 언니에게도 로망이란 것이 있다. 여전히 결혼을 하기 위한 연애를 싫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급하다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조건만으로 결혼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 영애 언니 그래서 멋지다. 응원해 주고 싶다.
빵집사장이 엄마의 등살에 밀려 결혼할 뻔하지만 이내 자신의 신조를 꺾지 않는다. 사실 죽어라 사랑해도 살다보면 보배엄마처럼 '한상필 그 인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속이 시끄럽다. 거기에 이혼이라는 초강수가 사용될 수도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데 어떻게 조건만 보고 결혼을 하느냐는 말이다. 혹자는 그래서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조건도 봐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영애 언니가 조건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사랑만 쫒는 그러한 여자는 아니란 말이다. 적어도 조건이 적당하다면 사랑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고군분투하는 영애 언니. 파이팅이다! 처녀라 커밍아웃한 미선 언니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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